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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고려 광종, 과거와 노비해방으로 왕권강화
귀족의 관직 독점제한(과거)과 경제적기반 박탈(노비안검)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0/29 [09:42]

[김쌤’s 한국사] = 고려 태조 왕건은 그 자신이 송악의 호족 출신으로, 호족을 이끌고 통일전쟁에서 승리했다. 따라서 고려는 호족연합체 국가였다. 왕건의 혼인정책은 호족을 결집시켜, 통일전쟁을 수행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막상 나라를 건국한 후에는 왕위계승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태조 이후, 즉위한 2명은 모두 광종의 형이었지만 병약해 요절하고 드디어 광종이 즉위한다. 수많은 광종의 업적 중 과거제와 노비안검법은 왕권강화를 위한 핵심정책이다.

 

▲ 충주 숭선사지(사적 제445호, 지정 2003년 4월25일). 고려 광종5년(954)에 광종이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절터 부근에서 발견된 ‘숭선사(崇善寺)’라고 쓰여진 기와를 토대로 이곳이 ‘숭선사’였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 경기도민뉴스



1) 광종의 폭탄선언 노비안검법(956/광종7)
​①호족들이 거느린 사병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노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호족들이 거느린 사병은 어쩔 수 없이 호족들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②광종의 노비안검법은 원래 노비가 아니었으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거나, 빚을 갚지 못해 노비가 된 자들을 노비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주는 정책이다.
③일일이 노비문서와 호구 수를 대조해, 양민인데도 부당하게 또는, 빚 등으로 노비가 된 양민을 노비에서 풀어줬다. 노비에서 풀려나는 방법도 간단해, 노비 스스로가 자신이 과거에 양인 신분이었다는 것을 관아에 신고만 하면 즉각 양인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노비해방이었다.
④호족들의 반발을 예상한 광종은 노비들의 관청 출입을 막지 못하도록 명하고, 호족 중 자신의 노비가 거짓으로 양인신분을 회복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호족에게는 불이익을 줬다.
⑤호족들은 노비를 이용해 공음전을 경작하고, 사병을 양성했는데 광종의 노비안검법으로 노동력의 원천이 없어지자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고 농기계가 없는 당시에는 토지가 곧 부의 원천이고, 사람이 곧 노동력이었으므로 토지를 많이 소유한 대호족일수록 노비안검법에 의한 타격은 심했다.
⑥대호족일수록 공음전을 경작하는 대가로 노비로부터 받던 세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고, 사병의 수도 격감했다. 호족들은 궁여지책으로 가난한 평민들을 소작농으로 부리지만, 광종은 소작농을 노비처럼 부리는지를 어사대의 관리와 측근 세력을 파견해 감시하는 등 호족에 대한 견제를 계속했다.
⑦노비를 기반으로 한 사병이 없어진 호족은 힘을 쓰지 못하고, 광종은 상대적으로 우세한 중앙의 군사력을 앞세워 모든 호족들을 제압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한다. 노비안검법은 또, 국가는 양인의 증가로 세입이 늘어나고, 군역에 충당할 양인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국가의 재정 기반과 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2) 광종의 연이은 폭탄선언 과거제 시행(958/광종9)
①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시행하자, 호족들은 이제 더 이상 귀족의 특권인 관직의 세습과 노비를 이용한 공음전 경작이라는 경제적 기반을 향유하기 힘들게 됐다.
②광종은 쌍기를 지공거(知貢擧, 과거 감독관)로 임명하고 진사 갑과 2명, 명경과 3명, 복업(卜業)과 2명을 선발했다.
③호족들은 출신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을 함부로 등용한다고 반발했지만 광종은 계속 과거를 주관, 과거 합격자의 수를 늘려 과거 제도로 진출한 관료들의 수를 늘려나갔다.
④고려초기의 관료는 고려의 건국과 통일전쟁 과정에서 활약한 무인들이 대다수여서, 학문을 기반으로 하는 과거제는 호족 자제들의 정계 진출을 제도적으로 봉쇄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⑤광종의 과거제 실시로 전국에 학교가 세워지고, 문치적 관료체제가 갖춰진다. 과거로 선발한 신진 관료들을 문벌과 배경이 없었으므로 왕권의 친위세력으로 성장한다.
⑥광종은 승려들이 응시하는 승과(僧科)를 시행, 각 종파 안에서 ‘종선’을 실시해 합격자들이 국가에서 주관하는 ‘대선’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시험 성적에 따라 승려들의 품계를 선종은 대덕(大德), 대사(大師), 중대사(重大師), 삼중대사(三重大師), 선사(禪師), 대선사(大禪師)로 했고 교종은 대덕, 대사, 중대사, 삼중대사, 수좌(首座), 승통(僧統)으로 정했다.

기사입력: 2020/10/29 [09:42]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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