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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일본의 조선침탈 과정 정리
운요오호-청일전쟁-을미사변-러일전쟁으로 조선침탈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0/19 [06:37]

[김쌤’s 한국사] = 개항으로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탈아입구’를 내걸면서, 급속한 근대화를 진행한다. 근대화를 위해서는 산업구조(농업 등 → 제조업, 공업)의 변화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희생당하는 계층은 농민이었다.


산업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반드시 식민지가 필요한 상황(독일도 마찬가지였다)이었지만, 이미 열강이 모두 차지해 남아있는 식민지가 없는 상황에서 반드시 조선이라는 발판이 필요했다.


1800년대말~1910년 조선(대한제국)은 3개의 나라가 서로 영향권을 행사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청, 러시아, 일본 세 나라가 조선에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일본이 승리해, 조선을 강제합병한다.


특히 청일전쟁(1894~1895)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사라지고, 신흥 일본이 새로운 패자(覇者)로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다.


일단 대체적인 흐름을 정리하면,
일본은 세 번의 사건에서 조선에 3개의 조약을 강요하고, 청과는 또 다른 별개의 조약을 맺는데 이것이 청일전쟁으로 이어지고, 러일전쟁을 불러오며, 조선의 침탈로 결말을 맺는다.

 

1) 운요오(雲揚)호 사건(1875년 9월20일, 고종12)
■ 원인
개항을 강요.일본이 일부러 한국 해변수비대의 포격을 유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한 책략. 미국의 흑선사건을 그대로 본떠 조선에 실행했다.
■ 결과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1876년 2월27일, 고종13) 체결. 조선이 맺은 최초의 근대식 조약이며, 불평등 조약이었다.
△조일수호조규부록(1876년 8월24일)
강화도조약을 보완하기 위해 체결한 후속조약. 조선에서 일본화폐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해, 일본의 경제침략 계기를 제공.
△조일무역규칙​(1876년 8월24일)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훗날 방곡령의 단초), 일본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 등을 규정.
△조일수호조규 속약(1882년 8월30일)
일본인의 조선 여행 자유화, 양화진(서울 마포구 합정동 지역의 나루터) 개장으로 일본상인의 서울 진출 등 허용.

 

▲ 조선이 부국강병책의 하나로 창설한 신식군대 별기군. 문화재청 발간 ‘대한제국1907 헤이그특사’(사진으로 본 백년전의 한국, 가톨릭출판사, 재인용).     © 경기도민뉴스

 

 

2) 임오군란(1882년 6월9일, 고종19년)
■ 원인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의 차별에 구식군대가 일으킨 난리.
■ 결과
△제물포조약
①군란 주모자처벌, 배상금 지불, 일본공사관에 경비병 주둔, 박영효 김만식 김옥균 등의 사과단 일본 파견하고 제물포조약 체결.
②제물포조약은 일본의 야심이 그대로 조문화된 불평등조약으로, 이 조약 이후 조선은 자주국가로서의 위신과 체면 상실.
③임오군란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국 관리 피해자의 유족과 부상자에게 위로금(총액 5만원) 지급, 임오군란으로 피해를 본 일본의 군비 배상(50만원), 일본공사관에 무장병력 파견 등

 

3) 갑신정변(1884년 10월, 고종 21)
■ 원인
혁신파인 개화당이 왕조의 내정을 개혁하기 위해 일으킨 정치적 변란.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나라와 일본이 대립하고, 조선도 친청-친일파로 갈라져 대립하는 와중에 발생. 청나라의 무력간섭으로 실패.
■ 결과
①한성조약(조선-일본)=일본이 조선에서 청나라와 대등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②텐진조약(청-일본)=어느 한나라가 조선에 출병하면, 다른 나라도 출병한다) 특히 갑오농민전쟁 때 일본이 이 조약에 따라 조선에 출병하면서 청일전쟁이 벌어진다.

 

4) 갑오개혁 갑오농민전쟁 등(1894년)
■ 원인
①정부가 농민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일본도 텐진조약에 따라 조선에 파병. 청과 일본이 전쟁을 벌여 일본이 승리.
②청일전쟁은 주로 청-일 양국의 군사적 대결이지만, 한반도 내에서 일본군과 동학의병(東學義兵) 간의 조일전쟁(朝日戰爭)이기도 하다. 1894년 10월 중순 전라ㆍ충청도에서 전봉준 손병희 등은 동학농민군(의병)을 이끌고 조선을 강점한 일본군에 대항하는 조일전쟁을 벌였다.
■ 결과
①시모노세키조약(1895년4월17일)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자주국임을 확인한다. 중국의 조선에 대한 전통적인 종주권 부정. 조선 침략 노골화.
②일본은 강화도조약 제물포조약 톈진조약 등에서 일관되게 추진해 온 조선에 대한 우월한 정치 군사 경제적 지배권 확고히 장악. 조약의 내용중 랴오둥반도 대만 펑후(澎湖)열도 등을 일본에 할양한다는 대목이 러시아를 자극해 삼국간섭을 불러 온다.
③삼국간섭(시모노세키조약 체결 6일후인 1895년 4월23일)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일본 정부에 대해 랴오둥반도를 청에 반환하라는 간섭.
④시베리아횡단철도로 동아시아(부동항은 러시아의 염원)진출을 꿈꾸던 러시아는 청일전쟁이 만주지역까지 번지자, 일본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삼국간섭 단행.
⑤삼국간섭을 계기로 일본은 러시아를 장래의 적국으로 인식, 러일전쟁에 대비한 군비확장 착수. 청일전쟁으로 받은 배상금이 종자돈 역할을 한다.

 

5) 을미사변(1895년 8월20일, 양10월8일)
■ 원인
①러시아의 압력에 일본이 굴복하자, 조선정부는 친러노선으로 일본을 견제한다. 일본 공사 미우라의 지시를 받은 낭인들이 1895년 10월 8일 새벽 황후의 침소인 경복궁 옥호루로 쳐들어가 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②일본측은 미우라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재일사학자 박종근과 한국사연구자 야마베 겐따로(山邊健太郞)는 일본측 자료를 추적해 낭인이 일본군으로 일본의 조직적 범행인 것을 밝혀낸다.
■ 결과
아관파천(俄館播遷 1896년 2월11일)
①일본의 민비 살해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은밀하게 러시아와 접촉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일국의 국왕이 자시니 거처하는 궁궐의 보안을 믿지 못해 외국의 대사관으로 피신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수많은 개발사업(이권)이 러시아로 넘어간다.
②청일전쟁의 와중에 내세운 친일내각은 실각하고 김홍집은 민비를 시해한 친일파로 몰려 군중들에게 피살된다.
③조선이 러시아의 보호속에서 친러내각을 조직하자,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화 계획에 차질을 빚고, 이는 그대로 일본 내부경제의 존립기반 위협으로 작용한다.


▲ 군산 어청도 등대. 국가등록문화재 제378호(지정 2008년 7월14일). 일본이 청일전쟁 후 중국항로의 중요성을 깨닫고 축조했다. 선교사 아펜젤러가 어청도 등대 앞바다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6) 러일전쟁(1904년 2월8일~1905년 9월)
■ 원인
①만주와 조선의 배타적인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
청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을 독점하려던 일본은 러시아 주도의 삼국간섭으로 저지당했다. 일본은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을미사변(1895년)을 일으켜 민비를 학살했으나, 반일 의병투쟁을 불러와 더욱 수세에 몰렸다.
②친러파에 의한 아관파천(1896년 2월)으로, 조선은 친러정권을 수립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은 영일동맹(1902년),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조약(1905)년을 맺고, 러시아 함대가 정박하고 있던 뤼순항을 기습 공격(1904년 2월8일)하고 선전포고(2월10일).
③대한제국은 국외중립을 선언(1904년 1월21일)했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서울에 군대를 진주(2월9일).
④일본은 대한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요(2월23일)하고, 병력과 군수품의 수송을 위해 경부ㆍ경의선 철도건설을 서둘렀으며, 조선의 통신사업을 강점했다.
⑤알본은 대한제국정부에게 러시아와 체결했던 모든 조약과 러시아인에게 부여했던 모든 이권의 폐기와 취소를 공포하도록 강제(5월18일).
⑥일본, 악전고투속에 뤼순항 함락(1905년 1월). 러시아, 유럽의 발틱함대 파견하지만 5월27일 대마도에서 대기하던 일본 함대에게 발틱함대가 전멸당하면서 일본의 독주를 막을 세력이 없어졌다.
■ 결과
△을사보호조약(1905년 11월16일)=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7) 헤이그특사파견(1907, 대한제국 광무11)=고종퇴위, 순조즉위
8) 정미7조약(1907 7월24일, 한일신협약)=통감부설치
9) 경술국치(1910년)=국권피탈

기사입력: 2020/10/19 [06:37]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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