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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노량해전, 이순신 홀로 왜의 주력군 저지
이순신장군 전투일지…고니시+지원군 5만이상 퇴로 차단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8/26 [13:06]

[김쌤’s 한국사] = 남왜북로(남쪽의 왜구, 북쪽의 이민족)의 침략을 막아내는 과정속에서 신흥무인으로 성장한 이성계는 조선을 개창한다. 중국대륙은 원-명 교체기로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북로의 침입이 뜸해졌지만, 남왜의 크고 작은 침략은 계속 이어진다. 오죽하면 세종(당시 물러나 상왕으로 있던 태종 이방원이 실질적으로 주도했다는 주장도 있다)이 대마도정벌을 단행할 정도였다.

조선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 경상도와 전라도에 각각 좌수영과 우수영을 두고 수군절도사(4명)를 상주시켰다. 임진왜란 개전 초기 경상좌수사 박홍은 ‘화살 한 발 안 쏘고 성을 버리고 도망’가고, 원균은 ‘병선과 물자를 수장하고 배한척에 몸을 싣고 전라좌수영으로 피란’을 갔다.<선조실록27권, 선조25년 6월28일 병진 4번째기사>

▲ 전이순신초상(傳李舜臣肖像 문화재자료 제56호, 2010년 9월20일 지정). 이순신의 초상이라고 전해지는 작품. ‘충무공이순신상(忠武公李舜臣像)’이란 화제가 적혀있다. 바탕의 소격상태, 화면의 인물구도, 표현방식, 필치, 채색 등을 고려할 때 조선 후기~말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 이순신 관련 초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작품. 무인상 자체가 희귀한 조선시대 초상연구의 희귀자료.(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개전 초기,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충무공)은 조선의 군사 지휘체계가 엉망인 상태(차라리 다행이었다)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고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의 전투방법은 손자병법의 ‘이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고, 쉽게 싸워서 쉽게 이기는 전투’를 수행했다.

그랬던 이순신에게 압박이 들어온 것은 명의 참전으로 조선의 군사 지휘체계가 다시 살아나면서부터였다.
결정타는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조선수군을 한방에 말아먹자, 명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진린을 제독으로 한 수군을 지원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작전 지휘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부에서는 왜의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순신을 뛰어넘는 명장이라는 주장도 펼치지만, 각종 제약 속에서 이순신이 울화병으로 타계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정도)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다음의 이순신장군 전투일지는 임진왜란 개전초기와 명의 참전이후 작전권을 일부 잃은 1593년 후반기 이후부터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1차기동
조선지휘관=이순신(李舜臣), 원균, 권준, 정운, 이순신(李純信), 어영담, 이영남
조선병력=전선 28척, 협선 17척

1-01) 옥포해전(1592년 음5월4일 양6월13일 거제시 옥포)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거둔 첫 승리
조선 육군은 부산진전투(4월14일), 동래성전투(4월15일), 경상도ㆍ충청도 함락(4월17일~28일), 상주전투(4월25일), 탄금대전투(신립의 패전 4월28일), 한강전투(5월2일)에서 모두 패배.
왜군 지휘관=도도 다카토라, 호리노우치 우지요시
왜군병력=군함 50척
결과=왜군 26척 격침(4080명 전사), 조선수군 1명 부상
1-02) 합포해전(1592년 음5월7일 양6월16일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불명
결과=왜군 5척 격침
1-03) 적진포해전(1592년 음5월8일 양6월17일 통영시 광도면)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군함 13척
결과=왜군 11척 격침(2840명 전사)


2차기동
조선지휘관=이순신(李舜臣), 원균, 권준, 정운, 이순신(李純信), 어영담, 송희립, 이영남, 김완
조선병력=전선 26척, 거북선 2척

2-04) 사천해전(1592년 음5월29일 양7월9일 거제시 옥포)
거북선의 첫 실전배치
왜군 지휘관=도도 다카토라, 구루시마 미치유키, 가메이 고레노리
왜군병력=군함 13척
결과=왜군 군함 13척 격침(2600명 전사), 조선수군 3명부상(이순신, 나대용 포함)

▲ 여수선소유적(麗水 船所遺蹟 사적 제392호, 1995년 4월20일 지정). 전남 여수시 시전동에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자리.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3차기동
조선지휘관=이순신, 원균, 권준
조선병력=전라좌수영 전선 23척,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경상우수영 전선 3척

3-05) 당포해전(1592년 음6월2일 양7월10일 통영시 산양읍)
왜군 지휘관=가메이 고레노리, 구루시마 미치유키(전사)
왜군병력=군함 21척
결과=왜군 군함 21척 피해, 조선수군 피해 불명
3-06) 당항포해전(1592년 음6월2일 양7월10일 경상도 고성 당항포)
왜군 지휘관=모리 무라하루(전사)
왜군병력=군함 26척
결과=왜군 전멸, 조선수군 피해 불명
3-07) 율포해전(1592년 음6월7일 양7월15일 거제 장목면)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대선 5척, 소선 2척
결과=왜군 전멸, 조선수군 피해 불명


4차기동
왜군의 수륙병진작전을 좌절(왜의 보급로 차단)시키며 조선수군이 제해권 장악

조선지휘관=이순신, 원균, 이억기, 권준, 정운, 어영담, 김완, 이영남, 송희립, 황세득
조선병력=전선 56척

이순신의 4차기동에서 조선수군 최초 전사자 발생(3명 사망ㆍ10명 부상)
4-08) 한산도대첩(1592년 음7월8일 양8월14일 통영시 한산도)
왜군 지휘관=와키자카 야스하루, 와키자카 사헤에(전사), 와타나베 사치에몬(전사), 마나베 사마노조(전사)
왜군병력=군함 73척
결과=왜군 47척 침몰ㆍ12척 나포
4-09) 안골포해전(1592년 음7월10일 양8월16일 경상도 진해 안골포)
왜군 지휘관=도도 다카토라,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왜군병력=군함 42척
결과=왜군 전멸


5차기동
조선지휘관=이순신, 이억기, 원균
조선병력=전선 173척

5-10) 장림포해전(1592년 음8월29일 양10월4일 부산 사하구 장림동)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전선 6척
결과=왜군 전함 6척 격침


6차기동
조선지휘관=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
조선병력=전선 74척, 협선 92척

6-11) 화준구미해전(1592년 음9월1일 양10월5일 부산시 사하구 몰운대 인근)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군함 5척
결과=왜군 전멸
6-12)다대포해전(1592년 음9월1일 양10월5일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군함 8척
결과=왜군 전멸
6-13) 서평포해전(1592년 음9월1일 양10월5일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군함 9척
결과=왜군 전멸
6-14)절영도해전(1592년 음9월1일 양10월5일 부산시 영도구)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군함 2척
결과=왜군 전멸
06-15)초량목해전(1592년 음9월1일 양10월5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군함 4척
결과=왜군 전멸
06-16)부산포해전(1592년 음9월1일 양10월5일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왜군 지휘관=구키 요시타카,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왜군병력=군함 470척(7만명)
결과=왜군 128척 격침(사망 2000명), 조선수군 피해 사망 6명ㆍ부상 25명


7차기동
조선지휘관=이순신, 이억기, 원균
조선병력= 전선 89척

07-17)웅포해전(1593년 음2월1일 양3월3일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왜군 지휘관=구와다 치카카즈(전사), 고소카베 치카우치(전사), 하타 노부토키
왜군병력=군함 40척
결과=51척 격침, 조선수군 피해 불명


8차기동
조선지휘관=이순신, 이억기, 원균
조선병력=전선 124척

08-18)제2차당항포해전(1594년 음3월4일 양4월23일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리)
왜군 지휘관=나가오카 다다오키
왜군병력=군함 31척
결과=왜군 전멸


9차기동
조선지휘관=윤두수,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조선병력=전선 50여척

09-19장문포 해전(1594년 음10월4일 양11월15일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왜군 지휘관=시마즈 요시히로, 후쿠시마 마사노리
왜군병력=불명
결과=왜군 2척 격침


칠천량해전(1597년 음7월16일 양8월28일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
조선수군 최초의 패전, 궤멸
원균 도주하다 전사, 이억기 최호 등 전사



10-20)어란포 해전(1597년 음8월27일 양10월7일 전라도 해남 어란포)
이순신 복귀하자, 왜군이 조선수군 병력규모 탐지하기 위해 접근했다가 접전없이 퇴각
조선지휘관=이순신, 김억추
조선병력=전선 12척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전선 8척


11-21)벽파진해전(1597년 음9월7일 양10월16일 전남 진도 벽파진)
왜군의 2차탐지
조선지휘관=이순신, 김억추
조선병력=전선 12척
왜군 지휘관=불명
왜군병력=전선 13척


12-22)명량해전(1597년 음9월16일 양10월25일 전라도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해협)
조선지휘관=이순신, 배흥립, 민정붕, 소계남, 송여종, 김응함, 조계종, 우수, 안위, 정응두, 김억추, 이응표, 류형
조선병력=전선 13척, 초탐선 32척, 어선 100척

왜군 지휘관=도도 다카토라, 구루시마 미치후사(전사),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 하타 노부토키(전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간 미치나가, 간 마사카게(전사), 모리 다카마사
왜군병력=군함 133~300척
결과=왜군 31척 이상 격침


13-23)절이도해전(1598년 음7월19일 양8월20일 전라도 고흥 고라금해수욕장)
난중일기에는 기록이 없고 선조실록에만 기록.
조선지휘관=이순신
조선병력=전선 170척
왜군 지휘관=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
왜군병력=군함 100여척
결과=왜군 50여척 격침


14-24)왜교성 전투(1598년 음10월2일~4일 양10월31일~11월2일 전라도 순천 장도)
조명연합수군=이순신, 진린, 황세득, 등자룡
조명연합병력=육군 3만6000여, 수군 1만5000여
왜군 지휘관=고니시 유키나가, 오야노 다네모토(전사)
왜군병력=1만4000여(육군위주 병력으로 수군은 소규모)
결과=왜 3000여 사망ㆍ부상, 조선 1200여+명 2300여 사망ㆍ부상


15-25)노량해전(1598년 음11월19일 양12월16일 경상도 남해와 하동 사이 노량해협 남해대교 자리)
도요토미의 사망으로 본국으로 무사히 철수하려는 고니시(순천왜성 웅거)의 5만군+지원군1만을 사실상 이순신 장군 혼자서 퇴로를 막다가 전사.
남의나라 전쟁이라 명의 유정, 진린 등은 소극적 전투. 진린은 이순신의 정성에 감복해 참전을 결정했지만, 휘하 장수들도 조선수군만큼 적극적이었는지는 의문.
조명연합수군=이순신(전사), 진린, 등자룡(전사), 이순신(李純信), 김완, 이영남(전사), 송희립, 우치적, 나대용
조명연합병력=조선 전선 83척, 명 호선 61척
왜군 지휘관=시마즈 요시히로,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다치바나 무네시게, 데라자와 히로타카, 다치바나 나오쓰구
왜군병력=군함 500여척
결과=왜군 200여척 침몰ㆍ100여척 나포(사망자 1만명 추정), 조선 300여명+명 500여 사망ㆍ부상

 

기사입력: 2018/08/26 [13:06]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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