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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조선후기, 삼정의 문란이 민란 유발
양반지배층. ‘면역면세 특권’ 누리려 농민층에게 부담전가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8/22 [08:35]
[김쌤’s 한국사] = 조선후기 들어 삼정(三政 전정ㆍ군정ㆍ환곡)의 문란은 백성의 삶을 힘겹게 하는 요소였다. 이 삼정은 모두 일종의 세금으로 국가의 입장에서는 재정정책의 하나인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혹한 수탈로 이어져 백성들을 괴롭혔다. 삼정 문란의 핵심적인 원인은 양반의 특권(군대 안가, 세금 안내)을 농민층이 고스란히 짊어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01. 전정(田政) 관리 농간으로 규정보다 많은 세금
①17세기 이후 대동법ㆍ균역법 등 세제개혁으로 각종 조세가 토지로 집중.
②전정은 양전(측량)과 수세(세금 부과ㆍ납부)의 과정을 거치는데, 양전은 결부법(생산량 기준)으로 토지의 등급을 6등급으로 구분하고, 20년마다 양안(토지대장) 작성. 수세는 정부에서 부과ㆍ징수하는 전세, 대동, 삼수미, 결작 등 법정 정규세에 이런저런 명목의 각종 부가세가 더해져.
③조선 후기는 조세를 총액제의 원칙에 입각해 징수. 양전으로 각 지역의 토지면적ㆍ토지 소유관계ㆍ생산 가능량 등을 파악, 납세대상 토지의 총 결수(결총) 확정. 지역에서 납부해야 할 세의 총액(세총)을 확정해 납세자에게 배정ㆍ징수.
④전국적 규모의 양전 시행하지 못한 상태(토지 면적, 세금부과 가능 토지 확인 불가)에서 특정지역에 총액을 매기는 식으로 각종 전결세 부과ㆍ징수 불합리 존재. 수취 과정에서 전정 담당 관료들의 각종 부정.
⑤농민들은 규정보다 많은 세금 부담, 정부는 세수 감소로 재정난.

▲ 전북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의 만석보터(시도기념물 제33호, 1976년 4월2일 지정). 지방수령의 탐학이 민란의 원인이 됐다.(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관리들의 부정행위>

진결(陳結)=생산등급이 낮은 토지를 높은 토지로 만들어 농민에게서 많은 세금 거두고, 차액 착복.
은결(隱結)=생산량이 많은 토지를 하위등급 토지로 바꿔 받은 세금을 국가에 납부하지 않고 착복.
허결(虛結)=실제 토지가 없는데도 허위문서 세금을 징수, 착복.
걸복(乞卜)ㆍ조복(助卜)=서리(조선시대 지방관아의 이방 호방 등 아전 향리는 무보수)들의 생활비 보조 명목 가산 징수.
도결(都結)=아전들이 공금 횡령 후 벌충하기 위해 전결의 세율을 인상, 징수.
허집(虛執)=자연재해 때는 세금 감면해야 하는 데도, 그대로 받아 착복.
인정미(세무관료의 인건비 석당 2승), 창역가(창고관리인의 인건비 석당 6승), 국왕 생일의 특별 진상, 공인역가(석당 1승), 영주인(관찰사와 현감의 문서연락원 인건비), 가승미(加升米)ㆍ곡상미(斛上米)ㆍ간색미(看色米)ㆍ타석미(打石米)ㆍ이가(二價)ㆍ선가(船價) 등 추가 징수.

 

02. 군정(軍政) 국방비 부족에 병력도 부족
①조선 병역체제는 병농일치(兵農一致), 국민개병으로 16세~60세 모든 남자는 6년마다 병적등록 실시, 현역 복무.
②현역이 아닌 장정은 현역복무자의 생계와 경비를 위해 장정 1명이 연간 포(布) 2필 납부. ‘경국대전’은 2명을 1보로, 갑사(甲士, 현역병) 1명에게 2보를 준다고 규정, 즉 장정 1명이 현역으로 복무하는 동안 현역이 아닌 장정 2명이 현역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백성의 토지 경작.
③군역(軍役) 자체가 부담이 커(지금도 군대 안 가려고 정신질환 위장 등 병역면탈 많음), 백성들은 군역을 피하기 위해 권세가에게 투탁(노비 또는 노비 비슷한 상태인 전호)하거나, 승적(僧籍)에 들어가 부담 회피.
④조선 전기의 병농일치에 바탕을 둔 군역제는 100년도 안돼 16세기에 들어 방군수포제(放軍收布制)로 붕괴.
⑤군적수포제(軍籍收布制 1541/중종36)=지방 수령이 관할지역 군정(軍丁)으로부터 군포 2필 일괄 징수, 중앙정부에 납부. 병조, 군사력이 필요한 각 지방에 군포 내려 보내, 현지에서 군인 고용.
⑥임진왜란 중 훈련도감 설치(1594/선조27)로 오군영 성립, 용병제(직업군인)로 바뀌자 대부분의 양인 장정은 1년에 2필의 군포를 내는 납포군(納布軍 즉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가지 않음)화.
⑦오군영, 중앙관청, 지방 감영, 병영 등이 이중삼중으로 양인에게 군포 부과하며 백성 부담 가중. 군포 부과ㆍ징수과정에서 수령ㆍ아전의 횡령ㆍ착복으로 국가적으로는 군비 부족현상 발생하자, 병력 감원 등 극단적 조치로 군사체계 붕괴.
⑧양역변통론(良役變通論)에 이은 균역법(1750/영조26)으로 1년 2필의 군포를 1필로 줄여주는 대신 부족량을 결작ㆍ어염세ㆍ선세ㆍ선무군관포 등으로 보충.
⑨균역법으로 군포 부담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소작지에도 결당 2두의 결작 부과, 농민부담 여전.
⑩정부, 수입증대 위해 양정(良丁)의 수를 부풀려 책정. 숙종 때 1만이던 양정은 균역법 시행을 위한 사전 조사에서 30만, 균역법 실시 이후 50만으로 급증.
⑪양란 이후 호적 멸실, 신분제의 동요로 세금 부담층인 양인 감소 추세(납속, 모관으로 모두 양반으로 편입)속에서도 각 지방에 할당.
 
▲ 전남 여수시 연등동의 여수절도사안숙사적비(麗水節度使安潚事蹟碑, 문화재자료 제203호, 1998년 8월13일 지정). 안숙(安潚)이 호남좌수사로 부임(1809년, 순조9년), 가뭄으로 고통당하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거북선을 충무공 때의 도면을 참고해 새로 복원한 것, 환곡의 폐단을 지적해 바로잡는 등 여러 공적을 기리고자 건립.(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군포의 가치와 관리의 부정행위>
마포 2필의 가치는 목면 2필, 쌀 12두(단순 환산하면 30만~40만원), 조 16두, 대두 24두, 전(錢) 2량(兩)에 해당. 백골징포(白骨徵布)ㆍ황구첨정(黃口簽丁)ㆍ족징(族徵)ㆍ인징(隣徵)ㆍ강년채(降年債)ㆍ마감채(磨勘債)ㆍ군정수(軍政修)ㆍ신입례(新入禮) 등.
 

03. 환곡(還穀) 일종의 고리대금으로 변모하며 수탈로 변해
①16세기 중엽 명종 때 환곡에서 취식한 10분의 1을 호조에 회록(會錄 국가 회계에 편입시키는 것)하는 일분모회록(一分耗會錄) 제정.
②환곡을 통해 받는 이자 환모(還耗)가 국가 재정에 기여하자, 경비난에 허덕이던 중앙 관서ㆍ군영(軍營), 지방의 영(營)ㆍ진(鎭)ㆍ부(府)ㆍ역(驛)들이 환곡을 설치하고 수익에 열중.
③왜란ㆍ호란으로 국가재정 극도로 궁핍한 상태에서 청나라 사신 접대 등 경비지출 갈수록 증가.
④18세기 말엽 총 1000만섬의 환곡(실제로는 230만섬)이 각각의 관청에서 각양각색으로 운영. 일정 수익보장 위해 강제대여와 이자수탈로 변모. 지방수령은 조선 후기 오가작통 단위로 강제 대여(실제로는 장부상으로만 대여)와 이자 수탈 등 폐단.
⑤농민들은 채전(債錢 이자율 20%), 갑리(甲利, 이자율 50%) 등의 막대한 부담으로 임술민란(1862/철종13) 등 저항 불러.
 
 
04. 의창, 상평창, 사창, 환곡
①고구려 을파소의 건의로 실시한 진대법(194/고국천왕16)에서 시작. 이후 의창으로 발전.
②고려 태조 때 설치한 흑창(黑倉)을 확장ㆍ정비, 의창(義倉)으로 개편(986/성종5)하고, 국가 비축미 대여ㆍ회수, 빈민에게 무상 지급. 상평창(常平倉993/성종12) 설치=황금 1000냥을 기금으로 곡물의 매출 매입을 통한 물가 안정.
③11세기말 고려 귀족들의 토지 겸병으로 농민층 몰락(의창의 운영기금인 원곡은 원래 농민이 국가에 낸 세금), 의창 기능 상실.
④조선은 성리학적 이념 아래 왕도정치(王道政治) 추구하며 자연재해를 하늘이 지도자의 잘못을 꾸짖는 것으로 받아 들여.
⑤조선은 사전개혁(1389~1391)으로 소 농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키며, 의창 운영에 필요한 원곡(쉽게 말해 원금) 확보해 고려말 붕괴된 의창 기능 회복.
⑥15세기 중엽부터 양반 세가들의 토지 겸병으로 농민층 몰락, 의창 운영 곤란. 환곡 운영에도 변동 초래.
⑦국가에 식량을 먼저 빌리고 갚는 방식에서 일종의 담보물을 맡기고 식량을 빌려먹는 방식으로 환곡의 운영방법 변경(1445/세종27)
⑧관리비 부담으로 의창을 운영할 원곡 부족현상이 심해지자 군자곡(일종의 군량미)에 한해 1섬에 6말씩 이자를 받아 환곡 결손과 지방 관아의 경비에 보충(1457/세조3)에 하도록 조치. 결국 모든 유형의 환곡에서 취식(이자 수입)하면서 환곡 운영의 본질적 변화.
⑨농민층의 붕괴로 국가 주도의 의창에서 주민 주도의 사창으로 운영변화 움직임 있었으나, 모두 실패. 농민층의 경제적 몰락으로 당초 빈민구제를 위한 환곡은 부세(賦稅)화.
⑩외적(북로남왜)의 침입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세력을 키워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은 국방에 신경 써 국가 비축미 357만섬 비축(1413/태종13, 쌀 한 섬을 80kg짜리 두 가마니로 보고, 한 가마니의 가격을 100만원으로 단순 환산해도 7조1400억원)
기사입력: 2018/08/22 [08:35]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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