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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관료제, 계급과 직무체계가 핵심
정부기관 아니어도 계급 명령체계 있다면 관료제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11/07 [06:45]
[김영수 잡학여행] = 각종 언론보도와 보고서 등을 취합하면 민간시장의 위축 탓에 2018년 기준 대한민국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20만명으로 추정된다.
 
공무원에 대한 근대적 개념은 연원적으로 독일의 관방학에서 시작한 것으로, 이를 체계화 한 것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Max Weber, 1864~1920)다. 이번 잡학여행에서는 공무원의 특징인 ‘관료제’의 개념에 대해 알아본다.
 
 
◇ 프랑스, 직업공무원(관료제)이 혼란 최소화
전근대사회는 신분이 직위를 결정지었다. 고려시대 귀족의 경제적 기반은 공음전이었고,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관직의 주요 진출방법은 음서(부모가 고위직이면 자동으로 자식도 관직 진출)였다. 관리의 채용방법을 최초로 규정한 것은 중국의 당나라로 당시의 채용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 관료제는 엄격한 계급, 그에 따른 권한의 위임, 업무의 문서화 등읅 특징으로 한다.     © 경기도민뉴스
소크라테스 등이 활동하던 고대 그리스(특히 아테네)에서의 관직의 채용 기준은 ‘성인남자는 평생에 한 번 정도는 공직(公職)을 맡을 권리와 의무’로 족했다. 생산기반은 토지가 거의 전부였고, 생산수단은 노예였던 소박했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근대 직업공무원제도는 유럽 중에서도 프랑스에서 발달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몇 차례 왕정복고, 민주정 등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지만 국가의 행정체계의 혼란은 극심하지 않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이를 프랑스가 직업공무원제를 정착한데 따른 탄탄한 관료제(bureaucracy)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관료제’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중농주의 경제학자 구르네(V. de Gournay)가 1745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원적으로 ‘bureau’는 서랍이 달린 큰 책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료제의 특성 중의 하나인 ‘문서로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료제의 특징은 △엄격한 권한의 위임 △전문적인 직무 체계를 갖추고 △합리적인 규칙에 따라 △조직의 목표를 능률적으로 실현하는 △조직의 관리운영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 관방학, 국가운영을 위해 인재 양성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16세기 중엽~18세기 말 200여년에 걸친 절대주의 시절 통치에 필요한 행정적 기술과 지식을 지닌 전문가 집단이 필요했다. 특히 프로이센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절대군주국가로의 발전이 늦은데다, 중상주의를 실행하기 위한 사회적ㆍ경제적 기반이 부족했다.

관방학(官房學, Cameralism)은 이같은 국가적 필요에 따라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목적은 군주의 권력을 강화해 대외 경쟁력을 증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계몽주의와 함께 절대군주제가 풍미하던 중세유럽에서 국가는 국민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도구이자 절대선이었다. 따라서 국가운영을 책임지는 관료들은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업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했고, 그 업무범위 안에서만 책임을 졌다. 당연히 관료가 지녀야 할 행동윤리도 중요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정부의 공식기구와 공식기구의 업무를 명시해야 했다.
 
 
◇ 프리드리히, 대학에 강좌 설치…본격 연구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독일의 대학에 관방학 강좌를 설치(1727년)하기에 이르고, 인재를 양성해 공직에 임명하기 시작했다.

관방학 자체가 절대군주제를 위한 필요지식을 통합적으로 정리한 종합한 것이었으므로 이 시기 관방학은 행정, 재정, 예산, 경찰, 공예(공업) 등을 모두 아울렀다. 이시기 중상중의의 영향으로 특히 재정분야가 중요했으므로 전기관방학은 재정학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대학교에 관방학 강좌를 개설하면서, 학자들은 관방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분화가 이뤄진다. 이때부터를 후기관방학이라고 한다.

후기관방학은 경찰학(Polizeiwissenschaft)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때의 ‘경찰’은 행정제도에 기반을 두고 국가전체의 재산을 유지ㆍ증진시키고, 이를 통해 공동복지를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말한다. 지금의 경찰관 등과는 별 연관이 없다.

이 관방학을 집대성한 취후의 학자가 슈타인(슈타인관방학)이고, 그 개요는 행정행위가 국정운영에서 우위를 잡아야한다는 것이었다.
 
 
◇ 막스베버의 연구, 미국에 영향
오늘날 관료제는 집단 또는 조직에서 직무(職務)를 합리적ㆍ계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반드시 정부조직(행정조직)이 아니어도 관료제도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대기업, 종합대학교, 대형병원, 금융기관, 특정종교 교단 등의 조직도 관료제라 할 수 있다.

▲ 문서주의와 형식주의를 강조하는 관료제는 속성상 형식주의(번문욕례)를 불러오고, 비판도 받는다.     © 경기도민뉴스

한마디로 직무와 계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정해져 있으며, 업무처리의 규칙(가이드라인, 지침 등 용어는 상관없다)이 있으면 관료제라 할 수 있다.

관료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가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이념형 관료제를 연구한 막스베버는 조직을 지배하는 정당성(legitimacy)을 기준으로, 권위(authority)의 유형을 분류했다.

막스베버는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신의 은총이라는 의미)적 권위 △합법적 권위로 구분하고, 법적근거를 바탕으로 한 합법적 권위를 관료제의 기반으로 설정했다. 즉 관료제는 합법적근거에 따라 제도화된 질서에 따라 구성된 계층제라고 정의한 것이다.

막스베버는 청교도적 금욕을 바탕으로 축적한 부의 정당성과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공무원 조직의 필요성과 합법적 근거를 제시하는 등 근대 자본주의 성립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비슷한 시기의 사회주의자 칼 마르크스의 반대편에 섰다는 의미로 ‘부르주아지의 칼 마르크스’라는 비난도 들었다.

막스베버의 관료제에 대한 연구결과는 독립전쟁(1775~1783)을 거치며, 극심한 사회혼란을 극복할 필요가 있던 미국에서 각광을 받았다. 미국은 행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체계를 발전시켜, 특히 후진국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대한민국은 권위주의 통치 시절 △정치와 행정을 분리해 △불균형적 사회발전을 ‘발전행정론’ 등으로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기사입력: 2018/11/07 [06:45]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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