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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 일본, 조선 독점위해 온갖 협잡 동원
청일전쟁=조선에서의 주도권 확보, 러일전쟁=방해세력 제거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7/24 [06:03]
[김쌤’s 한국사] = 일본이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선에 기득권을 갖고 있던 청을 어떤 방법으로든 물리쳐야 했다. 정묘-병자호란 이후, 명이 멸망하고 조선에서는 명의 복수를 갚자는 북벌론(北伐論)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강대한 청의 국력에 눌려 나중에는 오히려 청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 매천 황현(1855~1910)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매천사(전남 구례군 광의면 월곡길22-3, 수월리) 전경.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경험과 보고들은 것을 <매천야록(梅泉野錄)>과 <오하기문(梧下記聞)> 등으로 남겼다.(사진=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일본의 조선 침탈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바로 청일전쟁(1894~1895년)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1800년대 말~1910년 청(淸), 러시아, 일본 3개국은 조선(대한제국)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인다. 이 각축에서 결국에는 일본이 최종적으로 승리해, 조선을 강제합병까지 하게 된다.
 
일단 대체적인 흐름을 정리하면, 일본은 세 번의 사건에서 조선에 3개의 조약을 강요하고, 청과는 또 다른 별개의 조약을 맺는데 이것이 청일전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다.
 
 
1) 운요오(雲揚)호 사건(1875년, 고종12년)
일본이 측량을 핑계로 일부러 조선 연안을 침범하고, 조선 해변수비대의 포격을 유발해 개항을 강요한 사건.
결과) 강화도조약(1876년, 조일수호조규 병자수호조약) 체결
 
2) 임오군란(1882년 6월9일, 고종19년)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의 차별에 구식군대가 일으킨 난리.
결과) 제물포조약 체결
임오군란 주모자 처벌, 배상금 지불, 일본공사관에 경비병 주둔, 박영효 김만식 김옥균 등의 사과단 일본 파견
제물포조약은 일본의 야심이 그대로 조문화된 불평등조약으로, 이 조약 이후 조선은 자주국가로서의 위신과 체면 상실.
 
3) 갑신정변(1884년, 고종 21년)
10월 혁신파인 개화당이 왕조의 내정을 개혁하기 위해 일으킨 정치적 변란.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나라와 일본이 대립하고, 조선도 친청-친일파로 갈라져 대립하는 와중에 발생. 청나라의 무력간섭으로 실패.
결과1) 한성조약(조선-일본)
일본이 조선에서 청나라와 대등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2) 텐진조약(청-일본)
어느 한나라가 조선에 출병하면, 다른 나라도 출병한다) -특히 갑오농민전쟁(1894) 때 일본이 이 조약에 따라 조선에 출병하면서 청일전쟁이 벌어진다.
 
4) 갑오개혁 갑오농민전쟁 등(1894년)
정부가 농민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일본도 텐진조약에 따라 조선에 파병. 청과 일본이 전쟁을 벌여 일본이 승리.
결과1) 청일전쟁
주로 청-일 양국의 군사적 대결이지만, 한반도 내에서 일본군과 동학의병(東學義兵) 간의 조일전쟁(朝日戰爭)이기도 하다. 1894년 10월 중순 전라ㆍ충청도에서 전봉준 손병희 등은 동학농민군(의병)을 이끌고 조선을 강점한 일본군에 대항하는 조일전쟁을 벌였다.
결과2) 시모노세끼조약(1895년)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자주국임을 확인한다.-중국의 조선에 대한 전통적인 종주권 부정.-조선 침략 노골화
강화도조약 제물포조약 톈진조약 등에서 일관되게 추진해 온 조선에 대한 우월한 정치군사경제적 지배권 확고히 장악.
랴오둥반도 대만 펑후(澎湖)열도 등의 일본 할양.(이 대목이 삼국간섭을 불러 온다)
결과3) 삼국간섭(시모노세키조약 체결 6일후인 1895년 4월23일)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일본 정부에 대해 랴오둥반도를 청에 반환하라는 간섭.
삼국간섭을 계기로 일본은 러시아를 장래의 적국으로 인식, 러일전쟁에 대비한 군비확장 착수.
 
5) 러일전쟁(1904~1905년)
①만주와 조선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
②청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을 독점하려던 일본은 러시아 주도의 삼국간섭으로 저지당했다. 일본은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을미사변(1895년)을 일으켜 민비를 학살했으나, 반일 의병투쟁을 불러와 더욱 수세에 몰렸다.
③1896년 2월 친러파에 의한 아관파천으로, 친러정권이 수립됐다.
④일본은 영일 동맹(1902년),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조약(1905)년을 맺고, 1904년 2월8일 러시아 함대가 정박하고 있던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고 2월10일에 선전포고.
⑤대한제국은 1904년 1월21일 국외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2월9일 서울에 군대를 진주.
⑥2월23일 일본은 대한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하고, 병력과 군수품의 수송을 위해 경부ㆍ경의선 철도 건설을 서둘렀으며, 조선의 통신사업을 강점했다.
⑦5월18일 대한제국정부에게 러시아와 체결했던 모든 조약과 러시아인에게 부여했던 모든 이권의 폐기와 취소를 공포하도록 강제.
⑧1905년 1월에는 뤼순항 함락.
⑨러시아, 유럽의 발틱함대 파견하지만 5월27일 대마도에서 대기하던 일본 함대에게 발틱함대가 전멸당하면서 일본의 독주를 막을 세력이 없어졌다.
⑩러일전쟁의 승리(영일동맹, 가쓰라-태프트밀약)로 조선에서 일본을 저지할 세력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일본은 거리낌 없이 조선을 침탈하기 위한 조치를 지속.
결과1) 을사보호조약(1905년 11월16일)
조선의 외교권 박탈
결과2) 정미7조약(1907, 한일신협약)
결과3) 경술국치=을사늑약(1910년)

기사입력: 2018/07/24 [06:03]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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