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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진주만 기습공격(1941년 12월7일)
일본, 미국과의 전쟁으로 수렁에 빠져들며 패전의 나락으로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9/11/05 [10:42]

[김영수 잡학여행] = 일본이 중국침략(1937년)에 이어 독일, 이탈리아 등 추축국과 동맹을 맺자(1940년) 미국은 고철수출 금지, 석유수출 금지, 미국내 일본 자산 동결, 일본 선박의 파나마 운하 통과 거부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어 미국은 일본과의 모든 상업ㆍ금융 관계를 단절(1941년 7월)했다.

 

 

◇ 일본, 미국의 경제제재에 무력으로 대응
미국의 헐 노트와 일본의 도조 히데키는 외교적 교섭을 벌였으나 결국 양국 관계는 틀어지고 만다(1941년 11월26일). 중일전쟁으로 가뜩이나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은 미국함대를 기습 공격, 미군 전투력의 공백을 틈타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등지를 점령해 부족한 물자를 보충한다는 계획을 오래전에 세워둔 상태였다.

 

▲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미군 전함 애리조나호의 피격 장면. 무료이미지=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주일 미국 대사관 조지프 그루(Joseph Grew) 대사는 일본의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향해 출정(11월26일)한 날, 전문으로 일본의 동향을 알렸으나, 미국정부는 유럽에서의 전황 때문에 이 전문을 무시한다.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제독은 나구모 주이치[南雲忠一] 중장에게 연합함대(항공모함 6척(함재기 360대),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11척)를 지휘하도록 했다.


미군은 일요일 오전의 휴식에 취해있었고, 무방비 상태에서 일본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일본해군의 함재기는 진주만(Attack on Pearl Harbor)에 정박중이던 미국 전함 애리조나호, 캘리포니아호, 웨스트버지니아호를 폭격해 침몰시키고 오클라호마호는 전복시켰다. 일본의 제2진 비행단은 뒤이어 메릴랜드호, 네바다호, 테네시호, 펜실베이니아호에 타격을 입혔다.


함선 18척이 침몰 또는 손상을 입었고 180여대가 넘는 비행기가 파괴됐다. 군인은 사망 2300명을 포함해 3400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일본측은 단지 비행기 29~60대와 소형 잠수함 5척의 손실을 입었다.

 

 

◇ 미국의 자존심 자극이 참전으로 이어져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미국의 태평양 함대 소속 항공모함 3척은 일본의 기습공격 당시 진주만에 없어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손상을 입은 8척의 전함 중 애리조나호와 오클라호마호를 제외한 6척은 수리를 마치고 복귀했다.


일본은 진주만에 있던 미군의 유류 저장시설을 파괴하지 못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유류 저장시설을 파괴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전략상의 중요한 실수가 됐다. 전함이든 비행기든 연료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했으나,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불명예스러운 날로 기억될 그날’이라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평가했고, 미국인들을 단합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국의회는 단 1명(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도 반대했던 몬태나의 지넷 랭킨 공화당 의원)을 제외한 전원의 찬성으로 일본에 대한 전쟁을 선포(12월 8일)했다.
본격적인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 일본연합함대 항공모함 8척, 미국태평양함대 항공모함 3척
진주만 기습공격은 미해군의 주요 해군기지였던 진주만을 일본 항공모함이 기습, 미해군 함대를 궤멸시킨 전투로, 항공모함 시대를 개막한 전투의 시작으로 후세는 평가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측은 초전의 성공 속에서도 항공모함의 운용이라는 승전의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

 

▲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기습공격 기념관. 무료이미지=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그것은 향후 일본이 거함거포주의를 계승, 일본이 최대전함 야마모토호를 건조하고 결국 격침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며보면 일본군부의 무능을 알 수 있다.


1941년 진주만 기습공격 직전의 주요국가의 해군력을 보면,
일본연합함대는 △항공모함 8 △전함-순양전함 11 △중순양함 18 △경순양함 23 △구축함 129 △잠수함 67을 보유했다.
미국태평양함대는 △항공모함 3 △전함-순양전함 9 △중순양함 13 △경순양함 11 △구축함 80 △잠수함 56을 보유했다.
영국동양함대는 △항공모함 0 △전함-순양전함 2 △중순양함 1 △경순양함 7 △구축함 13 △잠수함 0을 보유했다.
네덜란드 동양함대는 △항공모함 0 △전함-순양전함 0 △중순양함 0 △경순양함 3 △구축함 7 △잠수함 13을 보유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에 섰다고 판단한 일본은 미국에 선전포고없는 진주만 기습공격이라는 도발을 한 것이다. 당시 소비에트는 독일군의 진격에 모스크바까지 밀린 상태로 독일이 소비에트를 상대로 승리를 눈앞에 둔 것처럼 보였다. 히틀러는 기계화사단으로 10주 정도면 소비에트를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결국에는 여기에서 발목을 잡혀 패배했다.


독일이 소비에트의 잠재력을 간파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도 미국의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동부의 모든 산업시설을 서부로 옮겨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했다. 진주만 이후 1년동안 미국이 건조한 항공모함은 50척으로, 일주일에 한척의 항공모함을 만든 셈이다.

 

 

◇ 일본 제로센, 안전장치 없애고 성능만 높여
진주만 기습공격은 영국 해군이 이탈리아 해군의 모항이었던 타란토 공습작전(1940년 11월11일)을 교범으로 삼아 진행했다. 타란토 전투는 역사상 최초로 영국해군의 항공기와 이탈리아의 전함이 맞붙은 것으로, 진주만의 양상이 일본해군 항공기가 미해군의 함정을 공격한다는 패턴이 같았다.

 

▲ 개전 초기 연합군에 공포를 불러 일으켰던 일본의 함재기 제로센. 성능을 위해 구조를 생략한 취약한 비행기동체 탓에 고속비행, 조종사의 안전, 연료통 방탄 등이 엉망이었다. 무료이미지=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이때 일본해군의 주력기가 속칭 제로센(제식명 A6M에서 A는 공격, 6은 6번째 모델, M은 미쯔비시 공업의 제작이라는 의미)이다.


제로센은 함재기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조종석의 장갑판 생략(조종사의 희생) △연료탱크 봉합장치 생략 등 경량화를 통해 925마력 엔진으로도 장거리 항속, 탁월한 상승력,  선회성능 향상, 기동력 등을 갖출 수 있었다.


초반, 제로센과 대결한 미국, 유럽의 파일럿들은 제로센의 7시간이나 가능한 항속비행거리, 신속한 선회능력(전투의 기본은 상대방의 약점인 뒷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선회반경이 짧으면 상대방의 뒤를 잡을 수 있다.) 등에 경악했다.


그러나 제로센은 경량화를 위한 구조적 취약점으로 급강하가 불가능하고, 연료탱크쪽에 몇발만 맞으면 불이 붙는 점, 조종석의 방어능력이 전무해 파일럿의 희생율이 높은 점 등이 약점이었다. 특히 우수한 파일럿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이 들어야하는데, 제로센은 이를 무시해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연합군에게 전력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태평양전쟁 ①전쟁의 원인
태평양전쟁 ②진주만 공습
태평양전쟁 ③둘리틀대공습
태평양전쟁 ④과달카날전투
태평양전쟁 ⑤미드웨이 해전

기사입력: 2019/11/05 [10:42]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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