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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갑신정변 정리
집권층, 자신의 안위 위해 백성을 억압하고 외세 의존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9/11 [09:38]
[김쌤’s 한국사] = 조선 후기의 역사는 사건도 많아, 대부분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대체적으로 하나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편인데, 억지로 연대를 외우려하지 말고 사건의 순서에 집중해 왜 그렇게 됐는지를 논리적으로 이해해보자.
 
 
1. 순조-노론벽파, 정조-노론시파-남인-천주교 탄압
①개혁군주 또는 계몽군주라는 평을 듣는 정조가 즉위하면서 조선은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지만, 정조도 세계사적 흐름을 선도하거나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②정조 당시 집권세력은 노론시파(사도세자의 죽음은 억울)로, 대체적으로 정적과 천주교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정조 사후 순조가 즉위하며 노론벽파가 집권하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③집권층 노론벽파는 성리학적 명분을 강조하며, 정적관계였던 노론시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그 와중에 천주교를 신봉하던 남인세력을 제거한 것이 신유사옥(100명 처형, 400명 유배)이다.
④조정의 천주교 신자 살해로 날벼락을 맞은 천주교 신자 중 황사영이라는 사람이 중국 로마 가톨릭교회 북경교구의 주교에게 조선을 침략해 종교의 자유를 달라고 비단에 글을 써 보내려다가 발각된 사건이 이때 일어났다. 조선 조정은 이 사건으로 천주교를 더욱 위험한 사교(邪敎)로 규정했다.
 
▲ 경남 양산에 남아있는 대원군척화비(大院君斥和碑, 시도유형문화재 제120호, 1979년 5월2일지정). 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2. 동학, 전통속에 평등을 추구하는 가치체계 제시
①세도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특히 서북지역에 대한 차별에 불만을 품은 홍경래가 지방 세력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한다.
②홍경래의 난의 실패는 농민과 하층민을 위한 지도이념을 제시하지 못한 탓에 결국 불만세력의 봉기 정도로 그치지만, 이후 민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③조정의 천주교 박해속에서도 신앞에 평등을 내세운 천주교(서학)는 하층민에게 퍼져나가면서 세계 최초로 조선은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믿어 로마교황청이 조선교구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④세도정치의 혼란으로 백성들의 삶은 힘들고,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부분의 농민을 위해 최제우가 새롭게 제시한 가치체계가 동학이었다.
 
 
3. 흥선대원군, 안팎의 혼란을 쇄국으로 극복 시도
①대원군은 왕권강화를 위한 조치의 하나로 병인사옥을 일으키고, 이것이 원인이 돼서 병인양요(프랑스의 침략) 발생하지만, 조선은 초기의 패전(문수산성 전투)을 딛고 양현수의 전략에 힘입어 결국은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최초로 격퇴한다.
②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조선을 무력으로 통상을 꾀하려 했으나, 조선군은 패전속에서도 끝까지 버텨 결국 미국이 포기하고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집한다.
③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이 사퇴하자, 조정 내부에서 외국과의 통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가운데 일본이 운요오호 사건을 획책한다.
④조선 조정은 찬반양론 속에 어차피 개항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듬해 최초의 근대식 조약인 강화도(조일수호조규)조약을 체결한다. 이에따라 조선은 최초로 수신사(일본)를 파견한다.
 
▲ 갑신정변의 주요무대였던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9(견지동)의 서울우정총국(서울 郵征總局, 사적 제213호, 1970년 10월29일 지정). 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4. 급진파, 청의 간섭에 불만품고 정변 획책
①다시 일본에 조사시찰단을 파견한 조선은 일본식 군대를 본떠 ‘별기군’을 창설한다. 별기군과 구식군대에 대한 차별대우에 대한 불만, 대원군 사퇴이후 민비정권(민씨척족이 국정을 농단)에 대한 불만 등으로 임오군란이 발생한다.
②정계 은퇴 이후 민씨에 눌려지내던 대원군은 임오군란으로 재집권을 시도하며, 예전의 척화파를 규합하는데 임오군란을 이용한다. 대원군은 결국 고종으로부터 재집권을 인정받고, 민씨세력을 제거한다.
③위기에 몰린 민씨세력은 청에 구원요청을 하고, 청은 신속하게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임오군란의 가담자를 모두 진압한다. 그리고 대원군을 청에 압송한다. 일본은 대원군의 쿠데타정권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소규모 병력 파견에 그쳐 청과는 전투를 치르지 못한다.
④청의 간섭으로 개화가 지지부진하다고 판단한 조선 급진파는 우정국 낙성식을 계기로 정권을 잡고 있는 민씨세력 제거를 위해 갑신정변 일으키지만, 청의 간섭으로 3일천하에 그친다.
⑤이후 일본은 조선에서 청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군사력 배양에 힘을 기울이고, 때마침 청은 서태후가 북양함대에 투입할 군비를 개인정원공사비로 전용하는 등 국방비리 사태로 청일전쟁에서 패전한다.
⑥당시 조선은 이이제이 전략에 따라 임오군란 직전 조미수호조규 체결, 임오군란 이후 일본과 제물포조약,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등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순조 즉위~갑오농민전쟁~대한제국 연표 정리>

1800년 조선 순조 즉위
1801년 신유사옥ㆍ황사영 백서 사건, 공노비 해방
1811년 홍경래의 난
1831년 천주교 조선교구 설치
1832년 영국의 로드 암허스트호, 최초로 통상 요구
1860년 경신사옥, 최제우가 동학 창도
1862년 진주에서 임술 농민봉기 발생
1863년 조선 고종 즉위와 함께 흥선대원군 집권
1864년 동학의 교조 최제우 처형
1866년 병인사옥ㆍ병인양요 발생
1871년 신미양요 발생
1875년 운요호 사건 발생
1876년 조선-일본, 조일수호조규 체결
1880년 일본으로 수신사 파견
1881년 일본으로 조사시찰단 파견, 별기군 설치
1882년 조미수호조규 체결, 임오군란 발생, 일본과 제물포조약 체결, 청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1883년 조일통상장정 체결
1884년 갑신정변 발생
1885년 일본과 한성조약 체결, 영국군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일어남, 갑오ㆍ을미 개혁, 청일 전쟁 발발
1895년 을미사변 일어남
1896년 연호를 건양으로 정함, 독립협회 결성
1897년 대한제국 고종이 제위에 등극하고, 대한제국을 수립해 연호를 광무로 고침
1898년 만민공동회 개최
 
 
기사입력: 2018/09/11 [09:38]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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