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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갑골문, 잃어버린 문명을 일깨우다
전설의 고대국가 상(商)의 실존과 한자의 유래 밝혀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0/13 [08:20]

[김영수 잡학여행] = 우리말의 70%가량은 한자어(漢字語)로 이뤄져있다. 따라서 우리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漢字)로 이뤄진 낱말(단어)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만은 않다.

▲ 중국 상(은)나라는 거북의 껍질을 불에 구울 때 나타나는 균열로 미래의 길흉을 점쳤다. 그 기록이 갑골문이다.     © 경기도민뉴스



◇ 거북껍질에 새겨진 고대 기록
한자어는 기본적으로 물체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다. 그 시초는 중국 최초의 국가인 상(商)나라가 거북이나 소의 뼈를 불에다 구워 갈라지는 문양을 보고 앞으로의 길흉을 점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예전 은(殷)이라고 부르던 나라가 바로 상(商)이다. 은(殷)은 도시를 나타내고, 국호는 상(商)라는 것을 밝혀낸 것도 바로 갑골문의 발견 덕분이었다. 


상나라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국가의 중대사에 관해 하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쳤다. 거북껍질이나 소의 뼈에는 점을 친 이유, 점을 친 사람, 점괘의 해석 등을 기록한 것이 현재 전해지는 갑골문(甲骨文)이다.


갑골문의 재발견과 연구를 통해 한자의 원래 글자모양(字形)과 유래를 정확하게 알게 됐다. 붉을적(赤)자는 불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는 모양(사람을 태워 죽이는 모습), 백성민(民)은 눈에 칼을 꽂은 형상(상나라는 인신공양 노예의 눈을 멀게 한후 죽였다)을 땄고, 버릴기(棄)는 아이를 광주리나 구멍에 버리는 모습을 땄다.

 

▲ 그림에서 비롯한 상형문자인 한자 해석의 대표적 오류는 원형을 부호화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것이 있다는 것을 지나친다는 것이다. 갑골문은 고대인의 생각과 당시 사회를 알려주는 살아있는 정보다.     © 경기도민뉴스



◇ 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는 대표적 허구
갑골문의 재발견과 연구 이전에는 후한의 학자 허신(58?~149)이 쓴 <설문해자>를 바탕으로 한자의 유래를 파악했었는데, 오류가 많았다.


지금도 한문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법(法)이라는 글자를 구성요소 그대로 분석해 ‘법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법을 이루는 한자어 물수(水)와 간다(去)는 의미 두개를 나름대로 조합한 것인데 대표적인 엉터리 해석이다.


법의 원래 글자는 보다 복잡한 법灋이라는 형태였다. 갑골문의 구성요소를 보면, 물가에 사람을 묶어두고, 해태(검은 염소, 또는 양이라는 해석도 있다)가 들이받는 형태다. 즉, 죄지은 자는 하늘의 심판으로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담고 있다. 이것을 간략화한 것이 현재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법(法)이라는 글자다.


방위를 나타내는 동(東)도 나무(木)에 해(日)가 걸린 것으로, 자형을 분해해 동쪽이라는 의미가 나왔다고 한다. 역시 엉터리 해석이다.


동이(東夷)를 ‘동쪽의 큰활을 쏘는 사람’이라고 풀이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국뽕이 합쳐진 더욱 더 엉터리 해석이다. 갑골문에서 大는 사람이고, 弓은 활이 아닌 쭈그려 앉은 사람의 형상이다. 결국 쭈그려 앉는 것을 좋아하던 종족 정도의 의미다. 상나라의 갑골문에서는 夷를 원래는 尸(쭈그려 앉은 사람의 형상. 후대에 와서 시체라는 뜻으로 변했다)라고 표기했다.

 

 

◇ 허신, 제각각인 글자의 통일 위해 <설문해자> 집필
갑골문에서 동(東)은 막대기에 보따리를 묶은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보따리에는 씨앗이 들어있고, 이것을 동쪽에 보관한 것이 동쪽이라는 방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다른 주장도 있다)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한자는 남북조시대(조조 유비가 활약하던 중국의 삼국시대부터 사마중달의 후손이 손권의 근거지에 세운 동진)에 글자의 모양을 갖춰졌다. 그림을 바탕으로 하는 상형문자를 문자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간략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대해서는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볼 것이고 부호화 과정에서 본래 상형이 퇴색한 것들이 많다.


애초에 허신이 <설문해자>를 집필한 목적이, 당시 책마다 쓰인 글자의 모양이 서로 달라 경전의 해석이 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글자의 유래를 밝혀 자형을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다. 진시황이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했다고는 하지만, 문자의 진정한 통일은 한참 후에나 이뤄진 셈이다.


전해지는 갑골문은 상나라의 골칫거리인 주나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점치는 것이 많았다. 갑골문에 나타나는 우(又 원래는 오른손을 나타냈다), 목(木), 목(目), 지(之 사람의 발 또는 발걸음), 여(女) 등은 현재도 통용되는 자형이다.

 

▲ 중국 고대문명을 알려주는 청동기. 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 청의 사상탄압, 고증학 발달로 갑골문 재발견
상나라는 주나라에 멸망당했는데, 사회상의 발전에 따라 상나라에는 없던 새로운 글자가 주나라에서 나타난다. 주나라는 청동기에 글자를 새겼기에 금문(金文)이라고 통칭하는데, 이전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던 애(愛), 지(知), 지(地) 등의 글자가 보인다.


갑골문의 발견으로 실존여부가 불분명했던 상(은)나라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은 요-순-하-상(은)-주를 상고시대라 부르며 이상적인 국가의 모범으로 삼는 비유가 많은데, 갑골문 발견 이전에는 유물ㆍ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상(은)나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추세였다.


그런데 상나라에서 사용하던 갑골문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심지어 하나라를 무너뜨리고 상을 건국한 성탕의 존재도 갑골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청나라 광서제 말년에 중국 하남성 안양현 소둔촌의 농민들이 밭을 갈다가 땅속에서 나온 갑골문을 그저 문양이 새겨진 뼈라고 여겨, 한약방에 약재로 팔곤 했다.

 

▲ 우리나라 갑골문 연구의 대가 김경일 교수의 ‘갑골문이야기(김경일, 바다출판사, 1999)’ 흥미진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 경기도민뉴스



병에 걸린 금석학자 왕의영에게 주변에서 용골을 권유했고, 용골을 받아 든 왕의영은 한약재인 용골에 새겨진 것이 고대문자이고, 바로 갑골문인 것을 알아내고 연구에 돌입(1890년대 무렵)했다.


당시 청나라는 문자의옥 등 사상탄압으로 경전해석보다는 실제 팩트를 체크하는 고증학이 발달했다. 왕의영 사후 식객이자 친구인 유악이 이어받아 <철운장귀(鐵雲藏龜)>를 출판하면서 갑골문이 세상에 알려졌다.
하남성 안양 소둔촌을 발굴한 결과 상나라의 수도(은허 殷墟)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기사입력: 2020/10/13 [08:20]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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