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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태종 이방원, 형제 죽이고 왕위 즉위②
정몽주를 제거하고, 아버지 이성계를 왕위에 올린 개국공신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02/21 [14:47]
[김쌤’s 한국사]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길재(1353년 공민왕2~1419년 세종1)와 같은 마을에 살면서 학문을 강론했으며, 원천석(1330년 충숙왕17~?)에게서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1383년(우왕 9) 문과에 급제했고, 이색(1328년 충숙왕15~1396년 태조5)의 서장관으로 명나라 남경을 다녀왔다(1388년, 창왕 즉위년~1389년).

아버지 이성계가 해주에서 사냥 중 낙마로 중상을 입자, 정몽주 등이 이성계 일파(정도전)를 유배하고 이성계까지 제거하려 하자, 반격을 가해 정몽주를 제거(1392년 3월, 공양왕4)했다.

도평의사사에서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도록 공작해,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왕위에 즉위(1392년)하도록 했다. 명나라에서 왕자를 입조시키라고 요청하자 남경에 가서 명나라 태조와 회견(1394년)했다.

01. 제1차 왕자의 난(1398/태조7)
①이성계의 조선 개국 창업공신인 정도전 일파와, 태조의 다섯 번째 왕자 방원 일파 사이의 권력 다툼.
②태조는 8명의 왕자(전비 한씨 소생=6명, 계비 강씨 소생=2명) 중 막내 방석을 세자로 책봉 → 정도전ㆍ남은ㆍ심효생 등 방석 지지.
③방원은 태조가 낙마로 부상당한 틈을 타, 정도전 등이 실각하자 정몽주를 제거(1392/공양왕4)하면서 국면을 극적으로 전환한 개국공신.
④명이 철령위 등을 자신의 영토라고 강변하자, 정도전 등은 요동정벌을 계획하며 방원의 사병(私兵)을 없애려 하자 선수를 쳐, 이복동생 방석ㆍ정도전 등 일파 제거(1398/태조7).
 
02. 제2차 왕자의 난(1400/정종2)
①1차 왕자의 난으로 방원이 실권을 장악했으나, 넷째 방간도 왕위 야욕.
②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의 움직임을 밀고했던 박포가 논공행상에 불만 품고, 방간 선동.
③방원도 사병(私兵)을 동원, 전투 끝에 승리.
 
03. 왕자의 난의 결과
①방원 자신이 사병을 육성해 정권을 잡았으므로 공신귀족들의 사병 혁파와 공신세력 제거에 집착.
②왕권 강화를 위한 병권 집중, 중앙집권체제 강화 추진.
③사병 혁파, 도평의사사 폐지 → 의정부 설립. 승정원(왕명 출납 관장) 별도 설립.
④왕권을 잡기 위해 형제를 죽이고, 왕위 즉위 이후 왕권강화를 위해 처가와 공신을 무자비하게 무더기 숙청.
⑤태종의 왕권강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있었던 덕분에 이후 세종의 태평성세가 이어진 것으로 사학계에서는 평가.


※정도전(1342~1398/태조7)
①성균시 합격(1360/공민왕9), 성균시 진사시 합격(1362)하며 관직 진출.
②이인임ㆍ경복흥 등의 친원정책에 반대했다가 전라 나주 유배(1375/우왕1) → 3년간의 유배생활에서 하층민의 삶을 목격ㆍ체험하며 사회개혁에 눈뜬 것으로 추정.
③함주에 주둔하던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직접 방문, 교류(1383).
④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6)으로 실세로 떠오르며 능력 발휘해 이성계의 신임 얻어 삼군도총제부 우군총제사(1391)로 병권 장악.
⑤명나라가 표전문(表箋文, 조선이 명에 보낸 일종의 외교문서)을 트집 잡아 내정간섭 시도하자, 요동수복 추진(1396) 중 이방원이 정도전 제거(1398).
⑥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고, 재상이 최고 실권자로 한 합리적 관료지배 체제를 이상으로 삼고, 민본사상에 입각한 역성혁명 긍정.
⑦왕권강화를 통한 직접 통치를 지향하는 이방원과 노선차이 드러나면서, 갈등 폭발.
기사입력: 2017/02/21 [14:47]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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