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028] 월왕구천, 온갖 치욕을 참으며 복수 다짐
②와신상담…적국 대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오왕부차의 교만 부채질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8/06 [08:15]
[김영수 잡학여행] = 오왕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아버지의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섶에 누워서 잠을 청했고, 드나드는 문객들에게 ‘너는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외치도록 했다고 한다. 처절한 복수심에 불타는 치열한 자기다짐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향에서 해석하면 오왕부차가 사실은 심지(心志)가 굳세지 않은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싶기도 하다.
 
 
◇ 아들 부차를 사로잡아 복수심을 잊게 만든 미녀 서시
일국의 왕이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면서 설욕을 위해 노심초사한다면, 적(敵)도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부차의 ‘와신’은 결국 나약한 자신의 마음을 다지기 위한,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었는지도 모른다.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굳이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완벽하게 상대방의 뒤통수를 쳤을 것이다.

오왕부차가 심지가 굳지 않았다는 것은 월왕구천을 굴복시켜 일단 복수는 하지만, 오자서의 간곡한 충언을 물리치고 월왕구천을 용서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온갖 굴욕을 참고 견딘 월왕구천은 결국 오왕부차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고야만다.

▲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을 그린 벽화(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월왕구천이 오왕부차의 교만을 부채질하기 위해 바친 선물(뇌물)이 바로 그 유명한 서시(西施, 본명은 施夷光이라고 전함)다. 서시는 말 그대로 마을의 서쪽에 살고 있는 미녀였는데, 가슴앓이가 있어서 문밖에서 눈을 살짝 찌푸리고 손을 가슴에 얹는 그 모습(서시효빈 西施效嚬)이 그토록 고혹적이어서 뭇 남성들이 넋을 잃고 쳐다봤다고 한다.

원체 아름다운 탓에 서시가 강가에서 빨래를 할때, 물고기들이 서시의 미모에 넋을 잃어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에 빠졌다(침어 沈魚, 훗날 미녀를 형용하는 ‘낙안침어’의 고사성어가 여기서 시작한다)는 얘기도 있다.
문제는 동쪽에 사는 추녀가 자신의 외모는 생각하지도 않고, 서시가 인기가 높은 것이 찡그림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자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얼굴을 찡그렸다(동시효빈東施效嚬). 이후,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동시를 보기 싫어(또는 역겨워) 마을이 텅텅 비었다는 얘기는 믿거나 말거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 고사를 빌어 ‘제동시효빈도(題東施效嚬圖)’라는 자신의 시에서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하는 것의 어리석음에 대해 풍자하기도 한다. 어설프게 남을 흉내낸다는 비슷한 의미의 고사성어로는 한단지보(邯鄲之步)가 있다.
 
 
◇ 월왕구천, 회계산에서 결국 오왕부차에게 치욕을 당하다
앞서 와신상담에서, ‘와신’이 오왕부차의 고사임을 소개했다. ‘상담’은 월왕구천이 쓸개를 핥았다는 고사인데, 후세에 말 만들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지어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월왕구천이 ‘상담’을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월(越)이 초를 치기위해 나라를 비운 오(吳)를 침공한 것은 초나라의 ‘월을 도와 오를 제압한다’라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즉 진(晉)-오(吳), 초(楚)-월(越)이 각각 연합한 상황에서, 월이 오의 후미를 들이치는 것은 당연한 전략ㆍ전술의 하나였다.

여하간 오를 침공했던 월왕윤상은 잠시후 사망(BC496)하고 아들 구천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월왕윤상이 사망하고, 아직 후계구도가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오왕합려는 월을 침략하지만, 월의 모사(謀士)인 범여의 계략에 말려 결국은 그 자신도 죽음에 이른다.

오왕부차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오자서, 손자, 백비 등의 당대 최고 엘리트의 도움을 받아 착실하게 월을 침략할 준비를 다진다. 오가 월을 침공하려한다는 첩보를 접한 혈기방장한 월왕구천은 범여의 만류를 물리치고 오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BC494)하지만, 대초(大椒)라는 곳에서 오군에게 대패한다. 패배한 월왕구천은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가 포위당한다(회계지치 會稽之恥).

중과부적으로 살아날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 월왕구천은 스스로 부인을 죽이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려고 하지만 신하 문종과 범여는 결전은 죽음일 뿐이라며 일단 살아남아야 복수도 가능하다고 만류한다.

그러면서 탐욕스런 백비(伯嚭)에게 미녀와 뇌물을 보내 구명(求命)을 도모한다. 오자서는 월왕구천을 살려두면 후환이 있을 것이며, 즉각 죽일 것을 주장하지만 뇌물을 받아먹은 백비는 ‘죽음을 앞둔 월군이 사생결단으로 저항하면 우리측 군사의 손실도 크고, 사방의 강적들이 그 틈을 노릴 수 있다’며 항복을 받아들일 것을 건의한다.
 
 
◇ 월왕구천, 복수를 위해 똥을 먹다
월왕구천의 회계산에서의 항복은 일국의 왕으로는 참기 힘든 치욕을 감내하는 가혹한 조건이 붙었다. 항복 조건은 월왕구천은 오왕부차의 신하가 되고, 자신의 부인은 오왕의 첩으로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월왕구천의 강화 제안에 오자서는 극구 반대하며 일단 죽이고 봐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오왕부차는 백비의 간언(?)과 북쪽으로의 영토 확장을 위해 국력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강화조건을 받아들인다.

오왕부차의 월에 대한 전쟁의 명분은 부친에 대한 복수였다. 당연히 월왕구천은 자신이 죽음으로 내몬 오왕합려의 묘소에서 2년동안 묘지기 생활을 해야 했다. 오왕부차가 자신의 부친을 찾기라도 하면, 묘지기인 월왕구천은 오왕부차가 말을 타고내리기 편하도록 자신의 몸을 구부려 인간계단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월왕구천에게는 두명의 걸출한 신하가 있었는데, 바로 문종과 범여였다. 월왕구천은 문종은 본국으로 보내 내정을 담당하게 하고, 범여는 자신을 호종하도록 했는데, 전쟁을 반대하던 범여의 간언을 뿌리치고 자신을 포함한 신하들마저 적국에서 온갖 고생을 하는 것에 아마도 마음이 찢어졌으리라.

오에서의 포로생활 3년째, 월왕구천은 오왕부차가 병이 나자, 똥을 맛보며 ‘조만간 병이 쾌차할 것’을 장담한다(군자상분 君子嘗糞). 오왕부차는 월왕구천이 자신의 똥을 맛보면서까지 충성을 바치는데다가 백비가 그만하면 이제는 풀어줘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자 월왕구천을 본국으로 돌려보낸다(BC491년).

물론 오자서는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이미 자신이 강자임을 알고 있는 오왕부차는 마음속의 교만함으로 오자서의 반대를 극구 물리친다. 여기에는 역시 뇌물을 좋아하는 백비에게 범여가 먹인 뇌물의 힘도 작용했다.


<와신상담, 57년에 걸친 복수와 복수>

춘추시대 말기 군웅들의 피 튀기는 복수극
①와신상담…오왕 합려ㆍ부차, 오자서, 월왕 구천 등이 주인공
월왕구천, 온갖 치욕을 참으며 복수 다짐
②와신상담…적국 대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오왕부차의 교만 부채질

복수의 화신 오자서, 군주에게 배신당하다
③와신상담…복수에 이은 설욕, 22년만에 대장정 마무리
오왕합려-오자서, 각자의 야망을 위해 연합
④와신상담…천하의 인재들이 복수와 야망을 불태우다
오자서, 복수를 위해 평생을 불사르다
⑤와신상담…막장 초(楚)를 탈출한 후, 멸망위기에 몰아넣어
월왕구천, 복수를 이루자 공신(功臣) 숙청
⑥와신상담…‘동병상련’ 백비, 오와 오자서를 배신하다
도주공 범려,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다
⑦와신상담…세번 천금을 이루고 두 번 나눠주다
기사입력: 2018/08/06 [08:15]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