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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살살 배가 아플 때 먹는 정로환의 비밀
일본의 대 러시아 승리…전 세계 식민 피지배국가 환호
인도ㆍ이집트ㆍ베트남 등, ‘일본을 아시아 맹주로’ 주장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10/09 [08:09]

[김영수 잡학여행] =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의 증상으로 ‘살살~ 배가 아프고, 설사가 도질 때’ 먹는 일종의 상비약으로 동성제약ㆍ조선무약ㆍ보령제약 등에서 발매하는 ‘정로환(正露丸)’이라는 환약이 있다.


▲ 정로환 제품. 사진=위키디피아.     © 경기도민뉴스


한 번에 다섯알 가량을 복용하는데, 심하게 복통을 앓으면 2~3시간에 한번씩, 경우에 따라서는 한방에 배앓이와 설사증상을 없애주는 신묘한 의약품이다. 그런데도 종합감기약처럼 의사의 전문적인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어, 일부 가정에서는 상비약 비슷하게 비치하고 있기도 하다.
 

◇ 만주진출 일본군의 배앓이를 위해 개발
문제는 이 약품이 ‘맑은 이슬(참이슬?)’이라는 제품명과 달리, 특유의 역한 약냄새를 풍긴다는 점이다. 약냄새가 어느 정도냐면, 병속의 환약을 손바닥에 담아 입안에 털어 넣고 나서, 손바닥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비누칠을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한다. 당연히 입안에서는 점막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계속 목구멍에서 냄새가 올라온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소변에서도 냄새가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워낙 약효가 뛰어난 탓에 지금도 ‘환약’ 형태로도 출시하는 제품도 있고, 소비자의 불만을 받아들여 ‘당의정’ 형태로 캡슐로 씌워 역한 냄새를 없앤 제품도 있다.

이 약품의 이름 ‘정로환(正露丸)’의 원래 명칭은 ‘정로환(征露丸, 세이로간 せいろがん)’이고, 생산국은 일본이며 생산 시기는 러일전쟁(1904년 2월8일~1905년 9월) 당시였다. 눈치빠른 독자는 알아챌 것이다.

러일전쟁은 참호전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 전쟁이다. 방어측은 참호 안에서 기관총으로 돌격해오는 적군을 막아낸다. 공격측은 한뼘씩 진공한 후 적군의 기관총 세례를 막아내기 위해 참호를 파고 동일하게 기관총으로 적군을 공격하는 방식의 전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전쟁 양상은 이미 미국의 남북전쟁(초기의 기관총은 이때 발명) 당시에도 나타난 것으로 철조망이 전쟁에 사용된 것도 남북전쟁 때였다.

기관총과 참호전 위주의 무한 물량전쟁에서 보급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특히 식수는 병사들의 건강(전투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참호전에서 복통환자가 급증하자 일본은 복통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 러일전쟁을 풍자한 당시의 신문 삽화.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사진=위키디피아.     © 경기도민뉴스

◇ 황인종이 백인종을 승리한 최초의 현대식 전쟁
아스피린이 버드나무를 끓여먹던 민간요법에서 나온 것처럼 정로환도 민간요법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복통을 멈추기 위해 일본 덴노(천황이라는 명칭에 대한 반감은 일단 접자, 김쌤’s 한국사 [031] 번 기사 참조)가 전국에 칙령을 내리고, 수많은 제약사가 만들어 납품한 것 중 <다이코신약>의 약품이 가장 효능이 뛰어났다.

주성분은 목초액에 든 살균ㆍ진통성분인 ‘크레오소트’였고, 당초 제품 명칭도 ‘크레오소트’이었지만, 정로환으로 변경했다.

일본군부는 이 약품을 군대에 보급했고, 건강을 되찾은 일본군은 결국 러시아를 꺾는다. 너무나 감격한 일본군부는 이 약품의 이름을 러시아(露西亞 로서아)를 정복했다는 의미로 ‘정로환(征露丸)’이라고 명명했다.
정로환 하나 때문에 러일전쟁(1904년 2월8일~1905년 9월)에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승전의 결과는 엄청난 여파를 남겼다. 황인종이 백인에게 승리한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당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중국은 청일전쟁(1894.7.23.~1895.4.17.)의 패전 이후, 일본을 재평가하는 시각이 나타났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10년후 일본이 러시아도 꺾어버리자 쑨원(孫文, 1866~1925)을 포함한 대다수 아시아인들은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로 서양세력을 견제(특히 중국은 아편전쟁 등으로 서양세력에 대한 반감이 컸다)하는 주축이 될 것을 희망했다. 한국에서는 강대국 일본을 배우자는 친일파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필리핀 등은 같은 아시아인데, 설마 서양세력처럼 착취하랴 싶어서 하와이 공습 이후 필리핀 진공 일본세력을 일부에서는 환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스페인이 300년동안 착취한 것을 일본이 3년만에 착취하자, 필리핀에서도 일본에 대한 저항에 나선다.
 

◇ 역설적으로 전 세계가 독립의지 다지는 계기 마련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베트남 독립운동의 주력이었던 판쩌우찐은 러일전쟁을 위해 베트남 근해를 지나가는 러시아 발틱함대의 위용을 보고, 부럽고 놀랐다고 한다. 그 발틱 함대가 일본군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에 판쩌우찐은 경악했다. 이후 베트남 민족운동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는 동유운동으로 번지기까지 한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발 간다하르 틸라크, 미얀마의 국가주석 바모(버마인은 영국의 통치 이래 처음으로 아시아 한 국민의 위대함에 대해서 들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부심을 주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승리는 아시아가 자각하는 발단이 되었다고 일본의 러시아 승전을 평가) 등도 아시아인의 승전이라며 크게 고무됐었다.

심지어 이집트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이란 책을 통해, ‘일본처럼 아랍인들도 각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쑨원의 1924년 발언에서는
“일본이 러시아에게 승리한 그날로부터 전 아시아의 민족은 유럽을 타도하고자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집트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페르시아나 터키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아랍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인도사람도 이 시기부터 독립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한 결과, 아시아 민족의 독립이라는 커다란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라고 평가했었다.
기사입력: 2018/10/09 [08:09]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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