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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복수의 화신 오자서, 군주에게 배신당하다
③와신상담…복수에 이은 설욕, 22년만에 대장정 마무리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8/08 [08:56]
[김영수 잡학여행] = 사실이든 아니든 본국으로 돌아온 월왕구천은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쓸개를 매달아 식사 전에 먼저 맛을 보았다(상담 嘗膽). 월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짓고, 부인에게는 직접 베를 짜도록 하고, 과세를 줄여 백성이 생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범여는 오왕부차가 더욱 교만해지도록 미녀 서시(西施)를 바쳤다. 오왕부차는 서시를 한 껏마음에 들어 해 고소대(姑蘇臺)를 재건축하고, 월은 고소대 재건축을 지원해 오가 국력을 낭비하도록 부추겼다. 해마다 조공을 바쳐 경계심도 늦추도록 했다.
 
 
◇ 오자서의 죽음…오나라 몰락의 전주곡
월왕구천의 지극한 정성에 넘어간 오왕부차는 월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진정한 패자(또는 더욱 강력한 왕중의 왕?)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 북쪽 제나라 공격에 나섰다. 오자서는 월나라를 뒤에 두고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극구 만류했다.

오자서의 만류를 무시하고 출전한 오왕부차는 제나라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뒀다(BC489). 이 승리에 도취해 또 다시 제나라를 공격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려고 하자, 오자서가 또 반대했다.

능력은 확실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오자서의 집요함(초평왕의 시체를 매질한 사건 등)에 질린 탓도 있었는지, 오왕부차는 오자서를 제나라로 보낸 후 자결을 명령했다. 오자서는 목숨을 끊으며 자신의 무덤가에 가래나무를 심어 그것으로 오왕부차의 관을 만들고, 자신의 눈을 빼내 오나라 동쪽 관문에 걸어 오나라 멸망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BC485)고 한다.

▲ 1965년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장링(江陵)의 망산일호초묘(望山一號楚墓)에서 출토된 월왕 구천의 검.(출처=나무위키).     © 경기도민뉴스

오자서의 죽음을 뒤로한 채 제나라를 공격한 오왕부차는 제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고, 당시까지만 해도 변방 오랑캐 비슷한 처지였던 오나라를 중원의 강자와 같은 반열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잇단 성공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교만은 중대한 실수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월왕구천이 마음 속 깊이 자신에게 항복했고 절대 덤벼들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진지 오래였던 오왕부차는 진나라, 노나라 등의 제후국을 불러 회맹(BC482년)하기 위해 송나라의 황지(黃池)라는 곳으로 향했다.

똥의 맛을 보며, 묘지기로 수모를 겪었던 월왕구천이 5만군사로 오왕부차의 귀로를 차단하고, 오나라 수도를 공격했다. 월왕구천은 오나라 수도 오(吳)를 함락하고 즉각 태자를 죽였다. 송나라 땅 황지에서 이 소식을 들은 오왕부차는 화의를 신청했고, 기습에서는 이길 수 있었지만 오나라 주력부대와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월왕구천은 강화를 받아들여 철수한다.
 
 
◇ 오의 멸망으로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전환
이때부터의 기록이 불확실하고 애매한데, 도대체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월왕구천에 대해 오왕부차가 취한 적극적인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이 당시 무리한 전쟁, 대형토목공사 등으로 오의 국력이 이미 기울어진 상황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오나라의 국력이 급격히 쇠퇴한 것을 간파한 월왕구천은 군대를 동원해 오나라를 공격(BC475년)했다. 명재상 오자서도 이미 자결해 없는 상황에서, 전략가 손무도 종적을 감춘 상태의 오나라의 국력은 월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기원전 478년 구천은 다시 오나라를 공격해 입택(笠澤)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기원전 475년 오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구천은 전면전을 펼친 끝에 승리했다

월왕구천이 오나라에서 3년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국(BC491년)한지 19년만인 이 대대적인 공격에 오왕부차는 3년간 저항하지만, 결국 고소산에서 월왕부차에게 항복(BC473년)한다. 오왕부차는 회계산에서 월왕구천을 살려준 것을 기억하며, 그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지만, 범여가 월왕구천에게 똑같은 일을 당할 것이냐며 처단을 주장한다.

결국 오왕부차는 저 세상에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며 자신의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자결하니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가 완성되기까지 무려 22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오를 멸망시킨 월왕구천은 군대를 이끌고 북상해 서지(徐地)에서 제, 진, 송, 노나라를 불러 회맹을 열고 춘추시대 마지막 패자(覇者)로 등극한다.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이고, 영원한 강자도 없는 법이어서 월왕구천이 패권의 자리를 초나라에게 내주자, 초와 진(晉)이 각축을 벌이고, 제, 진(秦) 등이 두각을 나타내기에 이른다.

월의 오나라 공격을 기점으로 춘추시대는 막을 내리고, 전국시대(BC 475~221) 접어든다. 춘추 초기만해도 100여개국이던 나라의 수는 춘추말~전국초에 접어들면서 전국7웅이 서로 각축을 벌인다.

한(韓), 위(魏), 조(趙), 제(齊)의 4개신흥국과 진(秦), 초(楚), 연(燕)의 3개 전통국가의 각축에서 최후의 승자가 바로 진(秦)이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의 지도자는 자신이 아무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일궜으므로 ‘3황5제’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로 황제(皇帝)로 칭한다. 그가 바로 진시황이다.


<와신상담, 57년에 걸친 복수와 복수>

춘추시대 말기 군웅들의 피 튀기는 복수극
①와신상담…오왕 합려ㆍ부차, 오자서, 월왕 구천 등이 주인공

월왕구천, 온갖 치욕을 참으며 복수 다짐
②와신상담…적국 대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오왕부차의 교만 부채질
복수의 화신 오자서, 군주에게 배신당하다
③와신상담…복수에 이은 설욕, 22년만에 대장정 마무리
오왕합려-오자서, 각자의 야망을 위해 연합
④와신상담…천하의 인재들이 복수와 야망을 불태우다
오자서, 복수를 위해 평생을 불사르다
⑤와신상담…막장 초(楚)를 탈출한 후, 멸망위기에 몰아넣어
월왕구천, 복수를 이루자 공신(功臣) 숙청
⑥와신상담…‘동병상련’ 백비, 오와 오자서를 배신하다
도주공 범려,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다
⑦와신상담…세번 천금을 이루고 두 번 나눠주다
기사입력: 2018/08/08 [08:56]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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