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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세종ㆍ세조ㆍ성종, 조선 문물제도 완성
세종=전반적인 기틀, 세조=부국강병, 성종=국가제도 정비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04/05 [09:21]
[김쌤’s 한국사] 세종~세조~성종대는 조선시대 문물제도가 정비기를 거쳐 완성되는 시기였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왕권강화ㆍ중앙집권화에 힘입어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았다.
세조는 부국강병책과 직전법을 실시, 변방의 안정과 국가의 수입증대에 노력했다.
성종은 정치ㆍ사회의 지도이념인 유학을 바탕으로 <경국대전>을 완성, 국가제도를 정비했으며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방의 사림을 기용, 훈구세력의 비대화를 견제했다.
 

Ⅰ.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
태종의 육조직계제(1414)로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소신 있는 정치를 추진할 수 있었다.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의 창제다.
세종의 치세는 즉위 18년(1435)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 데, 전기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유교이념을 국정에 반영하는 시기였다. 후기는 안정된 국정을 바탕으로 의정부서사제 환원 등 왕권과 신권의 조화 속에 유교적 이상정치를 실현했다.
 
01. 유교정치의 실현
①집현전을 학술기관으로 확장(1419/세종2) 성삼문ㆍ신숙주 등 신진 학자의 문물 연구 → 새로운 정책 방향 모색.
②집현전 학자들은 학문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유망한 소장학자 발탁. → 세종은 풍부한 우수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문화ㆍ정치 발전 이룩.
③불교를 선(禪)ㆍ교(敎) 양종으로 병합(세종6), 각 18사(寺) 합 36사만 본사로 인정. 사사(寺社)ㆍ사사전(사원전=7760결)ㆍ상주승(常住僧=3600명)의 액수와 정원 재정리.
 
02. 국방강화
①김종서 → 동북지방 개척 6진 설치ㆍ최윤덕 → 서북지방 여진족 정벌 4군 설치.
②왜구의 본거지 쓰시마 정벌(1419 세종1) → 부산포 내이포 염포 3포 개항(계해약조).
③화포주조소(/세종26) 설치 → 뛰어난 성능을 가진 새로운 규격의 화포제작ㆍ개량.
④<총통등록>(세종30) 발간 → 화포 주조법, 화약사용법, 화포 규격 등을 도해. 화포제작의 표준화로 성능 개량에 큰 도움. 중국기술의 모방에서 탈피, 독자적인 화포제작으로 이어져 완구(碗口)개량, 소화포ㆍ철제탄환ㆍ화포전ㆍ화초 등 발명.
 
03. 과학기술의 발전과 활발한 편찬사업
①측우기, 자격루 등 각종 과학기구 발명(장영실).
②활자개량(갑인자)으로 <고려사>ㆍ<농사직설>ㆍ<팔도지리지>ㆍ<삼강행실도>ㆍ<의방유취>ㆍ<동국정운> 등 간행. → 백성에게 유교적 철학 체계 계몽, 실생활 민생 안정 등 도모.
 
04. 민생안정과 문화진흥
①조세ㆍ형벌(3심제)ㆍ의료 제도 개선, 의창 설치 빈민 구제.
②춘추관ㆍ충주 2개의 사고(史庫)를 성주ㆍ전주 4개로 확대(임진란의 병화 피함)
③궁중음악을 아악(雅樂)으로 정리.
 

Ⅱ. 세조(1417~1468, 재위 1455~1468)
①세조의 무단강권 정치는 왕권을 강화했으나, 특권계층에 의한 비리도 극심(홍윤성, 한명회 등 공신).
②계유정난(1453.10/단종1)으로 김종서 등 제거하고 실권 장악. → 단종에게 선양 강요, 즉위(1455.6/단종3).
③단종복위 관련 사육신 제거(1456/세조2) → 집현전 폐쇄ㆍ경연(經筵) 중단.
④호패법 재시행 → 호구 실태 파악, 도둑 근절 주력(1458). <국조보감> 편수, 태조ㆍ태종ㆍ세종ㆍ문종 4대왕의 치적 편집, 후대의 교훈(1458).
⑤병기 제작(1462), 둔전 경작(1463), 군적사 파견 군사자원 파악(1464).
⑥직전제 시행.
⑦이시애의 난 평정(1467) → 중앙집권 체제 강화.
⑧원각사 건립, 간경도감 설치 등 불교억제 완화.
 

Ⅲ.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
성종은 교육과 문화의 진흥에 힘을 기울여 세종~세조를 거치며 기틀을 형성한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를 완성시켰다. 13세에 즉위한 성종은 집권 초기 신숙주ㆍ한명회ㆍ홍윤성 등 원로대신이 정책 결정에 자문으로 참여했다.
성종은 즉위 7년(1476)만에 친정(親政)을 시작하며 김종직ㆍ김굉필 등 사림을 등용, 훈구파를 견제했다.
①홍문관 설치, 집현전 계승.
②삼사(사헌부ㆍ사간원ㆍ홍문관)제도 확립, 대간 육성  → 대신에 대한 활발한 탄핵으로 왕권 강화 효과.
③경국대전 완성(1474/성종5) → 국왕 정점의 조선 통치 제도 완비.
④성균관에 존경각 건립 유교경전 소장(1475/성종6).
⑤성균관과 전국의 향교에 학전(學田)과 서적을 분배해 관학(官學) 진흥(1484/성종15, 성종20), 양현고의 재정 확충해 학문연구 후원.
⑥독서당 설립.
⑦국조오례의(1474)ㆍ삼국사절요(1476)ㆍ동문선(1478)ㆍ동국여지승람(1481)ㆍ동국통감(1485)ㆍ악학궤범(1493) 등 출간.
⑧압록강 인근 여진 정벌 → 윤필상(1479/성종10), 두만강 일대 여진 정벌 → 허종(1491/성종22).
 

※삼사(사헌부ㆍ사간원ㆍ홍문관)=청요직(淸要職)
•사헌부=관리의 비위 감찰
•사간원=간쟁서경봉박
•홍문관=왕의 정책 자문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
성종, 한명회의 딸과 결혼(1467/세조13)
 → 한씨, 후사없이 사망(1474/성종5)
 → 윤기견의 딸과 결혼(1476/성종7)
 → 윤씨 폐비(1479/성종10)후, 사사(1482/성종13)
 → 갑자사화(1504)의 계기.

기사입력: 2017/04/05 [09:21]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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