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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고려, 국제전에 말려들다(강동의 역, 1219)
최강자 몽골, 세계 정복을 위해 고려에도 손길을 뻗치다
금(여진)-송(한족) 연합세력에 멸망한 요(거란), 몽골과 연합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01/11 [10:17]
[김쌤’s 한국사] = 고려 입장에서 ‘강동의 역(1219)’은 본의 아니게 국제전쟁에 휘말리고, 몽골이라는 세계 최강대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맺는 시초가 된다. 당시 요동에는 동진국이 있었는데, 평소 같으면 대거리도 하지 않을 여진족의 후예가 수립한 동진국도 몽골의 세력을 등에 업고 고려에 갑질을 하려 한다.

고려는 강동의 역으로 생각지도 않게 몽골과 조약을 맺어, 매년 세공(歲貢, 조공품)으로 몽골과 갈등을 빚는다. 이 갈등은 결국 몽골의 고려침략으로 이어진다. 
 
 
Ⅰ. 송(한족)-요(거란)-금(여진)-몽골(칭기즈칸)
①중국에 최초의 이민족 제국을 수립했던 요(거란 907~1125)는 금(여진, 1115~1234)-송(한족, 960~1279) 연합세력에 의해 결국 멸망한다. 금이 중국 북방의 강자로 군림할 때 서쪽 초원 몽골에서는 칭기즈칸이라는 영웅이 나타나, 초원을 통일(1206)한다.
→ 몽골 테무친, 몽골부족 통합 칭기즈칸(成吉思汗, 1206년) 즉위.

 
②몽골의 침략에 금이 허약하게 패배(1211)하자, 금의 지배 아래 이민족들이 반란과 함께 독립을 꾀한다. 이중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 요동의 야율유가 세력이었다.
→칭기즈칸, 서하 정벌(서하의 멸망은 1227년) 이후 금(여진) 공격해 항복(1211년)받아내. 금(여진)이 몽골에 패배하자, 금의 지배아래 있던 부족들이 반란과 함께 독립 움직임. 이중 거란의 야율유가가 최대 위협으로 떠오름.

 
▲ ‘강동의 역’은 고려에 침입한 거란족을 섬멸하기 위한 몽골-동진-고려 3국의 연합작전이었다.     ©그래픽=김영수

③금의 하급장수였던 야율유가는 요동의 거란족 1만을 규합해, 즉각 반기를 들고 몽골과 연합세력을 구축한다. 당시 최강의 기마부대와 전술을 보유했던 거란족의 합세에 칭기즈칸은 거란족을 극진하게 대우한다.
→야율유가 일파는 요(거란)의 부활을 위해 ‘반금친몽’ 정책으로 칭기즈칸에 협조. 중국에 최초의 이민족 제국을 수립했던 요(거란)의 지배계급이 신흥강자인 몽골(칭기즈칸)에 귀부하면서, 몽골은 진정한 초원의 실력자로 부상.
→야율유가는 멸망한 요의 후손으로 금의 변방(요동)을 지키던 하급 장수. 야율유가 입장에서 금(여진)-송(한족) 연합작전으로 요(거란)를 멸망시킨 세력보다는 초원의 신흥세력인 몽골이 연대 가능성이 높아. 당시 초원에는 오르도스 서쪽에 요의 후신인 서요가 있던 상황.
→야율유가는 직접 칭기즈칸의 원정길까지 찾아가 알현(1212)하며, 독립국이 아닌 칸의 대리인으로 요동을 다스리겠다고 충성을 맹세한 상황. 칭기즈칸이 요동왕으로 인정하고 제국질서 안에서의 독립국 인정하려 했지만, 야율유가가 거절.

 
④요동에 몽골의 속국이기는 하지만 자치국가를 수립하려는 야율유가와 독립국가를 수립하려는 반 야율유가측의 갈등 속에서 결국 야율유가측이 축출당하자, 칭기즈칸은 거란족이 요동에 세운 요나라를 멸망(1216)시킨다.
 
⑤이 멸망당한 잔당들이 고려로 밀려와 살 곳을 달라고 행패를 부리자, 고려-몽골-동진 등의 연합으로 거란족을 최후로 섬멸한 것이 바로 ‘강동의 역’이다.
 
 

Ⅱ. 몽골에 쫓긴 거란족, 고려를 침략하다
①몽골이 금(여진)을 정벌하는 동안 요동에서는 거란의 유족이 대요수국을 건국(1216). 금은 장군 포선만노를 시켜 대요수국을 정벌하려하지만, 포선만노가 정벌에 실패.

②대요수국 정벌실패한 포선만노는 처벌이 두려워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두만강 유역 간도지방에서 동진국(1216~1233) 건국.

③거란의 대요수국은 빈번하게 고려를 침략(1216~1219)하지만, 고려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당시 고려의 집권자는 최충헌.

④몽골은 동진국과 연합해 1216년 가을부터 거란의 대요수국 정벌 시작.

⑤몽골과 동진의 압박에 못이긴 대요수국은 9만병력으로 고려를 침략(1216년 8월). 거란족은 압록강→의주→평양→개경→철원ㆍ원주에서 살육ㆍ약탈. 고려의 김취려, 거란족을 동북 경계선밖까지 격퇴(1217).

⑥고려에 쫓겼던 거란족, 다시 고려에 몰려와 살 곳을 달라고 행패부리며 사실상 침략 자행(1218). 제천까지 침략한 거란족이 고려에 대패하자, 평양 옆의 강동성으로 쫓겨들어가 장기전 준비. 때마침 몽골-동진 연합군이 거란을 쫓아 평양까지 진격하자, 고려는 3국이 연합해 거란족 섬멸(1219).

⑦고려는 잔여 거란족을 전국에 흩어져 살도록 배려(거란장).

⑧몽골은 고려를 구원했다는 명목으로 고려와 형제의 예를 맺고, 세공(歲貢) 강요. 결국 몽골의 침략으로 이어지는 계기.
 
 
Ⅲ. 몽골, 고려와 형제의 맹약 맺고 공물 강요
①강동의 역 이후 몽골은 고려를 구원했다는 명목으로 형제의 맹약 체결하고, 수많은 공물 강요.

②몽골, 고려에 여섯차례 사신 파견(1219년~1224년)하며 막대한 공물 갈취. 무례한 언동으로 반감 초래.

③몽고사신 저고여 일행(1221년 8월) △수달피=1만령 △가는 명주=3000필 △가는 모시=2000필 △솜=1만근 △용단묵=1000정 △붓=200자루 △종이=10만장 △염료(자초ㆍ홍화) 등 강요.

④몽고사신 저고여, 귀환중 압록강변 함신진(의주)에서 의문의 피살(1225년 1월). 고려는 금나라 도둑(마적단)의 소행이라고 몽골에 통보하지만, 고려 침략의도를 지니고 있던 몽골은 고려가 저고여를 살해했다고 단정짓고 침략하기 시작(1231).
기사입력: 2017/01/11 [10:17]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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