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067] 말(馬), 인류의 전쟁과 함께한 가축
품종개량 힘입어 다양한 종류가 다양한 역할 수행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2/01 [09:10]

[김영수 잡학여행] =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문명을 이룩한 인류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본격적인 무기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말(馬)이었다. 말은 청동기시대(BC3000∼BC2400) 동부유럽~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가축화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초기의 말은 체형이 작아, 사람이 직접 타기 어려워, 대부분 수레를 끄는 형태로 활용했다.

 



1) 안장과 등자, 사람이 말을 직접 올라타다
①고대의 전쟁에서 전차는 말이 끄는 수레에 사람이 타고 돌격하는 형태였다. 갑골문의 차(車, Chinese Etymology)를 보면, 고대 중국인들이 전차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 갑골문 금석문 Chinese Etymology 갈무리.     ©경기도민뉴스


②인류의 품종개량에 힘입어 말의 덩치가 커지고, 사람이 말을 직접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장(鞍裝, saddle), 등자(鐙子, stirrup)에 이어 말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편자 등의 발명으로, 말은 드디어 인류의 전쟁사에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그 자체로 무기가 된다.
③안장은 BC 3세기쯤 가죽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착용감과 내구성이 좋아져, 사람이 말 위에 앉기가 훨씬 편해졌다. 또 안장보다는 조금 늦게 나타났지만, 등자를 안장과 세트로 연결하면서, 사람이 말을 자신의 뜻에 맞게 조종하기도 쉬워지면서 전쟁에서 말의 활용도도 커졌다.
④중국에서 등자를 사용한 것은 늦어도 2~3세기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외로 안장에 비해서 등자는 전파속도가 늦어 유럽에는 8세기쯤에나 일반화되기 시작한다. 등자는 기수(騎手)가 하체를 고정할 수 있도록 해,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두 팔로 긴 창을 휘두르거나 활을 쏘는 것이 가능해졌다.

 



2) 편자의 발명, 인간과 말의 동행
①말이 전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말에 대한 관리도 중요해졌다. 사람이 신발을 신어 발을 보호하듯, 말에게도 신발을 신겨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편자(蹄鐵, horseshoe)다.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이고, 대체적으로 로마(BC1세기쯤)에서 대규모 기병전을 수행하면서 발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②편자는 쇠를 녹여 만들고, 말발굽에 편자를 박는 기술은 현대에 들어와서도 아주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다. 편자는 야금술(冶金術, metallurgy)과도 깊은 관련을 맺는데, 일본의 경우 조총을 만들면서도 말발굽에 편자를 박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짚신을 만들어 신기는 경우가 있었다. 편자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문화적 차이라고만 보기에는 많은 모순이 있다.
③스포츠의 종류에 따라 착용하는 신발이 다르듯, 말도 용도에 따라 현대에 들서는 편자의 소재가 차이가 난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가내수공업 형태였으므로, 대장간에서 만들어내는 편자의 품질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나라는 전라북도 장수군 동촌리 가야고분군에서 편자가 출토된 것으로 미뤄 최소 삼국시대(또는 그 이전)부터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④말발굽에 편자를 박는 일은 장제사(裝蹄師, Farrier)라는 전문가가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한국장제사협회라는 곳에서 국가장제사자격시험(1급~3급)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제9회 국가장제사자격시험 발표(3급, 2020년 11월15일)에서 합격자는 7명이고 누적 취득자는 83명이라고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으니 국내에 100명이 넘지 않는 희귀직종이라 할 수 있다.
편자를 박지 않아도 말의 발굽이 자라므로 4주~6주마다 관리해야 한다. 일 자체가 고된 편이어서 양성과정에서 80%가 중도포기 한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3) 현대 이전 사람, 물자, 정보의 매개체
①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균쇠>에서 5종의 가축(소, 말, 개, 염소ㆍ양, 돼지)을 언급하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가 경운기나 트랙터라면, 말은 통신과 운송수단(사람, 물자, 정보)이었다.
②학자에 따라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부족상태에서 더 이상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말이 없었던(사람과 물자의 교류 단절로 통신이 불가능해 대규모 집단이나 사회를 구성하기가 불가능) 신대륙의 조건에서 찾기도 한다.
야생마 머스탱은 인간이 키우던 말이 도망쳐 무리를 이룬 것으로, 구대륙에서 말을 들여오기 전까지 북미대륙은 말이 없었다.
③전쟁에서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데, 말보다 확실하고 유용한 도구는 없었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격기갑작전을 펼친 독일군도 정작 보급은 말이 끄는 수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수레를 밀어낸 것이 미국의 지프(JEEP, 원래 상표명이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차량의 한 형태로 사용)다.
④1차대전, 2차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이에따라 보급의 중요성도 커졌다. 1차대전동안 영국과 프랑스는 해마다 수십만필의 군마를 수입해야 했고, 전쟁기간 동안 900만필의 군마손실을 입었다.

 



⑤말은 승용(사람이 타는 것), 만용(수레를 끄는 용도), 태용(짐을 싣고 나르는 용도) 등 전세계적으로 200여종이 인간사회와 함께 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품종 아할테케(Ahal-Teke)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피 같은 땀을 흘린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한혈마(汗血馬)라고 불렀고, 한무제는 이 말을 얻기 위해 전쟁까지 벌였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기념물이다.


4) 신라시대부터 말 목장 운영
①우리나라에서 말을 많이 키우는 제주도의 설화에 보면 “부룽이(황소) 백두는 쉬워도 타는 말 백두는 쉽지 않다”는 내용이 있다. 말은 위가 하나뿐이고 소(는 4개다)와 달리 되새김질을 하지 못해 소화흡수율이 떨어진다. 부족한 열량을 곡물로 채워줘야 하므로, 결국 사람이 먹을 것을 말에게 줘야한다.
②따라서 말을 사육하는 것은 소, 염소ㆍ양, 돼지 등에 비해 가성비가 매우 낮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유목사회와 달리 농경사회에서 말은 필수 가축이 아니었으므로, 전쟁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③고려말기 제주목호의 난(1374, 최영 장군 토벌)은 말 사육의 고단함과, 원(몽골)의 수탈, 원-명 교체기 대륙에 시달려야했던 당시 고려의 사정 등을 알려주는 사건이다. 최영 장군의 토벌군 규모가 전함 314척, 2만5000병력이라는 것은 제주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④<삼국유사>는 “원봉2년……우거청강태자헌마운운(元封二年……右渠請降太子獻馬云云)”이라는 내용이 있어 말을 사육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신라에서는 거(阹)라는 말목장이 있었고, 목숙(苜蓿)이라는 풀을 대륙에서 들여와서 말의 사료작물로 재배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서기>는 “백제왕견아직기양마이필즉양지어경판상구인이아직기영장사(百濟王遣阿直岐良馬二匹卽養之於輕坂上廄因以阿直岐令掌飼)”, 즉 아직기를 통해 말 두 마리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⑤조선은 사복시에서 군마의 품종개량을 담당했다. 여진에서 들여온 말을 바탕으로 철청준마(鐵靑駿馬), 오명마(五明馬)등 20여종의 준마를 생산했다고 한다.
13세기 유럽에서 최고급 전투마는 1600실링(암소는 6실링, 일반 말은 20실링, 현재가치로 20억원 가량)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⑥기마병은 일반 보병과 달리 다양한 무장이 가능해, 통상 기마병 1명의 전투력은 일반보병의 7배~12배정도로 산정한다. 특히 기동성에서 유리하므로 기병의 운용은 매우 중요했다.

기사입력: 2020/12/01 [09:10]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