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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제3차 중동전쟁(1967년 6월5일~10일)
이스라엘, 기습으로 제공권 장악…압도적 승리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9/17 [08:43]
[김영수 잡학여행] = 6일전쟁이라고도 부르는 제3차중동전쟁은 현대전에서 가장 짧은 시간안에 가장 완벽한 승전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엘리 코헨(Eli Cohen, 1924년 12월16일~1965년 5월18일)이라는 이스라엘의 걸출한 스파이가 활약한 것도 이 전쟁때였다.
 
▲ 수에즈운하를 통해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장면. 무료이미지=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제1차중동전쟁에서 압도적 우세를 지니고도 패배한 아랍세력은 국내외의 각종 도전에 직면한다. 특히 이집트는 나세르가 이끄는 급진파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파루크 왕정을 타도(1952년 7월)하고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한다.
 
 
◇ 영국-프랑스, 수에즈 소유권 욕심에 2차중동전쟁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나세르(1918년 1월15~1970년 9월28일)는 범아랍주의(Pan-Arabism)를 제창하고 민족주의를 강화해야 했다. 당연한 귀결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영국의 소유인 수에즈운하에 대해 나세르가 국유화를 선언했고, 여기에 반발한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뒤에서 조종해 벌인 전쟁이 2차 중동전쟁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니더라도 한번 더 손을 봐주고 싶었던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침공(1956년 10월29일), 전쟁의 포문을 연다. 영국-프랑스 연합공수부대는 수에즈운하의 관문인 포트사이드를 점령(11월5일)한다.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주도한 이 전쟁에서 이집트는 또다시 패배했지만, 미국의 중재와 국제여론의 악화(소련의 입김)속에 UN총회에서 UN긴급군(UNEF)을 파견하는 정전안을 채택(11월14일)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철수했다(이스라엘은 1957년 3월까지 강점).
 
▲ 홍해입구의 티란해협(구글어스 갈무리, 그래픽=김영수).     © 경기도민뉴스

이 전쟁으로 나세르가 부르짖는 범아랍주의가 껍데기뿐이라는 사실과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수에즈운하와 티란해협 확보의 중요성이 떠오른다.
 

◇ 이스라엘, 나세르의 티란해협 봉쇄에 기습 선제공격
범아랍주의를 부르짖으며 이집트가 아랍권의 지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 나세르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선언(1967년 5월)했다. 봉쇄선언과 함께 이집트가 군을 전진배치하자, 이스라엘은 예방적 공습이라는 명분 아래 이집트 공군기지를 공습(6월5일)한다.

이집트 공군을 궤멸시킨 이스라엘은 제공권을 앞세워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다. 초전에서의 승기를 잡은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정복에 성공했다. 궁지에 몰린 나세르는 요르단과 시리아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해달라고 지원하기에 이른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요르단군을 물리치고, 시리아군에게도 반격을 가해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는 이집트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지중해로 우회, 해상 50m~100m로 목숨을 건 저공비행 끝에 이집트의 11개 비행기지 활주로, 항공기를 폭격했다. 이 폭격한방으로 이집트는 공군기 450대 중 300대가 파괴됐다.
 
▲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진공한 경로(구글어스 갈무리, 그래픽=김영수).     © 경기도민뉴스


요르단과 시리아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이용한 선제 기습공격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후 지상전에서도 승리하는 전략을 채택해 대성공을 거둔다. 특히 시리아군은 이스라엘의 갑작스런 출현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진 골란고원을 버리고 달아나, 10시간만에 점령하는 보기드문 기록도 세우게 만들어준다.
 

◇ 아랍권의 잇단 패배…PLO 본격 등장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공세에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가 차례로 무릎을 꿇자, 전쟁개시 6일만인 6월11일 이스라엘과 이집트-요르단-시리아가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아랍측은 이 전쟁으로 2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데 비해 이스라엘군은 800명선이었다.

이 전쟁으로 아랍권은 패배의식이 깊어졌고, 이스라엘은 자만심마저 갖게 됐다. 이것이 나중에 벌어진 제4차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는 독으로 작용했다. 범아랍주의에 실망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드디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를 결성, 표면에 나서기 시작(결성은 1964년이지만 표면에 드러난 것은 6일전쟁 이후)한다.

이스라엘은 승전으로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요단강 서안, 골란고원을 확보해 영토가 3배로 늘어났지만, 동예루살렘과 요단강서안지역의 팔레스타인(30만명)은 또 다시 난민신세가 됐다.

이스라엘이 확보한 요단강서안지역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이 함께 거주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요단강서안 일부지역(18%)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다.


<표. 네차례 중동전쟁 발발시기>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월16~1949년 2월24)
제2차 중동전쟁(1956년 10월29~1957년 3월)
제3차 중동전쟁(1967년 6월5일~10일)
제4차 중동전쟁(1973년 10월6일~25일)
기사입력: 2018/09/17 [08:43]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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