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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안시성 전투​, 천책상장 당태종 격퇴
김부식조차 안시성주 이름 전하지 않는다고 애석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0/11/02 [07:28]

[김쌤’s 한국사] = 안시성은 당시 인구 10만정도의 고구려 영지로, 요하유역의 전략적 방어성채 중 요동성(遼東城)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안시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만주 개평동북의 탕지보, 만주의 봉황성, 중국 랴오닝 남동쪽의 잉청쯔(英城子) 중 잉청쯔가 가장 유력하다.


삼국사기는 원래 명칭은 안촌홀(安寸忽)이고 자연적으로 험준한 요새로 철광석 산지와 곡창지대가 주변에 있다고 한다.


고구려는 요하를 앞에 두고 부여성~현도성~신성~개모성~백암성~요동성~안시성~건안성~비사성을 연결하는 중국세력 방어선(천리장성)을 구축한 상황이었다.

 

▲ 고구려-당의 전투에서 당의 1차침입을 막아낸 것은 외부의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싸운 고구려 안시성이었다. 영화 ‘안시성(The Great Battle)’. 감독 김광식. 2017년.     © 경기도민뉴스

 

1) 안시성, 고립무원 상태 독자 방어전 수행
①당태종은 연개소문(淵蓋蘇文 ?~665 or 666)의 정변을 구실삼아 10만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645, 보장왕4)한다. 당의 지휘부는 이세적, 장량으로 고구려는 산성에 웅거, 대항하지만 고구려는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백암성 등이 떨어지며 위기를 맞는다.
②전략적 요충지 안시성을 구원하기 위해 고구려는 고연수와 고혜진의 고구려-말갈 연합군(15만)을 파견하지만, 당의 유인작전에 말려 참패하고(주필산 전투), 고연수와 고혜진은 어쩔수 없이 당에 항복한다.
③고구려의 남쪽에서는 신라가 수곡성을 침공한 상태였고, 당의 이이제이 계략으로 당을 견제할 북방유목세력도 없는 상황이라 안시성은 고립무원상태에서 독자적으로 방어전에 돌입해야 했다.
④당은 투항한 고연수 등을 앞세워 항복을 권유하면서 공성무기 포거(抛車 큰 돌을 날려 보내는 투석기)와 충거(衝車 성벽 파괴용 돌격수레)를 동원해 안시성을 공격했다. 안시성의 저항에 번번이 가로막힌 당태종은 안시성을 함락하면 성안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공언하지만 여전히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⑤당은 안시성 공략에 어려움을 겪자, 안시성을 뒤에 두고 방비가 약한 오골성을 공략후 평양으로 진공하자는 논의도 하지만, 천자(당태종)가 친정한 전투에서 배후에 적(안시성)을 두는 것은 모험이라는 주장에 안시성 공격을 강행한다.

 

▲ 영화 ‘안시성(The Great Battle)’.     © 경기도민뉴스

 

2) 당 원정군, 고구려의 저항에 곤경
①안시성은 연개소문이 정변으로 정권을 잡자, 반기를 들고 불복해 연개소문의 공격을 받지만 방어해낸다(642, 보장왕1). 훗날 고구려 멸망(668)후에도 안시성은 검모잠(劒牟岑)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부흥운동의 요동지역 중심지 역할을 한다. 결국 당나라 군대에 함락(671년 7월)당하기는 하지만 거의 독립적으로 저항운동을 한 중심지였다.
②장량의 당수군은 건안성을 공격하지만, 역시 교착상태에 빠지고, 초조해진 당은 이세적이 하루 6~7회씩 안시성을 공격한다.
③당은 60일동안 안시성 동남쪽에 연인원 50만을 동원, 성벽보다 높게 토산(土山)을 쌓고 성을 공격하지만, 토산이 무너지며 안시성벽 한쪽 귀퉁이를 허물어뜨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고구려는 오히려 이틈을 이용해 무너진 성벽사이로 빠져 나와 토산을 점령, 성과 토산을 하나로 연결한다.
④당은 토성을 탈환하기 위해 3일동안 맹공격 퍼붓지만 실패한다. 인적물적 손실이 커지고, 겨울이 다가오며 날씨가 추워지고 군량마저 떨어지자 88일간의 포위를 풀고 퇴각(645. 9.18)한다.
⑤현전기록 중 양만춘(梁萬春 楊萬春)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명의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 唐書志傳通俗演義>다. 연의는 삼국지연의처럼 역사를 근거로 한 흥미 위주의 허구다.
⑥김부식은 당태종이 불세출의 황제지만, 안시성에서 패했다며 안시성주는 당태종을 이긴 비범한 호걸이나 사서에 성명조차 전하지를 않는다며 애석해했다.
⑦당태종 이세민은 몽골고원의 돌궐족을 복속시키고, 남부지방을 정복하며, 지방 호족의 반란도 진압하는 등 한번도 패전하지 않고 혁혁한 공을 세워 부친 당고조 이연으로부터 천책상장(天策上將 하늘이 내린 장수)이라는 칭호를 들은 명장이다.

기사입력: 2020/11/02 [07:28]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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