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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개방의 반동…위정척사 운동
을미사변 이후 유인석 등 전국적 항일의병 점화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11/23 [06:14]
[김쌤’s 한국사] = 송나라는 건국초부터 거란족과 여진족의 침공으로 위기를 맞았다. 결국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시기 주자(朱子)는 화이(華夷)론을 바탕으로 한 위정척사사상을 체계화했다. 즉, 송은 화(華)고, 거란ㆍ여진ㆍ몽골 등은 이(夷)라고 규정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화(華)는 바르고(正) 이(夷)는 바르지 않은 것(邪)으로 구별했다.

조선의 위정척사 역시 성리학의 화이론에 바탕을 두고, 조선과 성리학은 바른 것이라 규정했다. 나머지 천주교 등 외래문물, 일본과 서양은 ‘왜’와 ‘양이’로 모두 바르지 않은 것으로 규정했다.
 
조선의 위정척사는 시기별로 양태를 조금씩 달리하는데,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은 1860년대부터였다. 조선이 알고 있는 한 최강대국이었던 청이 영국과의 아편전쟁(1839)에서 패배하고,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베이징 함락(1860.10)은 조선의 양반계층에게는 공포와 경악 그 자체였다. 조선 후기 양반계층은 천주교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척사윤음(1839)을 한글로 옮겨 전국에 배포했다.
 
 
1) 1860년대=통상반대 척화주전론
①1860년대 들어 서양의 빈번한 통상요구 속에 병인양요(1866/고종3) 신미양요(1871)는 서양 등 외부세력에 대한 경계와 국민적 반감 높아.
②이항로, 기정진 등 보수 유학자 중심 통상 반대운동 주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지지.
③통상개화론자들의 통상 필요성에 대해, 서양의 경제적 침략이 가져올 폐해를 지적.
④이항로(화서학파)=양화배척론(洋貨排斥論), 김평묵ㆍ최익현ㆍ유중교ㆍ유인석 등
⑤기정진(노사학파)=양물금단론(洋物禁斷論) 내수외이론(內修外夷論), 정재규ㆍ기우만 등
 
 
2) 1870년대=개항반대론 왜양일체론
①흥선대원군 축출(1874.11) 이후 고종은 친청 민씨세력과 제휴.
②운요오호 사건(1875.9)에 이어, 강화도 조약(1876)에 대해 보수 유림(김평묵ㆍ최익현 등)은 정부정책 자체를 반대.
③통상조약 강요에 대해 개항 반대,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 등 주장.
 
 
3) 1880년대=개화반대운동 영남만인소
①강화도조약 이후 개화정책 추진에 보수유림과 민중들 반감.
②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이 황쭌센의 조선책략 유입(1880)을 계기로 발생.
③고종, 조선책략을 관리와 유생에게 배포. → 이만손의 영남만인소.
④유생, 조선책략 내용의 그릇된 점과 정부 개화정책의 문제점 지적.
 
 
4) 1890년대=반침략ㆍ반외세 의병운동의 이념적 기반
①1890년대 일본의 조선침탈이 가속화되자 배일감정 높아져.
②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속 갑오개혁(1894), 을미사변(1895, 일제의 민비 제거)에 이은 단발령 등에 유생ㆍ민중도 저항.
③이소응ㆍ유인석 등의 을미의병은 개항 이후 최초의 의병으로, 이후 항일의병으로 발전.
 
▲ 강원 춘천시 남면 가정리의 춘천의암유인석묘역(春川毅菴柳麟錫墓域, 시도기념물 제74호, 지정=2000년 3월11일). 유인석(1842년~1915년) 현실적 의병운동의 선구자로 3차례 해외망명을 텅해 일제를 몰아내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서간도 봉천성에서 서거했다. 사진=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5) 위정척사사상의 특징과 의의
①외세의 침략 배격, 조선의 국권 수호 정치사상으로 발전.
②척사 척양 척왜 논리로 열강의 침략에 반대하는 반침략ㆍ반외세 정치운동.
③존화양이에 기초, 근대 민족주의 사상 발전 한계.
④위정척사사상은 병자호란 이후 서인노론 정권이 명운을 걸고 유지해왔던 존화양이의 명분과 소중화론에 입각한 것.
⑤서인노론정권이 지키려 했던 것은 ‘소중화 조선’으로 내부의 개혁요구 반영은 부족.
 
참고 성리학의 이기(理氣)론

성리학은 이 세상은 이(理)와 기(氣)라는 두 개의 근본요소로 이뤄져있다고 상정한다. 이(理)는 그야말로 세상의 근본 이치로 순수하고 존귀한 것이다. 기(氣)는 이(理)의 발현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이 세상 모든 만물은 氣의 작용인데, 이때 氣는 理라는 형이상학적 근본원리의 법칙에 따라 세상만물을 만들어낸다.
좀 더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理가 원료라면, 氣는 理라는 원료의 배합률’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성리학은 근본적으로 理를 100%활용한 것이 있는 가하면, 1%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理를 100% 제대로 활용해 세상에 나타난 것이 군자고, 그렇지 못한 것이 소인이다. 더 거칠게 말하면, 내가 사대부이며 양반인 것은 理를 100%활용한 따름이고, 네놈이 천민인 것은 理라는 재료를 활용하는 과정에서(기의 작용), 뭔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불량품이 나타났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세상만물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주자가 성리학을 창립할 때의 시대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적으로는 우수하지만, 이민족의 침입으로 시달리던 송나라의 한족은 뭔가 정신적 도피처가 있어야했다. 나는 理이고 너는 氣인데, 내가 현재 너한테 당하는 것은 氣의 작용일 뿐이지, 원래의 理의 작용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이기론이 조선에 들어와서는, 理의 순수한 발현체인 나같은 군자가 너희들 같은 천한 氣가 섞인 것들(뭔가 제조과정에 문제가 있는~)과 똑 같이 세금내고, 군대가고 할 수 있느냐는 삐뚤어진 선민의식으로 발전한다.
이같은 성리학의 삐뚤어진 선민의식은 2018년 현대에도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갑질에서 알 수 있다.
 
 
기사입력: 2018/11/23 [06:14]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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