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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일본, 러일전쟁 승리로 세계열강 발돋움
청일전쟁 배상금이 일본 성장 디딤돌…조선 독점 완성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7/25 [09:02]
[김쌤’s 한국사] = 갑신정변 당시, 청의 무력에 눌려 꼬리를 말아야했던 일본은 10년만에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세계에 ‘아시아의 강자는 일본’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청을 굴복시킨 일본의 급격한 성장은 서유럽 기득권자에게 의구심을 불러왔고, 이것은 삼국간섭으로 이어진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삼국간섭으로 체면을 구긴 일본은 주동자인 러시아에 대해 절치부심, 복수의 칼날을 간다. 단순히 복수뿐만이 아니라, 자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식민지로 조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일본의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다행이도 유렵에서는 러시아의 진출을 경계하고 있었고, 거리가 너무 멀어 직접적으로 견제하기 어려운 러시아의 극동함대에 대해서는 일본에 맡기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 겨울의 블라디보스톡 항구(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러일전쟁은 여순전투이기도 한데, 기관총의 발명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참호전은 대량물량작전이 불가피해 양측이 엄청난 전사자를 내는 이기고도 상처투성이인 전쟁이 되고 만다.
 

01. 러일전쟁(1904년 2월8일~1905년)의 배경
①청일전쟁으로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 4월17일)을 맺은 일본은 요동반도 할양을 확정했지만, 러시아-프랑스-독일 3국이 무력으로 요동반도를 청에 반환하라는 압력에 굴복(삼국간섭).
②러시아,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러-청 비밀동맹 체결. 여순ㆍ대련 25년간 조차(1898년), 만주 세력권화하며 부동항 확보.
③중국에서 발생한 의화단의 난(1900년)을 구실로 러시아, 동청철도 보호명목 만주 무력 점령.
④러시아, 압록강 삼림채벌권 명목으로 조선의 용암포 군사 기지화.
⑤일본-러시아, 만주와 조선 문제에 관한 수차례 교섭 결렬(1903년8).
 
 
02. 전쟁의 진행과정
①일본, 여순 주둔 러시아군 기습 공격(1904년 2월8일). 일본 도고함대 요동반도 상륙(5월5일), 조선을 거쳐 북진한 일본군, 압록강 건너 만주 진입(4월 중순).
②일본, 만주군 총사령부 설치(1904년 6월) 총병력 15개사단 확충. 여순 함락(1905년 1월1일)에 이어 봉천전투 승리(3월).
③일본은 재정부족으로, 러시아는 혁명으로 전쟁수행 불가능 상태. 일본, 결정적 승리 후 강화에서 우위 점하기로 결정.
 
 
03. 전쟁의 결과
①러일전쟁으로 일본은 동아시아의 강자에서 세계의 강자로 발돋움하며 한반도에서의 독점적 우위 확보.
②러시아 지원한 독일에 대해 유럽은 영-프랑스 협상, 영-러시아 협상 등으로 해상진출 봉쇄. 이는 훗날 제1차 세계대전의 한 원인으로 작용.
③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 영국ㆍ미국은 일본이 만주지방을 독점하자, 또 다시 일본 견제.
 
 
04. 일본의 러시아 전쟁 승전 원인
①일본은 청일전쟁으로 받은 배상금으로 산업발전 시키며 인구 4000만 보유. 징병제로 25만의 정규군, 50만의 예비군 동원 체제 갖춰. 청과의 실전경험으로 군사기술ㆍ교리 등 체계화.
②여순기지 기습으로 러시아의 극동 함대, 블라디보스톡에 묶어(항구 결빙으로 전함 이동 불가능).
③기관총 등 발명으로 전투의 양상이 참호전으로 바뀌면서, 공격-수비 모두 참혹한 피해(일본 13만명 사망, 러시아 9만명 사망)
 
 
05. 쓰시마 해전(1905.5.27 04:45)
①유럽에서 발진(1904년 10월15일)한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영국과 미국의 비협조로 기항지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어쩌다 기항해도 석탄, 식량, 식수 보급 등을 받지 못하는 상태(영국의 영향력)로 9개월만에 극동 도착(1905년 5월27일).
②영국은 수에즈운하 통과를 허가하지 않아, 발틱함대는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3만7000km를 항해.
③쓰시마섬 근해에서 대기하던 일본 도고의 함대(전함 4척, 순양함 8척, 구축함 21척, 어뢰정 60척)는 지칠대로 지친 발틱함대(전함 8척, 순양함 8척, 구축함 9척)를 기습, 전멸.
④독일만이 러시아에 석탄보급 등 적극 지원.
⑤이 승리에 대해 일왕(덴노)이 ‘경의 공적은 영국의 넬슨 제독보다도 뛰어나다’고 칭찬하자, 도고는 ‘조선의 이순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답변. 도대체 조선의 이순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그때부터 연구하면서, 조선에서도 이순신의 공적을 재평가 분위기.

기사입력: 2018/07/25 [09:02]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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