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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춘추시대 말기 군웅들의 피 튀기는 복수극
①와신상담…오왕 합려ㆍ부차, 오자서, 월왕 구천 등이 주인공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7/27 [19:34]
[김영수 잡학여행] =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단어의 뜻만으로는 그 속에 숨은 모든 의미를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를 단어대로 해석하면 ‘시골 늙은이의 말’이지만, 정작 숨어있는 정확한 의미는 ‘인생의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고사성어는 말 그대로, 어떤 일이 있어서(故事) 생겨난 말(成語)이므로 도대체 이전에 어떤 일(故事)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사성어 중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며 고통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있다. 내용은 장작더미에서 자면서(臥薪) 자신의 몸을 괴롭혀 부친의 복수를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 속에 기어코 복수를 하고, 복수를 당한 상대방은 그 치욕을 잊지 않으려고 곰쓸개를 핥으며(嘗膽) 복수를 꿈꾼다.

그런데 이 ‘와신상담’ 하나에는 구구한 역사가 숨어있고, 드라마틱한 인간 군상들의 절절한 삶이 펼쳐진다.
 

◇ 혼란의 시작…주(周)의 몰락과 춘추시대
하(夏)-은(殷)에 이은 중국의 지배세력은 주(周)나라다. 주(周)는 친족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分封), 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주는 봉건제(封建制)를 채택한다. 주(周) 12대 유왕(幽王)은 포사(褒似, 늙은 궁녀가 용의 침으로 임신해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라는 여인에게 정신을 잃고 실정을 거듭한다.

▲ 춘추오패의 대략적 세력범위와 위치(그래픽=김영수).     © 경기도민뉴스

심지어 친아들 의구(宜臼)를 죽이고 포사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자, 의구는 유력자인 신후에게로 도망쳐 도움을 청했다. 신후는 견융(犬戎, 중국의 서북쪽 감숙ㆍ섬서ㆍ산서 지역의 이민족) 등과 결탁, 유왕을 혼내주기 위해 주의 수도 호경(鎬京)을 침입(BC771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견융의 우두머리는 유왕을 죽여 버리고 포사를 데려가 자기 여자로 삼았다. 유왕에게 적당한 주의만 주려했던 신후는 당황하지만, 일단 의구를 제13대 주평왕으로 추대한다.

일단 주의 문물을 맛본 견융은 주왕실에 대해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고 견디다 못한 주평왕은 호경에서 동쪽(낙읍, 雒邑)으로 천도(BC770년)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 전에 서쪽에 수도가 있던 주나라라는 의미로 서주(西周), 이후를 동쪽으로 옮겨 간 주나라라는 의미로 동주(東周)로 구분한다.
 
 
◇ 오월동주…살기 위해 원수끼리 어쩔 수 없이 손을 잡다
여자문제로 친자식을 죽이려하고, 이에 반발해 신하가 이민족과 손잡고 왕을 시해하는 막장이 벌어지자, 제후들은 주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며 서로 패권을 다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를 춘추시대(BC770~BC403)라고 부르는데, 서로 먹히고 먹히는 쟁패 속에 제(齊)ㆍ연(燕)ㆍ진(晉)ㆍ진(秦)ㆍ노(魯)ㆍ송(宋)ㆍ정(鄭)ㆍ진(陳)ㆍ채(蔡)ㆍ초(楚)ㆍ오(吳)ㆍ월(越) 12개국이 살아남는다.

12개국을 대표해서 당대 가장 걸출한 나라의 군주가 대표가 돼서 주왕실에 대한 문안 등의 의례(儀禮)를 집전하며 대표 역할을 했는데 이들이 바로 춘추오패(여러 가지 이설이 있고,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로 흔히들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초장왕(楚莊王), 오왕 합려(吳王 闔閭), 월왕 구천(越王 勾踐)을 꼽는다.


▲ 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오(吳)와 월(越)은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권을 다투던 나라로 처절한 각축을 벌인다. 당연히 두 나라 사람 사이의 감정도 좋지 않아서 오와 월은 서로 철천지원수 보듯이 했다. 그런데도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서로 협력하는 상황을 빗대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바로 오월동주(吳越同舟,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탄 상황에서, 어려운 처지를 맞자 협력)다.
 
 
◇ 오왕 합려의 죽음…아들 부차가 ‘와신’을 행하다
오왕합려가 춘추오패의 한명이 된 것은 본인의 출중함도 있었지만, 초나라 출신의 명재상 오자서(伍子胥)의 공이 컸다. 굳이 비유하자면, 삼국지연의 동오의 주유ㆍ여몽과 비슷한 전투형 모사(謀士)였던 오자서는 전략가 손무(손자병법의 저자)를 영입하고, 오왕 합려를 받들어 평생의 원수인 초나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오는 진(晉)나라의 ‘오를 도와 초를 제압한다’는 정책에 따라 수몽(壽夢, BC585~BC561) 치세에 진의 군사기술을 습득하고 중원의 문화를 수용하며 부국강병을 일궈냈다. 야심가인 오왕 합려와 복수에 불타는 오자서는 손자를 영입, 초나라를 다섯 번 공격해 초의 수도 영(郢)을 함락하고 합려는 패자(覇者)에 올랐다(BC506년).

▲ 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초평왕에게 아버지와 형이 죽음을 당하며 집안이 몰락했던 오자서는 이미 죽어 묻힌 초평왕의 시신을 꺼내 채찍질을 하며 복수를 갚았다(굴묘편시 掘墓鞭屍). 오자서의 집요함에 질린 초의 신포서(원래 오자서는 초나라 출신이어서 둘은 아는 사이였다)가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었느냐며 질책하자, 오자서는 그 유명한 일모도원 도행역시(日暮途遠 倒行逆施, 해는 지고 갈길은 멀어 거꾸로 걸으며 거꾸로 일을 했다)라고 답한다.

초의 수도를 함락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한 상태에서 이듬해(BC505년) 월나라가 오의 본국을 침략한다. 또 동생 부개가 왕을 칭하고 쿠데타를 일으키자, 오왕합려는 본국에 돌아와 난을 평정했다.

월나라의 침공으로 초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던 오왕합려는 원한을 풀기 위해 월나라를 침략(BC496년)한다. 그러나 월의 장군 범려의 책략에 막혀 패배하고 다리에 활까지 맞아 상처가 덧나 죽게 되자,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아들 부차는 아버지 오왕합려의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는 와신을 행한다.
 

<와신상담, 57년에 걸친 복수와 복수>
 
춘추시대 말기 군웅들의 피 튀기는 복수극
①와신상담…오왕 합려ㆍ부차, 오자서, 월왕 구천 등이 주인공
월왕구천, 온갖 치욕을 참으며 복수 다짐
②와신상담…적국 대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오왕부차의 교만 부채질
복수의 화신 오자서, 군주에게 배신당하다
③와신상담…복수에 이은 설욕, 22년만에 대장정 마무리
오왕합려-오자서, 각자의 야망을 위해 연합
④와신상담…천하의 인재들이 복수와 야망을 불태우다
오자서, 복수를 위해 평생을 불사르다
⑤와신상담…막장 초(楚)를 탈출한 후, 멸망위기에 몰아넣어
월왕구천, 복수를 이루자 공신(功臣) 숙청
⑥와신상담…‘동병상련’ 백비, 오와 오자서를 배신하다
도주공 범려,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다
⑦와신상담…세번 천금을 이루고 두 번 나눠주다
 
기사입력: 2018/07/27 [19:34]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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