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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오왕합려-오자서, 각자의 야망을 위해 연합
④와신상담…천하의 인재들이 복수와 야망을 불태우다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8/13 [07:56]
[김영수 잡학여행] = 원래 초의 남쪽과 동쪽해안가에 있던 오(吳)와 월(越)에 대해 전통의 강국이었던 진(晉)ㆍ위(魏)ㆍ조(趙)ㆍ노(魯)ㆍ연(燕)ㆍ제(齊)ㆍ초(楚)ㆍ진(秦) 등은 변방의 오랑캐무리 정도로 취급하며 얕보던 세력이었다. 심지어 남방의 강국인 초에 대해서도 지독한 방언으로 말귀를 알아듣기 힘들다고 조어(鳥語)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춘추 중반만 해도 북의 진(晉)과 남의 초(楚)가 쟁패를 벌이고 있었다. 전쟁에 시달리던 이웃나라들은 연합해 송(宋)의 중재로 진-초가 일종의 평화협정인 ‘미병(彌兵)회담’을 체결(BC546)하도록 한다. 직접적인 전쟁을 하지 못하게 된 진-초 두나라는 각각 상대방의 배후를 노리기 위해 오와 월을 이용한다. 진(晉)은 초의 후방인 오(吳)를 지원하고, 초는 오의 이웃인 월(越)과 연합(진-오 VS. 초-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오자서, 자객 전제를 시켜 요 제거…광 옹립
자, 이제 와신상담의 주인공 중 하나인 오왕합려를 살펴보자. 원래 오왕수몽(壽夢BC585~561)은 제번(諸樊), 여제(餘祭), 여매(餘昧), 계찰(季札) 네 아들을 뒀고, 이중 막내 계찰이 가장 현명했다. 수몽은 막내 계찰이 왕위를 잇기를 바랐으나, 계찰은 형을 젖히고 왕이 될 수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 오왕합려와 초나라 출신 오자서가 손을 잡으면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진다. 정작 와신에서 상담까지는 20여년의 시간이 걸리고, 굵직한 등장인물만도 100여명에 달한다.(사진=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수몽은 일단 장남 제번을 왕으로 봉했고, 수몽의 사후 왕위를 물려받은 장남 제번은 막내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했으나, 끝까지 사양하자 어쩔 수 없이 즉위(BC561~548)한다. 그러면서 왕위를 자식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준다. 그러면, 막내 계찰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여제(BC548~531)에 이어 세째 여말(BC531~527)의 뒤를 이어야 할 계찰은 끝내 왕위를 사양하고 은둔해버렸다. 이렇게 해서 왕위는 여말의 아들인 요(僚BC527~515)에게 넘어갔다.

계찰이 없어졌으니, 순번에 따라 자신이 왕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제번의 아들 광(光)의 생각과는 달리 혼란 속에 왕위는 여매의 아들 요(僚)에게 돌아갔다. 장남 제번의 아들로, 수몽의 적장손이기도 한 광(光)은 결국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을 겪고 망명해온 걸출한 인물 오자서와 손을 잡는다.

오자서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는 현재의 오왕 요보다는 야심만만한 광이 나으리라 판단했고, 전제(?諸)라는 인물을 시켜 요를 암살하기에 이른다.
 

◇ 대단한 기개를 지녔던 석요리, 역시 오자서를 위해 죽다
오자서를 위해 요를 제거한 전제라는 인물은 그 자리에서 호위병들에게 살해당한다. 그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오자서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감수한 것인데, 이처럼 오자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은 또 있다.

일단 요를 제거하기는 했지만, 오왕합려(광)의 고민은 요의 아들인 태자 경기의 존재였다. 살아있다면 언제든지 위협이 될 인물을 완벽하게 재거하는 것이 오자서의 스타일이었던 듯, 이번에도 오자서는 석요리라는 인물을 추천한다.

석요리는 오왕합려에게 왕을 비난한 죄로 자신의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자신의 한 팔을 잘라버리라고 계책을 내놓는다. 극강의 고육책 덕분인지, 석요리는 ‘오왕합려를 비난한 죄를 지고, 도망친 의사’로 요의 아들 경기에게 받아들여진다.

석요리는 경기를 암살한 후, 경기의 호위병에게 붙잡히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확실히 모를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처자식까지 죽여가면서 남을 위한 것이 과연 인(仁)이냐? 둘째는 신왕(오왕합려)을 구해 구왕의 아들을 죽인 것이 과연 의(義)냐? 셋째는 내 몸을 손상시켜가면서 남을 위해 일한 것이 과연 지(智)냐?”

석요리라는 인물은 전제와는 조금 다른 것이, 그 자신 3척도 채 안되는 단신이었다고 전해진다. 석요리에게는 대단한 기개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는 일화가 있는데, 바로 초휴흔이라는 9척이 넘는 거인이 강을 건너다가 교룡(아마도 대형 식인어류인 듯)에 의해 천리마를 잃는다.

초휴흔은 천리마를 잃자, 손수 강 속에 들어가 교룡을 잡고는 통쾌한 설욕을 자축하며 강가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3척단신의 석요리가 나타나 “말을 잃은 것은 이미 실(實)을 잃은 것이고, 교룡을 잡은 것은 허(虛)를 취한 것에 불과한데, 뭐가 자랑스러워 잔치를 벌이느냐”고 일침을 가한다. 석요리의 통렬한 비판에 초휴흔은 자괴감을 못 이겨 자결하고 만다.

당대의 역사(力士)가 목숨을 바치고, 협사(俠士)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오자서는 비장미와 함께 인간미도 풍겼던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 오자서와 손무, 필연적인 명재상과 명장의 만남
오자서와 또 한 사람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는데, 바로 ‘손자병법’의 저자로 알려진 손무다. 오왕 요를 제거하고, 그 소생인 경기도 제거한 오왕합려는 중원진출을 위해 초를 쳐야했지만, 아직은 강대국 초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초는 월과 연합해 오의 배후를 노리도록 조종하고 있었다.

▲ 손자의 등장은 지금까지 궈족장군 위주의 전투를 보병위주의 전면전으로 전환하고, 불합리한 요소를 최대한 제거해 승전의 기본법칙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오자서는 오왕합려에게 손무를 소개(BC515년)한다. 오자서가 소개했다고는 하지만, 오왕합려는 선생의 병법을 모두 읽었지만, 실전에 활용가능한 지를 반문하며 궁녀들도 조련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손무는 궁녀들도 조련이 가능하다고 대답했고, 오왕합려는 궁녀 180명을 내어주며 훈련시키도록 했다. 손무가 군령의 엄격함을 보이기 위해 대장으로 삼은 궁녀 둘을 처형하자, 궁녀들은 일사불란하게 손무의 지휘를 따랐다(삼령오신 三令五申).

명재상 오자서, 명장 손무의 착실한 준비를 거쳐 오왕합려는 손무를 대장으로, 오자서를 부장으로 삼아 초를 공격(BC506년)한다. 이 공격에서 오군은 초를 연이어 격파하며 손무의 전략에 따라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던 초의 수도 영(?)을 함락시킨다.

이때 초의 지도자는 바로 초평왕과 진의공주 사이에서 낳은 초소왕(웅진)이었다. 궤멸적 타격을 입은 초는 게릴라전으로 저항을 계속하고, 신포서라는 충신이 진으로 달려가 초를 구원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오는 전쟁에서 이긴 것에 만족하고 철수한다.

이후 손무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미뤄, 손무가 이때 전사했다는 설과 은퇴했다는 설이 분분하다. 대체적으로는 오왕합려의 아들 부차가 왕이 된 후 오자서에게 함께 은퇴하자고 권유하지만 받아들이자 않자 홀로 은퇴했다는 설이 통설이다.
 
 
◇ 오자서 최악의 선택, 백비의 영입
현재 전해지고 있는 손자병법은 위무제(삼국지연의의 조조)가 윤문하고 주석을 단 것이다. 손자병법은 당시 전쟁의 양상이 귀족장군들의 일대일 전투에서 총병력 전투태세로 변화하는 것을 간파하고 새로운 전술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보병을 독립부대로 운용, 전차로는 불가능한 산악지대 통과 등의 작전반경을 확장했으며, 이에따른 병력 운용의 폭도 넓어져 본격적인 기습ㆍ매복 등의 양동작전도 가능해졌다.

손무의 손자병법은 전쟁을 위한 마스터플랜의 개념을 바탕으로, 단순히 전투현장에서의 용병술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영향력까지 감안한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경제적인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확실한 차별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토록 명민했던 오자서가 영입에 실패했던 한사람이 바로 백비(伯?)다. 심지어 실패정도가 아니라, 오자서를 죽음으로 이끌고 나라를 망치기까지 한다.

오왕합려와 오자서가 오나라를 손에 넣고 기틀을 잡으려던 때에, 초의 비무기가 또다시 모사를 꾸며 백주리(伯州犁) 부자가 죽음을 당한다. 손자인 백비가 오나라로 망명해 오자, 오자서는 합려에게 추천했다.

오의 대부 피리(被離)는 “백비의 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으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성품”이라며 친하게 지내지 말 것(吾觀?之爲人, 鷹視虎步, 專功殺之性, 不可親也)을 권유했다.

여기에 오자서는 “같은 원한을 지니고 있다”며 <하상가(河上歌)> 구절을 인용 ‘같은 병을 앓으니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같은 걱정이 있으니 서로 구해 주네.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은 서로 따르며 날아가고, 여울을 따라 흐르는 물은 그로 인하여 다시 함께 흐르네.(子不聞河上之歌乎. 同病相憐, 同憂相救. 驚翔之鳥, 相隨而飛, 瀨下之水, 因復俱流.)’라고 응답한다.

결국 백비는 월에 매수당해 오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오자서 역시 백비의 무고로 죽음에 이른다.


<와신상담, 57년에 걸친 복수와 복수>

춘추시대 말기 군웅들의 피 튀기는 복수극
①와신상담…오왕 합려ㆍ부차, 오자서, 월왕 구천 등이 주인공

월왕구천, 온갖 치욕을 참으며 복수 다짐
②와신상담…적국 대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오왕부차의 교만 부채질
복수의 화신 오자서, 군주에게 배신당하다
③와신상담…복수에 이은 설욕, 22년만에 대장정 마무리
오왕합려-오자서, 각자의 야망을 위해 연합
④와신상담…천하의 인재들이 복수와 야망을 불태우다
오자서, 복수를 위해 평생을 불사르다
⑤와신상담…막장 초(楚)를 탈출한 후, 멸망위기에 몰아넣어
월왕구천, 복수를 이루자 공신(功臣) 숙청
⑥와신상담…‘동병상련’ 백비, 오와 오자서를 배신하다
도주공 범려,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다
⑦와신상담…세번 천금을 이루고 두 번 나눠주다
기사입력: 2018/08/13 [07:56]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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