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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최충의 9재학당과 사학12공도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6/09/20 [07:13]

[김쌤’s 한국사] =
※과거, 고려 귀족의 기반 위협
광종의 과거제 실시 이후, 문벌보다는 실력 중시하는 과거합격자들이 대거 관료로 진출(거란의 1차 침입을 담판으로 물리친 서희가 첫 과거시험의 합격자). 이후 현종의 ‘주현공거법’으로 지방 향리들도 과거 응시자격을 취득하면서 과거는 관료진출의 중요한 진출로 역할.


유학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국가운영과 왕권강화를 위해 필요한 중요한 가치체계. 통일신라 독서삼품과(788/원성왕4) 이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관리의 선발기준을 실력위주의 시험으로 선발.

신라말 골품제도의 한계에 부딪힌 6두품 계열은 유학, 도교, 불교의 새로운 기풍인 선종, 도참사상 등으로 반 신라 경향.

신라말의 국학을 계승한 국자감을 창설(992/성종11)하지만, 이듬해 거란의 1차 침입, 2차 침입(1010/현종1), 3차 침입(1018/현종9-귀주대첩)으로 국가에서 관학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국자감은 유명무실.
 
01. 최충(984~1068), 최초의 사학 9재학당 설립
①과거시험에서 갑과 1등 합격(1005/목종8)하며 관계 진출.
②현종 덕종 정종 문종 네명의 왕을 섬겼고 재상에 올랐을 때 법률관을 동원, 율령 개정과 형법을 정비하는 등 제도정비 주력.
③문종의 만류를 뿌리치고 은퇴(1053/문종7) 후 학당을 열고 후진 양성. 과거가 입신양명의 주요 통로 역할하면서 학생들이 몰리자 9재학당(9개의 기숙사) 설치.
④최충 사후,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자 최충의 문하생들을 문헌공도(文憲公徒)로 호칭.
⑤최충이 최초의 사립학당 설협 후, 개경에 11개의 사립 학당이 더 생겨나면서, ‘사학 12공도’가 사실상 과거시험 합격자 독점.

 
02. 사학융성의 원인과 의의
①최충 자신이 과거 급제자 출신이면서, 지공거(과거를 주재하는 시험관)역임해, 과거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사학을 선호.
②지공거는 좌주(座主)라 하고, 좌주가 실시한 과거에서 급제한 학생은 문생(門生)이라 불렀는데, 좌주와 문생은 혈연으로 맺어진 부자에 비교될 만큼 강력한 집단의식으로 파벌 형성. → 과거시험 독점.
③12도는 고려시대 전란의 수습기에 나타난 독자적인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문종~고려 말(360여년) 고려의 유학교육에 크게 공헌.
④사학의 융성은 나말여초 정치적인 혼란 은거한 선비들이 후진 양성을 위해 세상으로 다시 나타나는 등 관학을 대신해 유학 진흥의 디딤돌 역할.
⑤사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교육으로, 조선시대 서원(書院) 발전에도 영향.

 
03. 관학의 반격과 사학의 약화
①예종, 국학에 칠재(七齋) 설치.
②인종, 국자감 정비. 각 도(徒)의 학생이 이유 없이 다른 도로 옮기는 것 금지(1133/인종11).
③사학 학생에게 국자감에서 50일 학습의무(1139) 등 부여했으나, 국학 침체하고 12도 위세.
④무인의 난과 몽고 침입으로 국학 진흥. → 12도, 점차 국학의 예비과정으로 약화. → 공민왕때 폐지.

 
※지공거
고려시대 지공거는 임시직이지만, 관직의 가장 명예스러운 직책.
권보, <계원록> 저술 일종의 족보처럼 지공거 명단 수록.
공민왕, 좌주와 문생의 유대 약화에 노력.
기사입력: 2016/09/20 [07:13]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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