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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도주공 범려,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다
⑦와신상담…세번 천금을 이루고 두 번 나눠주다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8/22 [09:08]
[김영수 잡학여행] = 범려가 어디에서 출생하고 어떻게 월에서 벼슬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원래 출생지는 초나라의 출신으로 ,고향에서는 미치광이로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대부 문종의 눈에 띄어 월나라에서 구천을 섬겼다. 다른 기록(월절서)에는 초나라를 섬기던 문종의 눈에 띄어 초나라에 출사했다가 관직을 버리고 오나라에 출사하려고 했지만, 오나라는 오자서가 있기에 월나라로 가서 구천을 섬겼다고도 한다.
 
▲ 농사와 상업으로 천금을 번 도주공 범려는 만년을 유유자적하며 보냈다고 한다.  픽사베이.
 
◇ 무협지 단골소재 ‘월녀검(越女劍)’의 주인공 발탁
명재상 오자서, 명장 손무 콤비를 결국은 꺾어버린 입지전적 인물이 바로 범려다. 구천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월에 돌아왔을 때 범려는 널리 인재등용에 힘을 쏟았다. 남여의 구분을 두지 않았는데, 칼을 잘 쓰는 월녀(越女)를 초빙해 무술교두로 삼았다. 초나라 출신의 활 제작 기술자 진음(陳音)을 등용하기도 했다.

농업과 길쌈을 장려하여 구천이 몸소 경작을 하고, 왕후가 직접 길쌈을 하는 등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민심 수습과 경제 안정을 위해 세금 감면과 상류층에게 고기 소비를 줄이고 화려한 옷을 입지 않도록 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게 했다.

인구 증가를 위해 남자아이를 출산하면 술 두병과 개 한마리를 상으로 내리고, 여자아이를 출산하면 술 두병과 돼지를 상으로 내리는 등의 정책을 폈다. 월은 제ㆍ초와는 친교를 맺고, 진(晉)을 상국으로 모시며 주변의 적대세력을 우호세력을 바꿔나가, 오를 고립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오에게는 무조건 무릎을 꿇어 오왕부차의 교만을 계속 부채질 했다.

태재 백비에게는 계속 뇌물을 바쳐, 오왕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 결국은 둘 사이를 떼어놓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월왕구천은 오자서 자결(BC485년) 이후 오를 공격해 태자 패사(BC482년), 입택(笠澤)에서 오군 격파(BC478년), 오(吳)의 수도 고소성(姑蘇城) 포위 공격(BC475년), 오왕부차 투항, 자결(BC473년)로 와신상담의 기나긴 복수극을 끝맺음한다.
 
 
◇ 재상의 자리 물리치고 천금을 주위에 나눠줘
월에서 떠나 제나라에 도착한 범려는 자신을 ‘치이자피(鴟夷子皮, 술고래)’라고 일컬으며, 두 아들과 농사를 지으며 장사도 해서 큰 부자가 됐다. ‘치이자피’라는 이름은 오나라의 공신이었으나 결국 모함에 의해 죽음을 당한 오자서의 시신이 말가죽으로 만든 술부대에 담겨 물에 던져진 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제에서 큰 부를 축적하자, 제평공(平公)이 범려를 재상으로 삼으려 햇다. 그러자 범려는 재상의 인장을 돌려주고 재산을 지인들에게 나눠 주며 제나라에서 도주한다. 범려는 제나라를 떠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정도(定陶)로 이주, 스스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칭했다.
 
‘범려는 이름과 성을 바꾸어 제나라로 가서 치이자피(鴟夷子皮)라 부르고, 도(陶)로 가서는 주공(朱公)이라 했다. 주공은 도가 천하의 중앙으로 사방 여러 나라로 통하여 재물의 교역을 할 곳이라 판단하고 상업을 경영하고 물자를 축적하였다.

시세의 변동에 따라 팔아서 이익을 거두었고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생업을 잘 하는 자는 능히 사람을 선택하여 시세(時勢)에 맡긴다.

19년 동안에 세 번 천금을 벌고 두 번이나 풀어서 가난한 벗과 소원한 형제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것이 이른바 부유하면 그 덕을 행하기를 좋아하는 자다.

후년에 늙어서는 자손에게 맡겼는데 자손이 업을 닦고 이것을 늘려서 드디어 거만(巨萬)의 재산에 이르렀다. 따라서 부를 말하는 자는 모두 도주공으로 일컫는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부호의 행적을 더듬으며, 범려를 가장 이상적인 상인으로 우러른다.
 
 
◇ 범려, 아들을 죽게 방치하나 ‘유전무죄ㆍ무전유죄’의 원조격?
범려의 행적은 사마천 사기(월왕구천세가 越王句踐世家)에 자세한 기록이 있다. 도주공 시절 범려는 오늘날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원조라 볼 수 있는 ‘천금을 가진 부자의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천금지자 불사어시 千金之子 不死於市)’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범려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중 차남이 초나라에서 살인죄를 지어 옥에 갇혀 사형의 형벌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범려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막내아들에게 거금을 주면서 초나라로 가서 차남을 살려서 데려오라고 지시 한다.

그러자 장남이 집안의 큰일을 자기에게 맡기지 않는다고 반발하자, 범려는 마지못해 장남을 보낸다. 범려는 장남에게 자신의 지인을 찾아가 돈을 갖다주고 구명할 것만 요청하고 논쟁은 결코 해서 안된다고 단단히 당부한다.

장남은 초나로 가서 부친의 지인을 찾아가 범려가 시킨대로 거금을 주며 구명을 청하자 장선생은 부탁을 받아들이면서 장남에게 빨리 떠나라고 엄명한다. 범려의 지인은 청렴결백하고 신망이 높은 관리였는데 부탁을 듣는다는 징표로 돈을 받았을 뿐이고 부인에게 돈을 그대로 두었다가 일이 성사된 후에 도주공에게 돌려주라고 한다.

▲ 당대의 천하제일 미인 서시의 최후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픽사베이.

지인은 초왕에게 나라에 흉한 조짐이 있으니 덕을 베풀어야 한다며 대사면을 권하고, 초왕은 대사면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범려의 장남이 초를 떠나지 않고 별도로 관리에게 뇌물을 주면서 동생의 구명운동을 하던 중 초의 대사면령 정보를 들으면서 벌어진다. 장남은 부친의 지인에게 준 돈이 아깝다며, 월나라로 돌아가겠다는 인사를 한다. 지인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초에 남아서 별도의 계책을 진행한 장남의 처사에 분개, 초왕에게 대사면에서 도주공의 차남을 빼도록 만든다.

결국 초왕은 차남을 먼저 처형하고 대사면령을 내려서 장남은 차남의 시신을 가지고 월나라에 돌아오고 범려의 가족들은 상심한다.

그때 범려가 “나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다. 큰 애는 돈을 버는 고생을 같이한탓에 돈을 쓸줄 모르고, 막내는 부유한 때 태어나서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쉽게 잘 쓴다. 그래서 내가 막내를 보내려고 한 것인데 큰 애가 우겨서 가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이치가 이러하니 슬퍼할 것도 없고 나는 밤낮으로 둘째 애의 시신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고 말한다.
 
사족 하나, 당대의 천하제일미인 서시에 대해서는 자결, 살해, 도주공 범려가 거뒀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것은 없다. 무한한 상상은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와신상담, 57년에 걸친 복수와 복수>

춘추시대 말기 군웅들의 피 튀기는 복수극
①와신상담…오왕 합려ㆍ부차, 오자서, 월왕 구천 등이 주인공

월왕구천, 온갖 치욕을 참으며 복수 다짐
②와신상담…적국 대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오왕부차의 교만 부채질
복수의 화신 오자서, 군주에게 배신당하다
③와신상담…복수에 이은 설욕, 22년만에 대장정 마무리
오왕합려-오자서, 각자의 야망을 위해 연합
④와신상담…천하의 인재들이 복수와 야망을 불태우다
오자서, 복수를 위해 평생을 불사르다
⑤와신상담…막장 초(楚)를 탈출한 후, 멸망위기에 몰아넣어
월왕구천, 복수를 이루자 공신(功臣) 숙청
⑥와신상담…‘동병상련’ 백비, 오와 오자서를 배신하다
도주공 범려, 상인의 신으로 추앙받다
⑦와신상담…세번 천금을 이루고 두 번 나눠주다
기사입력: 2018/08/22 [09:08]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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