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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조선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①
고려 최고의 대표장수와 그를 쏙 빼닮은 아들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02/11 [11:01]
[김쌤’s 한국사] 태조 이성계는 평생을 ‘고려의 무장인데도, 고려를 저버리고 조선을 건국한 배신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여덟 명의 아들 중 최고 엘리트였고, 고려 전체로 봐도 이방원만큼 문무(文武)를 한 몸에 갖춘 인물은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엘리트였다.

태조 이성계 입장에서 이방원만큼 자랑스러운 아들은 없었다. 그랬던 부자지간의 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태종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한때부터였다.

태조 이성계와 정몽주는 젊었을 때부터 막역한 교분을 쌓아온 사이였다. 신흥무인의 대표주자 이성계, 신진사대부의 대표주자 정몽주가 만약 조선건국에 서로 힘을 합쳤더라면 조선건국을 비판하는 세력이 거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우리문화에 가장 빛나는 업적 중의 하나인 한글창제와, ‘해동육룡이 나라샤’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Ⅰ. 조선 태조 이성계
(1335.10.27~1408.6.18, 재위 1392.8.5~1398.10.14)
이성계는 20여년 동안 전장에 나아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01. 배신의 땅 ‘쌍성총관부’ 지배계급에서 고려의 무장으로 변신
①고려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탈환 때, 아버지 이자춘이 내부에서 내응(배신)해 고려의 쌍성총관부 탈환에 공로.
②아버지 이자춘의 직위를 물려받으며, 고려입장에서는 취약지역인 동북방면의 수비 책임.
③원 휘하에서 지역민을 수탈하는 쌍성총관부 조씨의 횡포에 반감품고 고려에 귀부했지만, 배신자라는 눈총도 있었던 듯.
④이성계는 고려에 귀부하기 전인 젊은 시절부터 동북지역에서 신궁으로 높은 명성.
⑤수차례 전공을 쌓으며, 고려 정부의 신임획득. → 무인이면서도 문인, 특히 신진사대부의 입장을 옹호해 신진사대부들에게서도 신망.


02. 변방의 장수에서 고려 군부의 핵심으로 진입하다
고려 변방에서 북방민족의 침입을 방어하는 번장 취급을 받던 이성계는 홍건적의 침입때 점령당했던 개경 수복작전에서 선봉으로 홍건적을 격파하면서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낸다. 이성계의 강력한 전투력은 본인의 출중한 무공(신궁이었다), 강력한 사병(私兵)집단에 근거한 통솔력 등에 기인한 것이다. 개경수복에서 최선봉으로 성문을 열어젖힌 것도 이성계 개인이 이끄는 사병집단의 강력한 통솔력이 바탕이 된 것이다.
①정몽주와 정도전을 통해 이색, 우현보, 권근, 성석린, 설장수, 이숭인 등과 두터운 교분.
②고려무장의 지위를 탄탄히 다진 이성계는 자신의 자제들을 고려의 유력가문과 혼인시키며, 지지기반 구축. → 훗날 태종 이방원이 가혹하게 숙청하는 처가쪽 민씨도 당시 고려의 지배세력. 이성계의 계비인 강씨도 고려 지배세력.
③명, 철령(만주 심양 북쪽, 원의 쌍성총관부가 있던 지역) 이북의 땅 점령 통고(1388.2/우왕14). → 고려의 명 정벌에 위화도 회군 단행.
④위화도 회군=신진사대부가 신흥무인 세력을 끌어들여 구세력을 몰아내고 정권 장악(정도전, 정몽주 등 적극 지지). → 내부 반발 무마.
⑤이성계 내세운 정도전 중심 새 왕조 개창 혁명파, 정몽주 중심 고려유지하며 개혁하려는 온건파 충돌. → 온건파의 치명적 약점은 확고한 무력기반이 없는 것.
⑥이성계, 사냥 중 낙마(1392.3/공양왕4)로 거동 불능 기회로 정몽주, 정도전ㆍ남은ㆍ조준 등 이성계의 측근 탄핵ㆍ유배.
⑦이성계, 아들 방원에게 정몽주의 마음을 돌릴 것을 지시. → 하여가와 단심가로 정몽주의 속마음 간파한 방원이 정몽주 살해. 정몽주 피살 이후, 온건파 집단 붕괴.
⑧이성계 세력 복귀ㆍ집결 후, 조선 개국 선포(1392.7).
⑨정몽주의 살해와 귀족계급의 반발로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도, 민심을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한 상태. 고려말의 지식인 삼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과 원천석 등의 이반.
 
03. 이성계, 눈부신 전공으로 고려 대표 장수 명망
①독로강만호 박의의 반란 평정(1361년 10월/공민왕10)
=박의가 반란을 일으켜 천호 임자부와 김천룡을 죽이자 고려 조정은 형부상서 김진을 보내 토벌하고, 동북면 상만호 이성계에 지원 명령. 이성계, 친병 1500을 이끌고 강계에서 박의를 패사 시킴.
②홍건적의 개경함락과 수도탈환
=압록강의 결빙을 틈타 홍건적 10만이 고려로 침입(1361년 10월/공민왕10), 개경 수도 함락. 이성계 친병 2000으로 수도 탈환에 참가, 선봉 입성.
③나하추의 침입 격퇴
=심양행성승상 자처한 나하추의 수만명 함경도 홍원 침입(1362년/공민왕11). 고려,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에 임명. 수차례 교전 끝에 함흥평야에서 나하추 격퇴.
④최유의 침입 격퇴
=원 기황후, 최유에게 공민왕을 몰아내고 덕흥군을 세우도록 압록강 넘어 침입, 이성계 격퇴(1364년/공민왕13).
⑤여진족 김삼선ㆍ김삼개 형제의 침입
=최유의 고려 공격을 틈타 김삼선ㆍ김삼개 형제가 함주 함락시키고 화주이북 점령. 이성계 최유를 포로로 잡고, 김씨형제와 싸워 격퇴(1364.1) 밀직부사 임명.
⑥원의 평양 동녕부 두 차례 원정(1370년/공민왕19) 하며 심복 수하 얻고, 국토 확장.
⑦경상도 일대와 지리산에서 창궐하던 왜구 대파(1377/우왕3)
⑧아기바투(阿其拔都 아지발도)의 왜구를 운봉(雲峰)에서 섬멸, 황산대첩(1380). 황산전투에서 왜구 격퇴하며 전국적 명성 획득.
⑨여진인 호바투(胡拔都)가 동북면 일대를 침략해 노략질(1382)하자, 동북면도지휘사로 이지란과 함께 길주에서 호바투의 군대 궤멸(1383).
⑩함주에 쳐들어 온 왜구 대파(1385).
⑪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올라 최영과 함께 임견미ㆍ염흥방 주살(1388).



Ⅱ. 태종 이방원(1367~1422, 재위 1400~1418)
태조의 아들 중 가장 아버지를 닮은 문무겸장의 수재였다. 즉위하기 위해 형제와 친족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태종의 왕권강화 정책이 있었기에 직후 세종을 중심으로 한 조선 문물이 꽃필 수 있었다.
①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유일하게 문과 급제(1383년/우왕9)로 문무를 모두 갖춘 인물.
②새 왕조 개국을 반대하는 정몽주를 살해(1392년 3월/공양왕4)한 실질적인 개국공신. 강비(태조의 계비)ㆍ정도전 등 개혁파의 배척으로 군권과 개국공신책록에서 제외. 세자 책봉에서도 탈락(1392년 8월/태조1).
③정도전 일파가 요동 정벌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사병을 혁파하려하자,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ㆍ세자 방석등 제거 정치적 실권 장악(1398).
④방간ㆍ박포 등의 제2차 왕자의 난 진압(1400)하며 왕위 즉위.
기사입력: 2017/02/11 [11:01]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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