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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선조, 평생 ‘방계(傍系)ㆍ서자 콤플렉스’ 시달려
임종 5년 전에 정비 맞아들여 영창대군 출생으로 비극 키워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09/21 [10:25]
[김쌤’s 한국사] = 선조에 대한 평가는 초기 임진왜란에 대비, 인재를 발탁한 성군에서 후기들면서 ‘백성을 버리고 혼자 도망간 왕’ ‘똑똑한 아들 광해군을 괴롭혀 결국 쫓겨나게 만든 아버지’ 등으로 엇갈린다. 선조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연산군 이후 반정으로 집권한 중종부터 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조의 극과 극으로 갈리는 평가는 선조가 방계(傍系)ㆍ서자 출신으로, 적손이 아니었다는 출생의 콤플렉스가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이복형인 연산군의 패악으로 즉위한 중종 이후 즉위한 인종과 명종은 모두 이복형제이기는 하지만 친아들이고, 선조는 중종의 서자(덕흥군)가 낳은 손자로 왕위계승 순위에 들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즉위한다.

▲ 조선 최고정무기구인 비변사의 활동을 담은 비변사 등록(사진=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
개혁은 시도만…북로남왜로 비변사 설치
①성종의 둘째 아들로 연산군은 중종의 이복형.
②중종이 등용한 사림은 개혁정치를 시도하지만 훈구파의 반발을 불러 기묘사화 발생.
③삼포왜란(1510년) → 임신약조(1512년, 제포만 개항)
④추자도, 동래 염장 왜변(1522년), 전라도에 왜구 침입(1525년) 등 시달려
⑤사량진(1544년) 왜변
⑥4군6진에 야인(여진) 침입 → 인마ㆍ재물을 약탈. 순변사 파견, 회유하며 의주산성 축성.
⑦압록강 유역 야인 토벌(1524년) 이후에도 침입 끊이지 않아 비변사(備邊司) 설치.


인종(1515년~1545년, 재위 1544년 11월~1545년 7월)
효성 지극한 세자로 오랫동안 지내다 즉위 8개월만에 사망
①중종과 두 번째부인 장경왕후 윤씨 소생(윤씨는 인종 출산 후 6일만에 사망)
②중종의 세 번째부인 문정왕후 윤씨가 명종 출산(1534년, 중종29)
③인종은 후사없이 사망. 이복동생 명종 즉위.

▲ 문정왕후의 후원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었지만, 문정왕후 사후 불태워진 경기 양주시의 회암사 터(사진=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명종(1534년~1567년, 재위 1545년 7월~1567년)
생모와 외척의 극성으로 타고난 재주를 피우지 못한 왕
①명종과 인순왕후 심씨, 순회세자 출생(1551년, 명종6)하나, 후사없이 사망(1563년, 명종18).
②명종, 6명의 후궁이 있었으나, 자식이 없어.
③즉위하자마자 을사사화(1545년)
④명종의 생모 문정왕후, 8년간 수렴청정.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문정왕후는 “네가 임금이 된 것은 모두 오라버니와 나의 힘”이라며 꾸짖고 때리기도 했다고.
⑤문정왕후 집권기 ‘보우’를 중용하며 불교 중흥하나, 문정왕후(1565년, 명종20) 사망으로 보우도 처형.
⑥을묘왜변(1555년, 명종10) → 임시기구였던 비변사가 상설기구.
⑦임꺽정(1559년~1562년 1월, 명종17) 일당의 소란으로 치안 불안.
⑧명종의 정비 인순왕후 심씨의 동생이 바로 동서분당의 주인공 중의 하나인 심의겸(1535, 중종30~1587, 선조 20).
⑨명종, 34살의 나이로 갑자기 후사없이 사망하자 덕흥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조카뻘)을 입승대통(入承大統)하니, 바로 선조.


선조(1552년~1608년, 재위 1567년~1608년)
생각지도 않게 왕위에 오르며 조선 최대 국난 겪어
①중종의 서자(庶子)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로, 후사가 없던 명종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은 수재.
②선조는 조선에서 왕의 적자나 적손이 아닌 방계에서 왕위를 이은 첫 번째 왕. 선조 즉위(16살) 당시 부모 모두 사망한 상태였고, 세자를 거치지 않아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와 원상(어린 왕을 대신해 정무를 맡아보는 신하. 어린 성종이 즉위하자 한명회가 원상으로 정사를 돌보기도 했다. 성종은 한명회의 사위.)이 국정 운영 도와.
③선조, 1569년(선조2) 박응순의 딸을 왕비(의인왕후)로 맞으나 의인왕후 박씨가 몸이 약해 소생은 없어.
④선조, 공빈 김씨ㆍ인빈 김씨 등 8명의 후궁에게서 13남10녀 출산. 이중 공빈 김씨의 첫째가 왕실의 난봉꾼 임해군, 둘째가 광해군.
⑤선조, 본인이 죽기 직전이자 의인왕후 박씨 사망 2년만에 김제남의 딸을 정비로 맞아(1602년, 선조34) 인목왕후 김씨와의 사이에서 영창대군 출산하며 훗날의 비극 만들어내.
기사입력: 2017/09/21 [10:25]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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