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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조선의 풍운아 흥선대원군 이하응
양반도 세금 내게하는 호포제 시행ㆍ서원 철폐 등 개혁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9/04 [10:45]
[김쌤’s 한국사] = 조선 후기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풍운아, 시대착오적 보수주의자, 조선 유일의 왕의 살아있는 아버지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백성을 해치는 자는, 공자가 살아와도 용서하지 않겠다”며 47개만 남기고 온갖 탈법을 일삼는 서원을 철폐했다. 또 200년간 논의만하고, 실제 역대 어느 왕도 해내지 못했던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시행’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파락호인 천하장안과 어울리며, 세도가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조대비와 정치적 흥정을 통해 아들을 왕(고종)으로 만드는데 성공하고, 자신은 대원군(왕의 살아있는 아버지, 왕비의 아버지는 부원군)이 돼 10년간 국정을 수행한다.

경복궁 중건을 위한 당백전, 청국소전(청나라에서 발행한 악화) 강제유통은 이후 조선재정을 좀먹는다.
 
▲ 흥선대원군 이하응 영정(興宣大院君李昰應影幀 시도유형문화재 제141호, 2001년 12월31일 지정). 흥선대원군 자신이 행서(行書)로 쓴 제발(題跋)에 회갑을 맞은 해의 초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자료=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1. 국가재정 좀먹고 백성 괴롭히는 서원 정리
①지방 양반의 세력기반으로 변해 면세ㆍ면역 등 온갖 폐단의 온상이었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정리. 서원을 기반으로 한 지방의 양반들은 봄가을 제향에 쓸 재물을 백성과 지방관청에서 약탈하는 등 온갖 폐단을 자행.
②서원이 보유한 토지의 면세범위 축소와 소속노비의 신분을 변정(辨正)해 군포수입 확충(1864년 8월). 만동묘(명의 신종 만력제를 기리는 사당) 철폐(1865년 3월). 서원에 정원 이외로 끼어든 자를 골라내고 서원 전결에 세금부과하고, 수령이 서원의 책임자가 돼 각종 사무 주관하도록 조치(1868년).
③학생 등의 신분으로 서원에 이름을 올리고 군역(병역) 회피, 군포 면세 등 전국적으로 불법 판쳐.
④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도 1인1원(院) 이외로 첩설(疊設)한 것은 모두 철폐, 전국 1700개중 47개만 남겨(1871년 3월).


2. 양반도 세금내는 호포제 전격시행
①임술농민항쟁(1862년, 철종13)의 원인을 삼정문란으로 파악, 삼정 개혁 착수.
②전정(田政)=조세지 확보 위해 진전(陳田 탈세)이나 누세결(漏稅結 탈세) 색출, 문제많은 지역은 양전(量田 측량)을 시행, 양안(量案)을 새로 만들어 수세결 확충.
③군정(軍政)=양반의 특권이었던 면세면역을 철폐, 모든 양인(양반+일반상민)에게 균일하게 호포제(戶布制) 시행. 초기 양반계층은 호포세를 내는 것에 반발했으나 결국 시행, 상민은 부담이 줄고 신분적 평등의식도 높아져.
④환곡(還穀)=조선후기 들어 재정의 역할을 하는 환곡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는 불가능. 일단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던 허류곡(虛留穀) 120만석을 탕감하고 재정확보 차원에서 호조별비곡(戶曹別備穀)ㆍ병인별비곡(丙寅別備穀) 등 새로운 환곡시스템 마련하지만 별무신통.


3. 비변사 혁파, 의정부 정비ㆍ삼군부 부활
①비변사 권한 축소해 군국사무(軍國事務)만 보도록 개혁 → 의정부가 정부의 모든 사무를 주관(1864년 1월). 임시기관이었던 비변사는 양란을 거치며, 세도가의 개인적 욕심을 채우는 의결기구로 변모.
②삼군부(三軍府)를 부활해 비변사를 대신해 군국사무를 전담할 군령기관으로 삼고(1868년), 훈련도감을 정비해 실질적인 군영으로 재건(훈련도감은 세도문벌의 군사적 기반 역할).
③국왕의 친위병 용호영(龍虎營) 정비 → 병조판서가 통할.
④삼정의 문란을 수습할 책임자로 조두순, 의정부 핵심인물로 홍순목(친대원군계) 등 발탁.⑤<대전회통大典會通> <양전편고兩銓便攷> <육전조례六典條例> 편찬ㆍ간행.


4. 쇄국(신미양요), 동학(최제우 처형)ㆍ천주교 탄압(병인박해)
①동학교조 최제우(崔濟愚) 처형(1824 순조24~1864.3.10 고종1). 대원군이 직접 최제우를 처형한 것은 아니지만, 대원군 집권과 함께 처형당한 것은 맞다. 선전관 정운구가 경주에서 최제우(제자 20여명 포함) 체포(1863.11.20.). 서울 압송 도중 철종 사망으로, 대구감영으로 이송(1864년 1월). 대구감영에서 심문 중 사도난정(邪道亂正) 죄목으로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참형(1907년 순종 때 사면).
②조선 최대규모의 천주교 박해 병인박해(1866년고종3~1871년고종8, 네차례 8000명이상 사망)로 베르뇌ㆍ다블뤼 등 9명의 프랑스 신부 포함 교인 수천명 처형(1866년 2월). 제너럴셔먼호 사건도 이때 발생(1866년 음7월12일, 이때 박규수가 전체 상황을 이끌며 승전을 이끌어 내).
③병인박해로 신부 리델(Ridel), 조선 탈출(7월)해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 로즈(Roze,P.G.)에게 구원 요청. 로즈 사령관, 7척의 군함으로 조선해안에서 무력시위(병인양요, 10월).
④독일 상인 오페르트(Oppert), 충남 덕산의 대원군 부친 남연군묘 도굴(1868년 4월). 대원군, 충남 덕산지역 천주교인 색출ㆍ처형.
⑤미국,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해병대병력 450명으로 강화도 침입(신미양요, 1871년 6월1일~11일). 궤멸위기에 몰린 조선군, 지구전으로 전술 변경하고 대규모 침공이 어려운 미국은 청으로 철수하며 사태 종료. 대원군은 결과적으로 미국을 격퇴한 것으로 판단.
기사입력: 2018/09/04 [10:45]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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