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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예송과 환국, 당파의 정권욕이 부른 파행
관직독점 위해 반대파 탄압ㆍ보복 등 이어지며 사회개혁 좌절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12/04 [08:03]
[김쌤’s 한국사] = 예송논쟁은 효종의 죽음(1차예송)과 효종비의 죽음을 둘러싸고,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어머니인 조대비(효종비에 대해서는 시어머니뻘)가 몇 년동안 상복을 입어야하는 가로 남인과 서인이 대립한 사건이다.

예송논쟁은 왕권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발생했다. 서인은 효종이 둘째 아들이므로 장자의 예를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왕도 사대부와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신권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성리학적 정치이념이기도 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사회 전란 이후 사회개혁의 방향을 대지주인 양반지배층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남인은 효종이 둘째 아들이지만 왕이므로 장자의 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왕권강화를 통해 소농 중심의 사회개혁을 주장하기 위한 논리로 이어진다. 이어진 몇차례의 환국에서는 당파사이의 알력과 갈등이 더욱 깊어져, 붕당의 긍정적 기능(언론의 확대, 견제와 균형)은 거의 사라진다.
 
 
■ 사건의 발단=효종의 사망(1659)과 효종비의 사망(1674)

△1차 효종의 사망(1659) 서인 승리-신권강화, 양반대지주 중심 사회개편-이후 노론으로 승계
△2차 효종비의 사망(1674) 남인 승리-왕권강화, 중소자영농 육성 사회개편-이후 실학으로 발전
△애꿎은 사건의 당사자=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

 

01. 1차 예송[1659년=서인 승리(1년)]
①1차 예송은 1659년(효종 10)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 조대비의 복상을 서인의 뜻에 따라 기년(朞年, 만 1년)으로 정하자, 남인 허목ㆍ윤휴ㆍ윤선도 등이 이의 제기.
②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長子)나 다름없으므로 3년(만 2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 송시열 등 서인은 효종은 인조의 둘째왕자이므로 장자의 예로 할 수 없다고 반박.
 
02. 2차 예송[1674년=남인 승리(1년)]
①2차 예송은 1674년(현종 15) 효종의 비가 죽자, 다시 조대비의 복상을 몇 년으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발생.
②당시 집권층인 남인은 기년, 서인은 대공(大功, 8개월)설을 주장. 남인 승리(1년).
 
03. 경신환국(1680년 숙종6)=서인
용봉차일 무단사용ㆍ역모 등으로 남인정권 붕괴, 서인세력 복귀.
①남인의 영수이며 영의정인 허적의 집에서 조부 허잠을 위한 연시연(延諡宴 시호를 받은 데 대한 잔치) 개최. 이때 허적의 서자 허견이 무사를 매복하고 병조판서 김석주, 숙종의 장인 광성부원군 김만기를 독살한다는 유언비어(1680년 3월)
②그 날 비가 오자 숙종은 궁중에서 쓰는 용봉차일(기름을 먹여 물이 새지 않도록 만든 천막)을 보내려고 했으나, 허적이 숙종의 허가없이 가져간 것을 알고 분노해 허적의 집을 염탐. 이 자리에 남인은 다 모였으나 서인은 김만기ㆍ신여철 등 몇몇만 참석.
③숙종, 궁중물품인 용봉차일의 무단사용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철원 귀양중이던 김수항을 영의정으로 복권하는 등 조정의 요직을 서인으로 교체.
④정원로가 허적의 서자 허견이 인조의 손자이자 숙종의 5촌인 복창군ㆍ복선군ㆍ복평군 3형제와 역모를 꾸민다는 고변(삼복의 변, 1680년 3월).
⑤허견ㆍ복창군ㆍ복선군ㆍ허적 등 관련자 처벌당하며 남인 몰락.
 
04. 노론ㆍ소론
경신대출척 이후 남인처벌 강경파=노론, 온건파=소론
①서인 노장파 김익훈 등이 남인을 강력히 탄압하자 소장파인 한태동 등이 이에 반대하는 상소(1683년)가 분당의 직접적 발단.
②소론, 남인이 재집권하면 보복이 있을 것을 염려해 남인 탄압에 온건한 입장. 송시열(노론)의 문인이었던 윤증(소론)이 송시열과 절교하고 난 이후 양자 사이의 개인적 감정과 정치적ㆍ학문적 갈등으로 분파.
 
05. 기사환국(1689년 숙종15)=남인
서인(송시열)이 제기한 원자문제를 빌미로 서인을 내쫓고, 남인 중용.
①남인계열 후궁 장옥정이 왕자를 낳자(훗날 경종 1688년), 숙종은 장씨를 희빈으로 승격하고 소생을 원자로 책봉 추진.
②집권 서인세력, 정비(인현왕후) 민씨가 아직 나이 젊으므로, 후사를 기다려 적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옳다며 원자책봉 반대. 송시열은 숙종이 후궁 장희빈이 아들을 낳자마자 원자책봉을 반대하는 상소(1689년 1월)를 올려 유배중 사약받고 사망(1689년 6월). 김수흥ㆍ김수항 등도 실각.
③남인은 서인 송시열(1607년 선조40~1689년 숙종15)의 처벌을 둘러싸고 극형 주장 청남파(淸南 허목, 홍우원)와 온건파 탁남파(濁南 허적, 권대운)로 분열.
④인현왕후도 폐위돼 궁중에서 쫓겨나 서인으로 강등. 당시 서인은 송시열 계열의 노론과 윤휴 계열의 소론으로 분열된 상황.
 
06. 갑술환국(1694년 숙종20)=서인
장희빈의 총애로 쫓겨났던 민비의 복위로 서인(노론ㆍ소론) 집권
①숙종, 총애 장씨를 희빈에서, 다시 왕후로 승격하지만 장희빈의 오만방자에 사약 내려 제거. 노론측, 장희빈이 정비 인현왕후 민씨를 모해했므로 사사 주장. 소론측, 왕이 될 세자를 위해 장희빈을 살려야한다고 주장.
②노론 김춘택과 소론 한중혁 등, 폐비 민씨 복위 운동 전개(1694년). 남인계의 민암ㆍ이의징 등 민씨복위 운동 주동자 심문.
③숙종, 폐비사건 후회하며 기사환국 당시 국문 주관 민암ㆍ유명현 등 귀양 조치. 소론계 신여철(훈련청 대장), 윤지완(어영청 대장) 등 등용, 남인 배척.
④서인(노론), 기사환국 이후 왕의 총애를 받는 숙빈 최씨(1693년 영조의 생모)와 연결, 숙종에게 남인계의 병폐 고자질.
⑤남인측 민암ㆍ이의징 사사, 권대운ㆍ목내선ㆍ김덕원ㆍ민종도ㆍ이현일ㆍ장희재 등 유배. 남인계열 완전 몰락.
⑥서인(소론) 한중혁은 환국을 위해 장희재(장희빈의 친동생)에게 뇌물. 조사과정에서 조정은 중인ㆍ상인층의 자금을 뇌물수수로 이용한 것이 논란. 경제의 주역이 중인상인으로 변모한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07. 신임사화(1721년 경종1~1722년 경종2 신축옥사+임인옥사)
서인은 송시열의 노론과 윤증의 소론으로 갈라져 정통성(사문난적)시비를 벌이다가, 경종부터는 왕통에 관한 시비가 주제로 떠오르면서 충역(忠逆)논의로 비화하자 갈등이 커진다. 이때 갑술환국으로 재집권한 서인노론은 장희빈의 사형, 서인소론은 사형반대를 각각 주장하며 대립하다가 결국 서인노론이 승리(장희빈 처형)한다.
경종은 숙종 말년 4년간 대리청정을 하다가 숙종의 사망으로 즉위하지만, 후사도 없는데다 허약해 차기 왕에 대한 논의가 조정에서 일어나면서 당쟁이 격화한다.
①노론, 몸이 허약하고 아들이 없는 경종에게 즉위 1년만에 왕세제 책봉(영조) 주장해 관철. 책봉 이후 노론4대신(김창집ㆍ이이명ㆍ이건명ㆍ조태채)이 왕세제의 대리청정도 주장하자, 경종이 승인.
②왕세제의 대리청정에 소론(조태구ㆍ유봉휘 등)이 부당성 상소하자 대리청정 취소. 소론은 이 문제를 경종에 대한 불충으로 몰아 노론 탄핵. 이 와중에 소론은 노론을 제거하기 위해 영수 김일경 등이 ‘노론이 숙종 말년부터 경종을 제거할 음모를 꾸며왔다’는 목호룡 고변사건(신축옥사) 일으켜.
③소론의 김일경ㆍ목호룡 등, 경종을 죽이려는 역적으로 정인중ㆍ김용택ㆍ이천기ㆍ백망ㆍ이홍술ㆍ심상길ㆍ이희지ㆍ이명좌ㆍ김성행ㆍ이세복 등 60여명 지목하면서 8개월동안 이어진 국문으로 노론 4대신(김창집ㆍ이이명ㆍ이건명ㆍ조태채) 등 60여명 처형, 노론 170여명 유배ㆍ치죄 등(임인옥사).
 
08. 정미환국(1727년 영조3)=소론
①영조, 즉위초부터 극심한 당쟁의 폐해를 통감하고 송인명ㆍ조문명 등의 말을 들어 탕평책 추진. 이를 계기로, 서인에서 분파한 소론 실각, 노론은 계속 집권.
②집권 노론측, 신임옥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서 발단. 이의연이 세제(영조) 건저를 주장하다가 처벌된 신하들을 신원하자고 주장했다가 소론의 반발에 귀양 조치.
③송재후, 김일경이 대찬(代撰)한 임인옥사에 대한 교문의 초고 중 3건의 문구에 대해 “세제 시절의 영조를 모욕한 것이므로 처벌할 것”을 상소. 3건의 문구는 종무(鍾巫, 노환공자 휘가 형을 죽인 것), 사구(沙丘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를 죽이고 작은아들 호해를 세운 것), 접혈(蝶血 당태종이 형과 아우를 죽인 것)로 영조에 대한 폄하.
④전국적으로 김일경의 교문에 대한 상소가 이어지자 영조, 김일경을 잡아들여 친국하고 김일경은 끝까지 부인하다가 처단. 앞서 임인고변의 공신 목호룡도 영조와 관련한 불손이 빌미가 돼, 김일경과의 공모혐의로 심문 중 사망.
⑤영조, 신임사화의 주동자 소론 김일경ㆍ목호룡 처단 후, 영의정 이광좌ㆍ우의정 조태억 등 소론 축출하고 노론(민진원ㆍ정호 등)으로 조정 구성.
⑥정권장악 노론, 신임사화의 피해자 노론4대신 등 관련자 신원 해결. 이후에도 노론 정호ㆍ민진원 등이 소론에 대한 보복을 계속 고집하자, 노론 파면하고 이광좌ㆍ조태억 재기용.

▲ 김중만장군 공신록 교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1981년 7월16일 지정). 영조 5년(1729) 무신 김중만에게 이인좌와 정인량의 반란(1728)을 평정한 공로로 분무공신 2등에 봉한다는 교서. 포상으로 토지(밭=14결29부4속, 논=9결40부4속,) 노비 34구를 하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경기도민뉴스
 
09. 이인좌의 난(1728.3.15. 영조4)=노론
①숙종이 정유독대(1717, 숙종-이이명이 경종의 후사로 영조를 정하기로 의논) 이후 허약한 경종의 뒤를 후사로 노론측이 영조 즉위 서두르자, 소론측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 파동.
②경종이 4년만에 죽고 영조가 즉위하자, 노론측은 소론측에 신임사화의 피해를 보복. 과격 소론(준론 박필현ㆍ이유익ㆍ심유현)은 갑술환국 이후 정권 배제 남인을 포섭해 영조와 노론의 제거를 계획.
③소론 준론(과격파)은 경종의 독살설, 영조는 숙종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우며 동조자 포섭 진행(1725, 영조1). 이하ㆍ양명하ㆍ윤덕유ㆍ정희량ㆍ나만치ㆍ조덕규ㆍ임서호ㆍ정세윤ㆍ이호ㆍ민원보ㆍ이인좌ㆍ신천영ㆍ김홍수ㆍ이일좌 ㆍ평안병사 이사성ㆍ금군별장 남태징 등.
④노론의 과격에 진저리친 영조가 정미환국(1727)으로 소론을 다시 기용하자, 정권 참여한 상태에서 굳이 모반을 획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소론 내부의 이탈자(최규서ㆍ김중만 등)가 변란을 고변. 최규서의 고변(3.14)을 시작으로 반란군의 동태를 보고받은 영조, 도성문 폐쇄하며 방어하고 서울 이외지역의 관군 동원해 토벌작전.
⑤병조판서 오명항ㆍ박찬신ㆍ박문수(야사에는 암행어사로 유명하나, 실제로는 아니다) 등 안성ㆍ죽산에서 이인좌의 반군 격파(3.24)하고, 이인좌ㆍ권서봉ㆍ목함경 등 생포. 오명항의 관군, 청주를 거쳐 추풍령을 넘을 때(4월초) 영남지방의 반군도 지방 관군에 의해 이미 소탕.
⑥충청지방의 이인좌, 청주성 함락(1728. 3.15)하고 대원수에 취임해 목천ㆍ청안ㆍ진천ㆍ안성ㆍ죽산으로 진격.
→ 북상 이인좌의 반군,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게 격파. 청주성의 신천영도 박민웅 등에 의해 궤멸.
영남지방의 정희량ㆍ이웅보(이인좌의 동생), 안음의 고현창에서 기병해 안음현감과 거창현감을 투서로 위협해 장악(3.20). 합천 거주 정희량의 인척인 조성좌 일족의 도움으로 합천ㆍ함양 등 4개군현 석권.
→ 경상감사 황선ㆍ성주목사 이보혁ㆍ초계군수 정양빈 등이 거창의 반군 격파.
호남지방의 태인현감 박필현, 유배중인 박필몽 등과 내통해 반란 획책.
→ 박필몽은 상주에서 체포ㆍ참형, 박필현은 죽도에서 체포ㆍ처단.
⑦각지의 반군이 연합하려 했으나 관군의 신속한 진압으로 영남ㆍ호남ㆍ충청지역 반군세력 연합 실패.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정권을 잡은 상태에서 소론의 결집력 약화 등이 반란실패의 주요 원인. 3남지방에서 광범위하게 호응한 것은 노론정권에 대한 반발이 컸다는 것을 의미.
⑧영조는 소론의 반란은 소론이 진압하라는 식으로 대처, 소론이 앞장서 반란을 진압하지만 이후 정국의 주도권은 노론이 장악. 이는 결국 영조가 추진한 탕평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노론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지면서(동인이 분열한 남인ㆍ북인 중 북인은 인조반정으로 소멸. 남인은 명맥만 남다가 갑술환국으로 몰락).
 
기사입력: 2017/12/04 [08:03]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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