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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 한니발, 나홀로 로마와 전쟁
15년동안 로마 본토를 누비며 단 한차례 패전 없어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1/22 [10:30]

[김영수 잡학여행] =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 BC247~BC183, 181)에 대한 대체적 이미지는 비운(悲運)의 명장이자 영웅이다. 평생을 숙적 로마와 싸워 빛나는 전공을 세웠지만, 조국 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을 받쳐줄만한 장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연의식으로 설명하자면, 무적의 관운장이 청룡도를 휘두르며 ‘적진을 유린하지만, 그것으로 그냥 끝’이 돼버린 것이다.


비운의 명장이지만 전쟁영웅을 꼽으라면 반드시 포함되는 명장(名將)이다.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제2차포에니전쟁은 사실상 한니발 혼자서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로마 내부에서 15년동안 혼합 용병부대를 지휘한 것부터가 비범한 전술전략과 통솔력을 증명한다.
로마가 한니발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는, 한니발과의 전투는 회피하고(주로 농성전으로 방어에 치중), 한니발 이외의 장수들이 이끄는 카르타고군과 싸워 단 한번을 빼고는 모두 승리한데서 알 수 있다. 무적 로마가 한니발한테만은 힘을 못쓴 것이다.

 

▲ 한니발의 가계도. 아버지도 전투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는 명장이다. 이런 아버지의 재능은 한니발 혼자만 이어받은 듯, 동생들은 형을 쫓아가지 못한다. 사실은 로마의 장수들이 모두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 경기도민뉴스

 

1) 로마에 패배한적 없는 아버지 하밀카르
①한니발의 가계(家系)도 중요한데 △하밀카르 바르카(아버지) △하스드루발 바르카(둘째 동생) △마고 바르카(셋째 동생) △공정한 하스드루발(매형) △보밀카르(매형) △한노(조카) 등이 모두 군인으로 로마와의 전쟁과 관련이 깊다.
②제1차포에니전쟁(​BC264~BC241)의 주무대인 시칠리는 로마의 공격으로 카르타고가 밀리는 상황이었다. 하밀카르는 섬의 북서쪽에 소수의 용병부대로 기습상륙, 거점을 마련하고 에르크테산(현재 팔레르모 근처로 추정)을 확보했다. 하밀카르는 이후 에릭스산으로 거점을 옮겨(BC244) 게릴라전술로 로마군을 괴롭혔다.
③로마와의 전투에서 하밀카르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자신의 부대를 고스란히 보전한 채 귀국할 수 있었다. 전력을 보전한 덕분에 귀국하자마자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용병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하밀카르를 질시하는 세력을 피해 자신이 직접 선택ㆍ훈련시킨 누미디아 기병대와 함께 히스파니아(스페인)로 원정을 떠났다.
④한니발의 아버지는 어린 한니발을 신전으로 데려가 반드시 로마를 멸망시키라는 맹세를 시켰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지중해는 발전하는 로마에 대해 두려움, 반감 등도 많았다. 한니발 원정에서 유력동맹들이 로마를 이탈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2) 히스파니아 원정으로 가문의 발판 만들어
①40대 초반인 하밀카르는 장남 한니발(9세), 차남 하스드루발, 막내 마고, 사위 하스드루발과 함께 히스파니아에서 9년동안 성공적인 원정으로 바르카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데 성공한다. 히스파니아 남부를 거의 정복한 하밀카르는 남은 도시를 공격하다가 익사(BC228 또는 229, 로마가 암살했다는 설도 있다)했다.
②하밀카르는 군사적 재능과 함께 정치적 수완도 있었던 듯하다. 훗날 로마의 정치인 카토(Cato)는 히스파니아를 보고 “그 어떤 왕도 하밀카르와 나란히 불릴 만한 가치가 없다”라고 감탄했다. 강렬한 반카르타고파로 언제나 카르타고를 완전히 궤멸시켜야한다고 주장했던 카토의 감탄은 최고의 찬사라 할 것이다.
③하밀카르는 히스파니아에 자신과 가문의 뿌리를 굳건히 내리는데 성공한다. 이런 아버지의 재능은 한니발에게 이어진 듯하지만, 다른 아들들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바르셀로나’는 가문의 이름 ‘바르카’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원주민어 ‘바르케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 한니발이 손으로 짚고 있는 것은 로마의 군기다. 거꾸로 들고 있는 것은 로마입장에서는 최대의 모욕인데, 이를 조형물로 만든 것은 그만큼 한니발이 대단했다는 의미다. 최고의 찬사는 적에게서 받는 것이므로. 무료이미지 픽사베이.     © 경기도민뉴스



3) 한니발, 히스파니아 주둔군 총사령관 취임BC219
①하밀카르가 전사하자 너무 나이가 어렸던 한니발(16세)이 지위를 이어받지 못하고 ‘공정한’ 하스드루발(매형)이 히스파니아 사령관을 맡는다. 아버지를 빼어 닮은 한니발은 성실한 훈련, 용맹한 전투 태도 등으로 병사들로부터 폭넒은 신망을 받는다.
②하스드루발의 별명이 ‘공정한’이라는 것에 미뤄, 매우 강직하고 신뢰받는 성품이었던 듯하다. 하밀카르 이후 히스파니아에서 세력을 키워나가는 카르타고를 경계한 로마는 하스드루발과 에브로강을 경계로 더 이상 진출하지 않도록 조약을 맺는다(BC227년).
③그러던 중 매형 하스드루발이 평소 무시하던 켈트족 노예에게 살해당하자, 한니발은 드디어 아버지가 개척한 히스파니아(현재 이베리아반도 지역) 주둔군의 총사령관(BC219, 27세)으로 취임하고, 본국으로부터도 승인을 받는다.
④에브로강 서쪽의 로마 동맹시 사군툼에서 친카르타고 인사와 카르타고 시민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한니발은 즉각 사군툼을 포위했다.
포위당한 사군툼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지만, 북부 갈리아족과의 전쟁으로 병력을 파견할 여유가 없던 로마는 사절단을 보내 한니발에게 강력히 항의하려하나, 한니발이 만나주지 않자 카르타고 본국으로 향한다.
⑤카르타고 원로원은 하스드루발이 로마와 경계를 정한 것, 사군툼과의 동맹은 모두 카르타고 본국의 의견을 거치지 않아 조약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발뺌한다.
⑥결국 전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자, 로마의 지원이 없는 사군툼은 한니발에게 강화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한니발은 사군툼의 모든 시민에게 옷 두 벌씩만 갖고 항복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⑦한니발이 자신들을 몰살시키려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군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불태우고, 항전하지만 점령당하고, 살아남은 시민은 노예로 팔렸다. 사군툼을 지원하지 않는 로마의 행위에 동맹시는 실망과 불신을 가지고 이는 초기 한니발에 동조해 이탈하는 계기가 됐다.
⑧로마는 한니발에 대한 방어군(동생 스키피오)과 함께 카르타고 본국에도 원정군을 보내는 양면작전을 구사한다. 한니발은 이것을 노린 듯, 즉각 원정군(보병 3만8000, 기병 8000, 코끼리 37)을 꾸려 로마로 향한다(BC218).

기사입력: 2020/11/22 [10:30]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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