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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 고구려-수ㆍ당 70년 전쟁①
수, 세계제국의 야심을 품고 끊임없는 정복전쟁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11/12 [09:26]
[김쌤’s 한국사] = 위의 사마의가 정권을 잡으면서 손자 사마염이 진(晉)을 건국하고 위촉오 3국을 최종적으로 통일하지만, 황족들의 발호로 중국대륙은 5호16국의 혼란을 맞는다. 이 혼란을 잠재운 강력한 세력이 바로 수나라다. 그러나 수나라는 황위계승에 따른 혼란, 무리한 고구려 침공 등으로 36년이라는 짧은 왕조를 마감한다.

Ⅰ. 수나라의 침입과 격퇴(598~614)
■ 전쟁의 배경, 수나라 건국(581년~618년)
①581년 건국한 수(隋)는 중국 대륙을 통일(589년, 고구려 평원왕31)하고, 고구려 복속을 요구→고구려 거부(평원왕은 즉각 군사 훈련, 군량미 비축, 성곽 수리).
②고구려 영양왕(598년 영양왕9)이 직접 1만군사(말갈군 합동)로 요서지방(영주) 선제공격.
③수나라 등장 이전까지 요서는 고구려의 세력권. 6세기 무렵 영주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국제시장. 진출과 방어의 완충지대.
④수나라, 영주의 소수민족 세력을 토벌하고 영주총관부(583년) 설치.
⑤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침략에 시달리다 못해 수나라에 고구려 정벌을 요청(신라의 걸사표)
⑥수문제의 뒤를 이은 수양제는 즉위 초 황하와 양자강을 잇는 대운하 완성. 남월과 대만 정벌 등 배후 다짐.
⑦요동지역은 소금과 철의 생산지로 수나라와 고구려 모두에게 요충지.
⑧수문제는 고구려의 전쟁준비에 대해 “요수(遼水)가 넓다 한들 장강(長江, 양자강)보다 넓겠으며 고구려 사람이 많다 한들 진나라보다 더하겠는가”라며, 장군 한 사람만 보내도 쉽게 멸망시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
 
▲ 수의 노골적인 침략야욕에 맞서 고구려 영양왕은 요서의 영주성을 선제 타격, 수나라의 군사 전진기지를 파괴한다. 이것이 승전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래픽=김영수.     © 경기도민뉴스

01. 1차 침입(598년 영양왕9)
①고구려가 영주 선제공격(598년 2월)한지 석달만에 수나라는 30만육군 10만수군으로 고구려 침공.
②육군은 요동에서 장마와 질병으로, 수군은 서해를 건너다가 풍랑으로 각각 궤멸.
③영양왕, 사죄사를 보내 수문제의 체면 살려주는 외교 전략 구사하며 전쟁 대비.
 
02. 2차 침입(612년) 살수대첩
①수양제 즉위(604년)하자 고구려 정벌론 대두[한강 유역의 지배권 쟁탈을 둘러싸고 고구려 신라 백제는 치열한 경쟁. 백제 무왕, 사신을 수에 보내 고구려 출병 요청(607년). 신라 진평왕도 수에 고구려 원정 제의(608년)]
②612년 정월 수의 113만대군 고구려 침공 출발. 3월14일 요하 도착. 고구려 요동성 성문 닫고 수비.
③수나라 수군(총사령관 내호아)은 대동강을 거슬러 612년 6월 고구려군과 접전. 고구려 수군사령관 건무의 계략에 말려 참패.
④수양제, 요동 전선의 교착과 수군의 결정적 패배로 고구려에 대한 수륙협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별동대(30만 대군)로 평양 침공.
⑤을지문덕은 압록강에서부터 접전할 때마다 고의로 패주, 살수(청천강)를 건너 평양성 밖 30리 지점까지 유인. 유인작전을 깨달은 수나라 군대 철수할 때, 추격해 살수에서 전멸시킴.
 
03. 3차 침입(613년)
①수양제는 고구려 패전을 설욕하기 위해 우문술에게 군사를 주어 3월4일 낙양을 출발.
②4월에 요하를 건넌 우문술은 2개월이 지나도록 요동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는 사이, 중국 본토에서 양현감이 반란 일으켜 철수.
 
04. 4차 침입(614년)
①수양제 두 차례 원정 실패 만회하기 위해 614년 2월 다시 육군ㆍ수군 연합 공격. 요하를 건너기도 전에 여름 장마철 맞아 고전.
②고구려, 사자를 보내 국왕의 입조를 조건으로 화해요청, 수나라 철수.
③이때 수나라는 양도와 강남에 각각 10만군의 반란군이 세력을 떨치고 있는 상황이라 곧 멸망(618년). 고구려 영양왕도 네차례 수의 침입을 막느라 쌓인 스트레스로 이 해 사망.
④고-수 전쟁 당시 수나라 반란세력들은 돌궐의 지원을 얻기 위해 조공을 바치는 등 돌궐의 국력 크게 향상.
 
05. 영양왕의 백제ㆍ신라 압박
①영양왕 재위 29년 동안 수나라의 네 차례 침공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배후의 백제와 신라 공격.
②수나라 1차침입 방어 직후 백제 위덕왕이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수나라 군사의 길 안내 자청. 수는 국력을 소진한 후라 거절. 영양왕, 백제의 농간 알고, 백제의 국경 침공.
③영양왕 14년(603) 장군 고승을 보내 신라의 북한산성  공격. 신라 진평왕이 직접 방어에 나서자 접전 없이 퇴각.
④영양왕 18년(607) 군사를 보내 백제의 송산성 공격, 함락 못하자 석두성을 습격해 남녀 3000명 포로 노획.
⑤영양왕 19년(608) 2월, 신라의 북쪽국경 습격 포로 8000명 노획. 4월, 신라의 우명산성 공취.

기사입력: 2017/11/12 [09:26]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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