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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 효종이 양성한 조총수, 청을 돕다
나선정벌(청-러시아 국경분쟁 1654년 4월, 1658년 6월)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11/23 [07:27]
[김쌤’s 한국사] = 나선(羅禪)은 러시아(Russia)의 한자식 표기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조총병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어느정도 성과도 일궈내 명이 후금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한 사르후전투에 파견한 강홍립의 전투병도 조총병 위주의 부대였다.

나선정벌은 러시아와 청의 국경분쟁에서 연패한 청이 조선에 조총병 파견을 요청해 두차례 파병한 것으로 청이 승리하는데 조선의 조총병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거창하게 나선정벌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에 조선이 청을 지원한 것이다.

조선의 두차례 파병은 청이 국경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측에도, 조선의 실록에도 자세한 기록은 없고 2차출정때 신유가 <북정록>에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01. 러시아, 동북 흑룡강 지역에 원정대 파견
①모스크바 공국,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1480년 독립) 이후 발전하다가 폴란드의 침입으로 멸망(1610년). 폴란드를 물리친 러시아의 저항으로 개창한 로마노프 왕조(1613년)의 러시아는 동쪽으로 원정대 파견, 북태평양 연안(오호츠크해)까지 진출(1647년).
②러시아, 극동지역의 식민도시(군사기지)를 근거로 남진을 시작해 헤이룽강(아무르강) 유역에 도달. 이후 러시아의 원정대(대장 예로페이 하바로프)가 흑룡강 우안(右岸) 알바진(雅克薩) 하구에 요새를 축성(1651 효종2)하고 흑룡강 지역의 원주민(다우르족, 에벤키족 등)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약탈(1649년, 1651년)하자, 원주민이 청에게 보호 요청.
③청, 원주민의 지원요청에 영고탑 주둔 사령관 하이써(병력 1500) 헤이룽 강에 파견(1652년). 하이써의 청 1500병력과 러시아 하바로프 원정대의 200병력이 대결해 청의 전사자만 676명에 달하는 참패(러시아 전사자는 10명). 하이써의 청군 군사장비는 1500병력 중 총병 30명, 대포 6문. 지휘관의 무능이 겹쳐져 참패.
④청은 아무르 지역 일대에 대한 지배권 유지와 러시아의 남하 저지를 통한 영향력 확대 의도 무산. 반면 러시아는 아무르 강 일대의 질 좋은 모피와 아무르 강 남부의 농경지 확보 등이 목표.
⑤청, 하이써의 후임 샤르후다(병자호란때 조선 침공에 참전했던 장수) 임명. 샤르후다, 2년 동안 반격 준비하지만 당시 청은 남명(명의 잔여세력이 남부지역에 설립한 왕조1644~1662)과의 전투로 정예병력 동원이 불가능한 상황.
⑥청의 사신 한거원, 조선 효종에게 나선정벌을 위한 조총수 100명 파병 요청(1654년2월 효종5).

 
▲ 효종이 북벌을 위해 양성한 조선의 조총병은 청과 러시아의 국경분쟁에서 뛰어난 사격실력으로 러시아인에게 조선의 군사 ‘대두인(전립을 써, 머리가 크게 보이는 군사)’을 두려워하라는 활약상을 남기기도 했다.     © 경기도민뉴스
 
02. 제1차 나선정벌(1654년 4월 효종5)
①조선, 영의정 정태화의 의견에 따라 함경도 병마우후 변급(?~?)에게 조총군 100명과 초관(哨官) 50명으로 지원군 파견. 변급 휘하 조선군, 두만강 건너 청의 영토로 진입(1654년 3월23일 효종5) 이후 8일간 걸어서 행군한 끝에 영고탑(寧古塔/寧安) 주둔 샤르후다의 청군과 합류.
②조청연합 1000병력, 흑룡강 방면 진공 중 왈가(曰可)지방에서 배를 타고 후통강(厚通江/混同江, 송화강 중류 지점)으로 진격(4월20일).
③조청연합군, 헤이룽 강에서 쑹화 강으로 가던 러시아 원정대(하바로프의 후임 스테파노프)와 조우(4월28일). 7일동안 교전 끝에 격퇴. 조청연합군=병력 1000, 대선 20척, 소선 140척 VS. 러시아=병력 400, 대선 13척, 소선 26척 규모.
④청은 당초 조선군을 총알받이(선두)로 삼아 러시아와 교전하려 했으나 청의 함선 120척은 전투용이 아니었고, 러시아의 함선은 대형 범선이라 직접적인 교전은 불가능한 상황.
⑤청은 러시아와 수전을 벌이는 동안 조선군은 강변의 언덕에서 러시아군을 저격하는 일종의 양동작전 구사. 러시아는 눈앞의 청 수군과 교전하는 동안 뒤에서 날아드는 조선군의 조총사격에 전사자가 늘어나는 7일동안의 소모전 끝에 물자(화약 등)부족과 전사자 누적으로 결국 참패.
⑥러시아군, 강 언덕의 조선군을 격퇴하기 위해 상륙대를 보내지만 조선군의 사격에 전사자만 내고 궤멸적 피해를 입고 퇴각. 스테파노프 원정대, 헤이룽 강 상류 러시아 원정대가 구축한 쿠마르스크 요새로 퇴각하자 조청연합군도 철군 영고탑 귀환(5월16일)
⑦변급 지휘 조선군, 84일만에 단 1명의 사상자 없이 본국 귀환(6월13일). 이후 청은 단독으로 러시아군 거점(쿠마르스크 요새)을 공격하지만 패전을 거듭하자 또 다시 조선에 포수 파견 요청.
⑧당시의 조총(머스킷)은 재장전 시간이 길어 분당 3~4발 발사에 그치고, 발사 후 화약의 연기 때문에 조준사격도 어려워 3열 화망 사격이 일반적이지만 변급의 조선 조총병은 정확한 조준과 명중률로 저격 수준의 사격실력으로 러시아군 격퇴. 이때의 활약으로 러시아는 조선군을 대두인(조선의 전립쓴 모양)이라 부르며 공포의 존재로 각인.
 

제2차 나선정벌(1658년 6월 효종9)
①스테파노프, 러시아 본국의 병력ㆍ물자 지원으로 패전의 타격 회복, 다시 인근 지역 약탈에 나서자 청은 북경에서 밍안달리를 파견 휘하 1500병력으로 쿠마르스크 요새 3개월 공격, 실패. 청, 또 다시 조선에 조총병 파견 요청에 함북병마우후 신유 휘하 조총군 200과 초관ㆍ기고수 등 60을 파견.
②신유 휘하 조선군, 청의 통역(겸 안내인)이 늦어, 약속시일까지 영고탑에 가기 위해 강행군으로 말이 죽고 보급품이 진흙탕에 빠지는 등 고생 끝에 영고탑 도착(5월6일). 청의 지휘관 샤르후다가 이미 출동한 상태라 조선군, 비를 뚫고 30리를 행군해 샤르후다의 주둔지 도착(5월10일).
③조청연합군, 쑹화강 어귀에 도착(5월15일)하나 청의 지원군(북경ㆍ선양 등)이 도착하지 않고 전선이 모두 건조되지 않아 대기하며 사격훈련(5월20일). 신유의 북정록은 조선군은 200명중 123명이 명중했지만, 청은 수명에 그쳤다며 조선군의 사격실력을 기록. 또 쑹화강의 혁철족이 지난번 전투에서 조선군에게 많은 사상자를 낸 러시아군이 말끝마다 머리가 큰 사람이 두렵다고 말한 것을 기록.
④청의 대형선 36척, 소형선 12척에 한척마다 조선 포수 5명+청나라 갑군 25명 탑승하고 진격(6월5일), 헤이룽 강 어귀 지나 20리쯤에서 러시아 함대(6월10일)와 조우.
⑤강 한복판에 있던 러시아 전선 11척, 조청연합군의 접근에 10리쯤 물러나 강가에 포진. 조청연합군-러시아, 쌍방이 포격하며 교전 중 청의 활, 대포, 총 등 물량공세에 러시아군이 배 안이나 강가의 풀숲으로 도주.
⑥조선군의 조총 사격(저격 수준)에 러시아군이 배안에 숨자, 조-청군은 화공 시도. 노획물자에 욕심이 난 샤르후다가 러시아 전함의 불을 진화하고 전리품을 챙기라는 명령에, 황급히 불을 끄고 다시 본진의 배로 돌아가던 조선병사들에게 러시아군이 사격.
⑦이 때문에 조선군 7명 전사(길주의 윤계인과 김대충, 부령의 김사림, 회령의 정계룡, 종성의 배명장과 유복, 온성의 이응생) 하는 등 전황이 급박하자 뒤늦게 화공 결정. 샤르후다의 전리품 욕심 탓에 조선군은 온성 출신의 이충인이 중상으로 결국 사망해 전사자 8명, 부상자 25명의 피해. 청은 전투에서 80여명 전사, 사공 30여명 사망, 부상자 200여명.
⑧러시아 원정대의 생존 군인 페트릴로프스키는 원정대장 스테파노프와 카자흐 270명 전사, 짜르에게 바칠 담비 가죽 3800장, 대포 6문, 화약, 납, 군기, 식량 등을 실은 배가 파괴되고, 겨우 배 1척에 95명의 생존자를 태우고 탈출.
⑨전후, 샤르후다가 사전 통보없이 조선군의 주둔 기간 연장. 조선군은 식량부족으로 고전하다가 신유의 강력한 항의로 8월27일에야 조선으로 귀환.
⑩신유, 샤르후다가 독점한 러시아의 노획물자 중 플린트록머스킷(Flintlock Musket)을 간청 끝에 1정을 받아서 귀환. 당시 조선의 화승총은 심지의 불꽃이 화약을 폭발시키는 것인 반면, 플린트록머스킷은 방아쇠를 당기면 부싯돌이 총의 몸통과 부딪히며 불꽃을 만들어 총알을 발사시키는 방식이어서 장전속도가 화승총에 비해 3배가량 빨라.
⑪신유는 북정록에서 러시아의 함선이 판옥선만큼이나 견고하고 총포를 다루는 기술이 절묘하다며 러시아군이 선실로 숨거나 강가에 배를 대고 성벽처럼 이용해서 끝까지 맞서 싸웠다면 승패를 가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기록.

기사입력: 2017/11/23 [07:27]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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