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78] 고구려-수ㆍ당 70년 전쟁②
Ⅱ. 당나라의 침입과 고구려 멸망(644~668)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11/13 [08:22]
[김쌤’s 한국사] = 무리한 고구려 원정으로 국력을 소모한 수나라는 수양제의 이모부였던 이연(당고조)에게 멸망(618년)당한다. 당고조의 차남 이세민은 ‘현무문의 난(626년)’을 일으켜, 형과 동생을 살해하고 아버지를 협박해 당태종으로 즉위한다. 당태종은 지방의 세력들을 제거하고 중국을 다시 통일(628년)한 이후 설연타와 협력, 고구려의 강력한 우방중의 하나였던 동돌궐을 공격해 멸망(630년)시킨다.
 

■ 전쟁의 배경, 당나라 건국(618년~907년)
①후방의 우환을 제거한 당태종은 631년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고 고구려에 온 당나라 사신(장손사)은 고구려의 수나라 전승 기념물 파괴를 요구한다. 이를 통해 당나라의 명백한 침략의도를 파악한 고구려는 연개소문에게 요동지역에 천리장성을 쌓도록 하고(631년~646년),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한다.
②그러는 사이 당나라는 토번과 서돌궐과의 전쟁에서 승리(638년)하고, 고창국을 멸망(639년)시키는 등 배후의 위협요소를 정리한다.
③고구려 영류왕은 태자를 당나라에 사신(640년)으로 보내는 등 평화를 위한 제스처를 취하지만, 당나라는 사신(진대덕)을 보내 고구려 내부 정세를 염탐하는 등, 침략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641년)한다.
④고구려 연개소문은 소극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던 영류왕을 몰아내고 보장왕을 옹립(642년)하며 강경책을 수립한다.
⑤당태종, 신하들의 반대 물리치고 연개소문의 영류왕 시해를 문책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고구려와의 전쟁 선언(644년 2월).

01-1. 1차 침입(644년 10월), 안시성 전투
①수륙 80만의 대규모 원정군 편성, 644년 10월 고구려 침공위해 요동성으로 출발. 당태종은 645년 2월 친정에 참여.
②초기 접전에서 고구려는 당 육군에게 개모성ㆍ현토성, 당 수군에게 비사성(요동지역 해안에 위치) 함락.
③당은 이후 요동성ㆍ백암성을 함락시키지만, 당나라 배후의 신성과 건안성에서 고구려군이 당의 발목을 잡아 효과적인 공격에 어려움.
④당태종은 배후의 주요산성을 점령하지 않고는 고구려 진공이 어렵다고 보고 6월20일 안시성 공략에 나서나, 3개월간의 접전 끝에 안시성 함락 실패.
⑤고구려는 15만의 대군을 보내 안시성을 지원하고, 당의 보급로를 끊는 등 끈질기게 저항.
⑥9월20일 당군 철수 시작. 고구려군이 요하 상류의 퇴로를 막아 당은 요하 하류의 늪지대(요택)를 건너느라 수많은 사망자 발생.
⑦당나라의 침략을 격퇴하면서, 고구려 연개소문 독재 권력 수립.
⑧신라는 당나라를 돕기 위해 고구려 남부를 공격하고, 백제는 신라의 빈틈을 노리는 등 신라를 견제.
⑨당의 침입을 물리친 고구려는 즉각 백제와 연합해 신라 공격. 신라는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당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당나라에 ‘선 백제 멸망, 후 고구려 멸망’ 제안.
 
 
01-2. 당, 거란족 포섭으로 고구려 우방 정벌
①당태종은 고구려의 요동방어망이 막강한 것을 체험하고 647년, 648년 두 차례 요동반도 남부에 대한 기습공격으로 고구려를 지치게 하는 작전 구사.
②649년 대규모 원정군 계획하지만 당태종의 죽음으로 무산.
③당나라는 대규모 원정군의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47년~663년 병선(兵船) 건조에 박차. 이때 건조한 병선으로 백제를 해상으로 침공해 멸망(660)
④고구려의 지원세력인 거란족을 화ㆍ전 양면으로 포섭, 고구려 세력권에서 당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임.
⑤고구려는 지원세력에서 적대세력으로 돌아선 거란이 고구려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홍산, 토호진수 등 요서북부 일대에서 거란토벌(654~660).
⑥당의 거란족 복속에 따라 고구려는 배후위협 요소인 거란을 견제하느라, 당의 백제 침입에 지원군 파견 불가능. 고구려, 백제 멸망(660년 7월)과 거란의 당나라 복속으로 지원세력 잃고 고립.

 
▲ 당의 고구려 2차침입. 수륙병진작전을 전개하지만 연개소문이 격퇴한다.     © 경기도민뉴스
 
02-1. 2차 침입(661년 8월), 연개소문의 방어
①당, 이전까지의 육상침공루트에서 해상침공루트로 전환하며 총 6개의 대부대 편성(6개도행군 수륙 30만대군, 661년 8월). 당의 기본전략은 고구려의 방어선을 요동과 평양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것.
②당은 2개도행군을 육상침공에 투입(소사업 부여도행군ㆍ정명진 누방도행군), 요하를 건너 요동지역으로 침공. 요동에 주둔하며 고구려 요동지역의 정예 방어병력을 묶어두고 전장의 변화에 따라 공략시기 타진.
③계필하력의 최정예 요동도행군, 고구려의 압록강 하구를 점령해 북쪽 요동지역과 고구려 남부지역을 단절시키는 작전 시도(압록강은 고구려 국토의 중간). 당의 나머지 3개군, 고구려 수도 평양성의 대동강 하구 상륙작전. 소정방의 평양도행군ㆍ임아상의 패강도행군ㆍ방효태의 옥저도행군은 백제멸망 작전을 성공한 주력군.
④요동 소사업의 부여도행군은 북방 초원 유목민 철륵족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자 진압을 위해 철수.
⑤평양공략에 나선 패강ㆍ옥저ㆍ평양도행군은 기병 부족으로 평양성 공략 못하고 포위만 하던 중, 요동방어 전선의 고구려군이 누방도행군 격퇴하고, 고구려 중앙군과 합세.
⑥연개소문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패강도행군 궤멸, 이어 평양 부근 사수전투에서 옥저도행군 전멸(662년 2월) 등 대승. 평양도행군 퇴각.
⑦소정방, 신라 구원요청에 김유신 칠중하를 건너 소정방에게 군량전달 임무 완수(662년 음1월23일, 보장왕21)하고 신라로 귀환. 소정방은 사태가 글렀음을 알고, 김유신에게 퇴각 암호문(난새와 송아지를 원효가 퇴각신호로 해독)
 
 
02-2. 고구려-당나라 두 차례 전쟁의 결과
①두 차례 전쟁으로 고구려는 철륵, 거란, 백제, 왜국 등 협조세력들이 떨어져 나가, 외교적 고립 상태.
②전쟁터가 된 평양일대의 농업 기반시설 파괴로 경제 악화.
③대규모 원정군을 동원한 당나라도 경제파탄으로 당 고종 전쟁준비 포기 선언(663.8.).
④연개소문 사망(665)으로 고구려 내부 분열, 남생 당나라 투항(666.6.).
 
 
03. 3차 침입(667년)-고구려 멸망
①당나라의 고구려 침입에 고구려 요동방어의 핵심인 ‘신성’이 내부 배신자에 의해 함락, 주변 16개성도 함락(667.9.)
②고구려 북부 중심성 부여성 함락(668.2.)
③당나라군, 요동성ㆍ안시성 등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해서 압록강까지 진격.
④고구려군, 압록강 방어선에서 당과 교전, 중과부적으로 패배.
⑤신라, 남쪽에서 고구려 공격.
⑥나당연합군 평양성 포위 보장왕 항복 선언(668.9.)
기사입력: 2017/11/13 [08:22]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