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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 개인용 화기, 소총의 발전(1)
미국 남북전쟁에서 스펜서 연발소총 도입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1/01/12 [08:07]

[김영수 잡학여행] = 인류는 화약을 전쟁무기로 이용하면서, 화력이 충분히 강력해 사거리가 길고, 무게는 가벼워 휴대하기 간편한 총기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총통이던 화약무기는 화승총(조총)으로 발전하며, 비로소 전쟁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화약으로 총기류를 만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러나 화살로는 뚫을 수 없는 갑옷을 관통하는 등의 위력은 대단해서 꾸준한 연구가 이어졌다.

 



1) 목사가 뇌관격발 총알 총기 발명
①총기의 역사에서 획기적 발전은 ‘매치록’ 방식의 격발방식이었다. 이전까지는 심지에 불을 붙여 불이 화약통에 닿을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매치록’은 사수가 총을 장전, 방아쇠를 당기면, 심지의 불꽃이 화약통에 닿도록 해, 자신이 의도한 시점에 방아쇠를 당겨 총알을 발사할 수 있도록 했다.
②이후 수석식(flint-lock)이라 해서, 방아쇠를 당기면, 부싯돌이 불꽃을 튕기는 방식이 나왔지만, 역시 사용에는 불편이 있었다. 획기적인 발전을 위한 초보단계는 영국인 목사 포사이드(Forsyth)가 뇌관총을 개발(1807)하면서 부터다.
③총기와 총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데, 뇌홍(雷汞)을 구리껍질 속에 채우고, 공이치기가 뇌홍이 들어있는 뇌관을 때려, 화약을 점화시키는 방식의 뇌관총(雷管銃, percussion lock gun)은 총기의 고질적 단점이었던 불을 소지할 필요를 없앴다.
목사가 뇌관총(엄밀히 말하면 총탄이지만, 격발장치도 포함했으므로 총도 함께 발명한 것으로 본다)을 개발한 것은 농작물을 해치는 유해조류를 쫓기 위한 것이었다.
④플린트록 등도 근본 방식은 부싯돌의 마찰력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비가 오는 날이나 물에 젖으면 무용지물이었다. 뇌관총은 이같은 습기의 제약을 거의 벗어나게 해준다.

 

▲ 초기 화승총은 심지의 불이 화약통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어서 방아쇠가 없었지만, 매치록(match-lock)부터 사수가 방아쇠를 당기는 능동적 사격개념으로 발전한다. 왼쪽이 매치록, 오른쪽이 플린트록. 신유는 나선정벌에서 청에 간청해 러시아군의 플린트록 1정을 구해오지만 당시 조선은 대장간에서의 수공업이어서 플린트록을 만들 기술력이 없었다.     © 경기도민뉴스



2) 총알과 화약을 패키지한 총알도 발명
①프로이센의 요한 니콜라우스 폰 드라이제는 탄피를 사용한 소총을 개발(1836)한다. 비록 탄피는 왁스 먹인 종이였고, 화약의 질도 좋지 않았지만, 지금의 총알과 거의 비슷하게 패키지형 완성품인 총알을 총에 장전해 발사하는 방식은 획기적이었다.
②드라이제(Dreyse) 라이플의 가장 큰 장점은 사수가 일일이 화약을 총구에서부터 일정량을 들이붓는 번거로움을 없애, 사격까지의 준비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이었다. 이때부터 사수는 별도로 화약을 보관하기 위해 거추장스런 장비가 필요 없어졌다.
③패키지 총알의 위력은 프로이센이 드라이제(Dreyse) 라이플을 군대의 제식소총으로 채택(1841),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에서 승리하면서, 소총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린다.
드라이제의 종이탄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총알을 총구로 넣어야 한다’라는 전방장전식 개념도 극복, 후방장전식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 미국의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은 총기와 탄약류의 개별적인 발전이 종합적으로 발전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물량과 화력에서 남부를 압도했다. 당시의 장면을 표현한 삽화.     © 경기도민뉴스

 

 

3) 미국 남북전쟁에서 강선라이플 위력 발휘
①자, 이제 금속제 탄피로 총탄을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격발방식과 더불어 미국의 남북전쟁때는 총구의 내부에 강선을 넣어, 총알이 회전하면서 날아가도록 하는 방식도 등장한다. 강선으로 총의 사정거리가 늘어나고, 정확도도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편전쟁, 페리제독의 일본 개항, 신미양요, 병인양요 때에 서양인들은 이미 뇌관식 발사장치를 가진 강선형 라이플을 보유했다. 이 신무기는 연사속도, 사정거리, 명중률 등에서 화승총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②총강(銃腔)에 강선이라는 홈을 만들어낸 시기는 15세기쯤으로, 이탈리아의 ‘베레타(그 유명한 권총회사가 맞다)’에서 개발했다. 널리 대중화하지 못한 이유는 제작비용 때문이었다. 기계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일일이 손으로 깎아야 했고(겉도 아닌 속을), 탄자(彈子)도 강선에 잘 맞물리도록 할 기술이 없었다.

③그랬던 강선의 대중화 계기는 미국의 독일계 이민들 때문이었다. 집밖을 나서면 총탄이 머리위를 날아다니는 무법의 서부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이 비싸도, 정확한 총이 필요했다. 독일출신 총기제조상들은 총강에 강선을 만들어 넣었고 둥근 총알을 가죽으로 싸서 장전, 발사하는 라이플을 만들었다.
④독일계 이민들은 펜실베이니아에 많이 살았고, 이들이 만들어낸 강선라이플은 켄터키의 사냥꾼들이 주로 애용했다. ‘켄터키라이플’이라는 총기의 별칭은 이렇게 탄생했다.

 



4) 북부는 연발소총, 남부는 전방장전식 소총
①남북전쟁 초기 북군은 켄터키라이플을 표준제식으로 채택했다. 아직도 다른 소총들이 구슬모양의 탄자를 사용할 때, 미국은 미니에(minie) 탄자를 사용했다. 프랑스 육군대위 미니에가 발명(1840년대)한 이 총탄의 탄자는 현대의 것과 유사하게 날카로운 쐐기꼴로 납으로 된 총알 속에 철심을 넣었다.

 

▲ 영화 놈놈놈(감독 김지운, 2008년 7월17일 개봉)에서 정우성이 사용하는 총기가 바로 스펜서 소총이다. 방아쇠의 울대를 밀어 당기는 방식으로 수동이지만 연발기능을 갖췄다.     © 경기도민뉴스

 

②지금까지, 강선라이플은 구슬모양의 탄환을 가죽같은 것으로 감싸서 장전해야했지만, 미니에탄환은 격발과 함께 납으로 만든 탄자가 팽창하면서 총강의 강선과 딱 맞게 맞물렸다.
③비록 쐐기꼴의 탄자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니에탄환도 종이 탄약포에 싸서 전방장전식이었다. 격발 방식이 수석식(flint-lock)에서 뇌관충격(percussion-lock)방식으로 바뀌면서 서서히 금속제 탄피를 사용한 현대적 총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④스펜서 연발 소총의 경우, 공업이 발달한 미국 북부에서는 만들 수 있었지만, 농업이 주력이었던 남부에서는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소총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총탄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했다.
기계공업이 뒤졌던 미국 남부에서는 대장간에서 적당히 만들 수 있는 탄환이 오히려 현실적이었다.

 

▲ 현대의 총탄은 화약의 폭발력을 견뎌내는 탄피, 폭발력으로 발사하는 탄자, 뇌관 등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 경기도민뉴스

 

5) ‘악마의 무기’ 기관총의 발명
①화력의 차이는 전략과 전술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록 수동이지만 7연발 스펜서소총으로 무장한 북군 기병대와 일일이 총구로 화약을 들이붓고, 대장간에서 만든 구슬모양의 탄환을 장전하는 남군과는 아예 처음부터 체급이 맞지 않는 격투나 마찬가지였다.
②오죽하면 남군들은 “양키들(북군)은 일요일에 한번 장전을 해두고 재장전없이 일주일 내내 쏜다”라며, 신사도를 지키지 않는다는 듯이 비난하곤 했다.
③남군도 리볼버 권총 등 연발총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기는 했지만, 생산량에서 기계공업이 발달한 북부를 뛰어넘지 못했다. 남부의 그리스월드(Griswold)사에서 남북전쟁 중 2년동안 생산한 리볼버는 3600정에 불과했다(직원 24명중 22명이 흑인노예였고, 한달에 150정 가량 생산했다). 총기의 명가 콜트는 북부에 있다.
④미국의 남북전쟁은 각자 발전하기 시작한 총기류의 강종 기술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패키지총탄, 강선라이플, 클립을 사용한 급탄, 수동이기는 하지만 연발 가능한 총(스펜서 소총 1860년)등의 결실로 이어진다.
스펜서 소총은 링컨이 직접 사격해보고 도입을 지시해 북군이 제식소총으로 채용한다(1863년).

 

▲ 소총을 엮어 연발사격이 가능하도록 한 개틀링 기관총. 중량이 무거워 기동성이 떨어지고, 사수가 알맞은 속도로 손잡이를 돌려야만 연발사격이 가능했다. 연발사격에 따른 총알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보급문제 등으로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 경기도민뉴스

 

⑤남북전쟁 중 개틀링이 개발한 개틀링기관총(1861년)은 여러 개의 소총을 묶어 회전식으로 발사하도록 해, 본격적인 물량전을 예고한다. 그러나 총기의 무게와 사용할 때 부주의 때문에 군에서 인기를 끌지 못해 실전에서 많이 사용하지는 못했다.
⑥여기서 더 나아가 사격을 즐기던 맥심은 총기의 반동 때문에 어깨가 충격을 받자, 오히려 이 반동을 동력으로 삼아 아예 자동장전이 가능한 총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낸 맥심 기관총(1883년)은 1분에 500발을 발사했다. 초기 기관총의 별명은 ‘악마의 무기’였고, 열강의 식민지전쟁에서 순식간에 상대방을 몰살시키는 핫아이템으로 떠올랐다. 1차~2차대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현대전에도 사용하는 보병의 필수무기다.
⑦뉴올리언즈 전투(1812년)에서 미국독립군과 영국군이 맞붙어 영국군이 3000명이상의 전사자를 남기고 패배했을 당시 미국 독립군의 사망자는 20명에 불과했다. 강선 라이플의 위력을 보여준 이 사건에서 미국은 강선라이플을 개량해, 결국 스펜서연발소총까지 개발해냈다.
참고로 기관총은 20mm 미만 구경의 완전자동 사격화기이고, 20mm 이상은 기관포라고 통칭한다.  

기사입력: 2021/01/12 [08:07]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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