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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제4차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아랍권, 석유자원 무기화로 전 세계 경제 타격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09/28 [05:41]
[김영수 잡학여행] = 아랍권과의 세차례 전쟁을 모두 승리한 이스라엘은 자만감에 빠졌고, 반대로 아랍권에서는 막대한 자존심 손상을 당해야했다. 제4차 중동전쟁(1973년 10월6일~25일)은 아랍권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석유라는 자원을 무기로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

제4차 중동전쟁은 욤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 라마단 전쟁, 10월전쟁이라고 부른다. 제1차 중동전쟁은 이집트 왕정 종식 등 아랍권에 파란을 불러왔다. 제2차 중동전쟁은 수에즈 운하의 소유와 운영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라, 비록 패전했어도 아랍권에서는 변명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제3차 중동전쟁은 6일만에 아랍권이 힘도 못쓰고 패퇴한 것이어서 충격은 컸다.
 
▲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공군과 기갑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소련제 로켓포를 활용, 개전 초기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데 성공한다. 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 사다트, 기습공격으로 무적 이스라엘에 한방 먹여
①나세르(1970년 9월28일 사망)를 이은 사다트(1918년 12월25일~1981년 10월6일)는 소련의 군사지원이 미흡하다고 판단, 주둔중이던 군사고문단을 추방(외교적 기만술이라는 평가도 있다)한다. 이후 사다트는 미국과 서방국가에 접근, 외교적 유대를 강화하는 등 후방을 다졌다.

②사다트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을 꺾지 않는 한, 나세르를 이어 범아랍주의를 천명한 자신도 종이호랑이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철저하게 대비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 이스라엘이 점령지 수에즈 운하 동쪽에 구축한 바레즈방벽 개념도. 높이 22~25m로 콘크리트를 중간 기둥으로 삼고, 모래를 쌓아 만들었다. 그래픽=김영수.     © 경기도민뉴스

③사다트는 이미 세차례 전쟁에서 패배한 이집트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군사개혁을 시도한다. 귀족 출신의 장교들을 젊은 사관학교 출신의 장교로 바꾸고, 장병들의 훈련을 강화했다. 특히 수에즈운하 동쪽 연안에 버티고 선 이스라엘 방어진지를 궤멸시키기 위한 훈련에 집중했다.

④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점령지 시나이 반도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참모총장 바레브(chaim Bar-Lev)가 주도해 수에즈 운하 동안에 방어진지 성격의 모래와 콘크리트를 뒤섞은 일명 ‘바레브 방벽’을 설치했다.

⑤수에즈운하 도하를 위해 2만명의 병력손실을 각오한 사다트는 8만명을 동원, 난공불락이라던 바레브라인을 돌파한다. 워낙 돌발적인 기습공격이어서 병력손실은 200명에 불과했다. 이집트군은 탱크 1000대, 야포 1850문을 동원했고, 시리아군도 탱크와 병력을 골란고원 근처로 집중 배치했다. 이집트군은 수에즈운하에서, 시리아군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을 기습공격, 제4차 중동전쟁의 막이 올랐다.

⑥기습공격 한방으로 이집트는 ‘이스라엘도 무적군대는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아랍권의 맹주 역할을 국내외에 과시했다. 이때 사용한 무기가 소련제 대공 로켓포, 대전차 로켓포 등이다.

 
▲ 제4차 중동전쟁은 아랍권이 이스라엘의 철수를 목적으로, 석유자원을 무기화한 전쟁이기도 하다. 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 OPEC 석유 감산조치, 전세계 경제 타격
①제4차 중동전쟁은 1967년 6일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사다트는 제한전쟁을 목표로 이스라엘을 타격한 후, 참호를 구축하고 국제외교의 진행을 기다렸다.

②이스라엘의 골다메이어 내각은 전반적으로 전쟁 가능성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정보기관들도 소련의 신형 전폭기와 스커드 미사일이 도착해야, 이집트가 공격에 나서리라 예측했었다.

③이스라엘은 6일전쟁 이후 자국의 예방목적의 전쟁이라는 공세적 전략이 국제여론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자, 국가 방위전략도 수세적으로 전환한 상태였다. 심지어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9월말 비밀리에 이스라엘을 방문, 전쟁을 경고했지만 귀담지 않았다. 6일전쟁의 승전이 남긴 자만감이 이스라엘에게는 독으로 작용했고, 이 자만감이 초기 처참한 패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④이집트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 신속하게 수에즈운하를 건너 이스라엘의 바레즈 방벽을 물대포로 무너뜨리고, 대공 미사일의 방어 범위 안에서 새거 대전차 미사일을 대량으로 설치,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 기갑부대를 타격했다.

⑤골란고원에서도 시리아군은 1400여대의 전차를 동원, 이스라엘 제188기갑여단을 거의 격파했다. 이스라엘의 북부 제7기갑여단이 가세하면서 사흘만에 수세로 몰리기는 했지만, 아랍권이 잠시나마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만큼이나마 우세를 점한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⑥그러는 사이 시나이반도에서 이스라엘의 샤론사단이 이집트 제2, 3군을 격파하고 수에즈운하 서쪽으로 진출해 이집트 제3군의 배후를 차단(10월15일)했다. 이집트-시리아 아랍군은 초전 우세를 지켜내지 못했지만, 앞서 세차례의 전쟁과 같은 궤멸적 타격을 당하지는 않았다.

⑦그러는 사이, 사다트가 예상했던 대로 유엔, 미국, 소련이 이집트-시리아-이스라엘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랍권은 제4차 중동전쟁에서 명확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이스라엘도 마찬가지) 이후 석유감산조치라는 무기로 전 세계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다.

 
▲ 물이 부족한 사막지대인 중동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소규모 관개농업만이 가능하다. 대신 오일머니의 원천인 풍부한 석유자원이 땅속에 묻혀있다. 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 전쟁와중에 이스라엘 철수를 조건으로 석유 가격 인상
①UN은 10월22일 중재안을 발표했다. 이집트-시리아, 이스라엘 양측은 서로 중재안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군은 거점을 강화해 이집트 제3군과 수에즈를 포위(10월24일)했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긴장을 높였고, 제2차 휴전안 발표(10월25일)로 욤키푸르 전쟁은 끝났다.

②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전쟁이 한창이던 석유 가격을 배럴당 3.02달러에서 3.65달러로 크게 올렸다(10월16일).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점령지역에서 철수할 때까지 매달 석유 생산을 5%씩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석유자원을 무기로 사용한 아랍권의 자원무기화 전략으로 국제 석유가격은 1974년 봄까지 5배나 상승하고, 세계 경제는 불황과 물가상승이라는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③OAPEC은 특히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해 석유수출 금지조치(oil embargo)를 단행, 국제유가가 두달만에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급상승했고, 전 세계는 석유가격 인상에 따른 준 경제공황상태를 맞는다. 이것이 제1차 오일쇼크다. 제2차 오일쇼크는 호메이니가 이란의 팔레비왕조를 전복하는 혁명(1979년)과정에서 석유생산량이 줄어들면서 발생한 것으로 1차 오일쇼크와는 발생원인이 다르다. 그러나 배럴당 국제유가는 3달러(1973년) → 15달러(1979년) → 35달러(1980년)로 10배이상 급상승한다.

④앞서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요르단의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지구,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점령지에서 이스라엘 군의 철수 △이 지역의 모든 나라의 영토와 독립의 보장 △난민문제의 공정한 해결(UN결의안 242호)을 채택했으나 이스라엘은 이 모든 것을 무시했다.

⑤제4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찾기 위한 선제공격의 하나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단독으로 평화조약을 체결(1979년 3월),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했고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전체를 이집트에 반환했다.

⑥네차례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증명했고,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공격에 이스라엘의 방어막이 일단은 뚫린 사실도 드러났다. 사다트는 중동전쟁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을 끌어들여 외교적으로 자신이 원한 제한전쟁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시나이반도 탈환)했다.


<표. 네차례 중동전쟁 발발시기>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월16~1949년 2월24)
제2차 중동전쟁(1956년 10월29~1957년 3월)
제3차 중동전쟁(1967년 6월5일~10일)
제4차 중동전쟁(1973년 10월6일~25일)
기사입력: 2018/09/28 [05:41]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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