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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척준경, 여진족에게 ‘공포의 존재’로 각인①
단기필마로 여진군 격파…불리한 전투도 승리로 이끌어
윤관의 여진정벌을 가능하게 한 고려시대 최고의 맹장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01/31 [10:31]
[김쌤’s 한국사] 척준경(?~1144)은 황해도 곡주 출신으로 곡산 척씨의 시조. 고려-여진족의 전쟁에서 불리한 전투를 뒤집는 등 한국사 최고의 맹장(猛將)으로 평가받는 인물. 윤관의 여진정벌은 척준경이라는 레전드급 장수가 있었기에 가능. 말년들어 반란군 가담 등으로 전공을 까먹는 바람에 업적이 빛을 바랜 면도 있다.

Ⅰ. 동여진의 고려 정주 침입 때 두각 나타내
①동여진의 추장 오아속이 두만강 북부 여진족을 복속하며 통합하자, 통합반대 여진족(추장 14명 등 1700명)이 고려에 귀순. 여진통합파인 오아속의 부하 석적탄이 고려귀순 여진족을 추격하며 고려 정주성 포위.
②고려, 임간을 선두로 삼아 여진 격퇴에 나섰다가 참패(1104년 1~2월, 숙종9). 당시 하급 ‘별가’였던 척준경이 직접 임간에게 ‘말 한필과 무기’ 요구. 위기상황에서 임간은 척준경의 요구를 들어줬고, 척준경은 단신으로 여진군에 돌진해 적장 1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2명을 되찾아. 추격하는 여진족에게 교위 준민ㆍ덕린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1명씩 사살.
③여진이 주춤하는 틈을 타 퇴각하는 척준경을 여진 100기가 추격해오자, 대상(大相) 인점과 함께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2명 사살.
④척준경의 용맹에 놀란 여진이 추격을 멈춘 사이, 고려군은 무사히 성으로 귀환했으나 이미 절반의 군사가 전사하는 등 패배.
⑤한수 아래로 취급하던 여진에게 고려군이 참패하자, 숙종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당시 정벌군 사령부 등 문책. 이 과정에서 척준경도 옥살이를 하지만 윤관이 척준경의 용맹을 높이 사, 방면.


 
Ⅱ. 윤관의 여진정벌(1107년, 예종2)에 종군하며, 맹활약
 
01. 석성 공략전(1107년)
①윤관이 석성(함흥) 공략전(1107년)에서 여진족의 저항에 밀려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자, 후퇴하는 고려군을 여진이 추격할까 다급해진 윤관이 척준경에게 “해는 기울고 사태는 급하니, 너(척준경)는 장군 이관진과 함께 이 성을 공격하라” 명령.
②고려의 공성군이 함락시키지 못한 석성을 척준경 혼자 방패 하나 들고 성벽을 타고 올라가 여진족 추장(적장) 2~3명을 베어버리자, 여진의 진영이 흐트러지고, 이 틈을 타 대기중이던 윤관이 대군을 이끌고 성을 함락.
③이 전투에서 고려군은 여진족의 수급 1만개를 취하고, 동여진의 추장 요을대 등 3200명의 적을 생포. 척준경, 비단 30필 은급.
④석성전투 승리로 두만강 이남지역을 점령한 고려 윤관은 동쪽으로 화관령, 북쪽으로 궁한이령, 서쪽으로 몽라골령을 국경으로 정하고 함주ㆍ영주ㆍ웅주ㆍ복주ㆍ길주ㆍ공험진 6성에 백성들을 이주. 1108년 3성을 더 쌓아 9성 완성.


02. 가한촌 병목전투(1108년 1월)
①패퇴한 여진족이 재정비, 가한촌 병목 오솔길로 고려군을 유인. 여진, 수만군으로 윤관ㆍ오연총의 8000군 매복ㆍ기습ㆍ포위 공격.
②여진의 기습에 고려군은 중과부적으로 궤멸 직전까지 몰리고, 부원수 오연총은 화살을 맞고, 윤관은 주변에 100명의 병사만 남은 절망적 상황.
③고려군 궤멸 전갈을 들은 척준경이 출전하려하자 동생 척준신이 ‘개죽음당할 것’이라고 만류하지만, 척준경은 “나는 한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늙으신 아버님을 부탁하마”라고 병사 10명과 함께 수만 여진에 돌격, 윤관을 구출.
④척준경이 활약하는 사이, 고려에서는 최홍정ㆍ이관진의 지원군이 도착해 여진군 도주하고, 고려군은 추격하는 반대상황 연출.
⑤이 전투에서 척준경이 베어 넘긴 적장의 수는 36급이었고, 윤관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척준경의 용맹에 감탄해 부자의 인연.
⑥이 공으로 척준경은 합문지후(정7품) 임명.

 
03. 영주성 전투(1108년 1월)
①고려군을 궤멸위기에 몰았지만 척준경의 활약으로, 윤관ㆍ오연총 등 수뇌부를 잡지 못한 여진은 전투 12일 후(1108년 1월), 2만군으로 고려가 주둔하고 있던 영주성 공략.
②고려의 수뇌부는 병력의 열세(1만)에 수성(守城)을 결의하나, 척준경이 군량부족으로 장기전은 불리하다며 결사대(100명?) 조직, 여진군에 돌격해 적장 19급 참수.
③여진군이 도주하자, 윤관과 지휘부는 감격에 겨워 손을 맞잡고 절을 했다고.

 
04. 회령전투(1108년 1월)
①영주성 전투 직후 여진이 평북 회령에서 도독부로 향하던 권지승선 왕자지(王字之, 아명 왕소중) 휘하 군사를 기습. 고려군은 크게 패하고 지휘관 왕자지는 말까지 빼앗겨.
②전갈을 들은 척준경 구원에 나서 여진족을 패퇴시키고 끝까지 추격해 중갑마 한필을 노획.

 
05. 웅주성 전투(1108년 2월)
①전투에서 이기다가도 척준경만 나타나면 깨강정 신세가 되는 여진은 수만군을 동원, 고려군이 주둔한 웅주성 포위(1108년 2월). 고려장수 최홍정이 성문을 열고 나가 일전을 벌여 여진 전초부대에게 승리를 거뒀지만, 적의 대군은 진열을 정비하며 총공세 준비.
②중과부적으로 열세에 처한 척준경은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한밤중에 밧줄을 타고 성벽을 내려와 100km가 넘는 적진을 주파해 정평으로 질주.
③척준경이 구원 요청을 위해 성 밖을 나섰다는 척후의 보고를 들은 여진은 웅주성으로 돌아오는 척준경을 잡기 위해 웅주로 가는 길목에 수많은 장벽과 관문으로 가로막지만.
④척준경은 구원부대를 이끌고 하루에 한 개씩 여진의 관문을 깨고, 가로막는 적을 모조리 격파하며 웅주성까지 진격.
⑤웅주성에 도달한 척준경은 웅주성 병력과 합류하지 않고, 여진의 본진으로 돌격해 여진군 격퇴. 웅주성 사람들은 척준경을 보고 울면서 환영.

 
06. 고려, 방어의 어려움에 9성 돌려주다
①고려는 윤관의 여진정벌 초기, 여진의 추장을 계략으로 독살하는 등 초전에 승기를 잡았지만, 여진이 반격하자 점령한 지역의 성을 중심으로 방어전에 치중.
②행영병마판관 왕자지ㆍ척준경이 함주ㆍ영주 두 곳에서 여진과 싸워 33급 참수(8월).
③왕자지ㆍ척준경 사지령에서 여진을 쳐 27급 참수, 3명 생포(9월).
④여진족의 계속된 거센 저항에 고려 조정은 9성을 여진족에게 돌려주다(1109년).
기사입력: 2017/01/31 [10:31]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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