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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고려도경, 외국인이 본 고려의 풍속
송나라 사신 서긍, 황제에게 바친 견문보고서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1/02/14 [20:00]

[김쌤’s 한국사] = 문헌자료가 많지 않은 우리 민족사에서 고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자료 중 몇 안되는 희귀본이 바로 <고려도경高麗圖經>이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091년~1153년)이 고려를 방문(1123년),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보고서다. 정식명칭은 송휘종의 연호 선화(宣和, 1119년~1125년)를 넣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고 한다.

 

▲ 고려도경의 일부. 위키디피아.     © 경기도민뉴스

 

​1) 글과 그림이 있던 보고서, 그림 없어져
①서긍이 고려에 온 것은 휘종의 명을 받고 고려 예종(1079년~1122년, 재위 1105년~1122년)의 조의를 위한 것이다. 고려의 도성 개경의 순천관에서 몇 개월을 머물다가 중국에 돌아간 후, 황제에게 보고서로 바쳤다(1124년 선화6년 8월6일).
②원래 글로 먼저 소개하고, 그림을 달았는데, 서긍이 부본을 만들어 자신의 집에 하나를 보관하고 있었다. 황제에게 헌납한 보고서는 정강의 변(1126년, 고려인종4)을 거치며 없어졌다. 서긍의 조카 서천이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다시 간행했지만, 서긍이 보관하던 부본은 원래 그림이 없어서, 이때부터 책제목은 도경이지만, 그림은 없는 도경이 되고 말았다.
③후대 학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바로 그림이 없어진 부분이다. 아무래도 선입관과 편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기록보다는 그림은 가감없이 당시의 궁궐, 풍속 등을 전할수 있는데 이것이 오롯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④송나라 사람중 고려에 관한 기록은 오식(吳栻, 계림기 20권), 왕운(王雲, 계림지 30권), 손목(孫穆, 계림유사 3권) 등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 없어지고, 일부분만 전해지는 것에 비하면 <고려도경>은 그림은 없어지고 탈자가 수천자라고는 하나,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⑤다만, 외국인의 눈으로 단지 몇 개월 머물면서 고려의 풍속등을 전하고 있으므로, 선입견에 의한 왜곡도 많다는 것이 대체적인 학계의 평가다.

 

▲ 개를 가이라고 발음했다는 것등을 전한다. 예성강곡은 바둑으로 내기도 성행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 경기도민뉴스

 

2) 조카 서찬이 부본바탕으로 복간
①고려 인종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②<고려도경>은 청나라 포정박이 <지부족재총서(知不足齋叢書)>에 수록, 간행하면서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포정박은 발문에서 ‘건도(建都) 3년 간행 송판본과 간행연대 미상 고려본이 있으나 볼 수가 없고, 세상에 전하는 것은 명말기 정휴중(鄭休仲)의 중간본(重刊本, 鄭本)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③포정박이 정본(鄭本)도 탈자가 수천자에 달하고, 착간(錯簡)으로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한 것으로 미뤄, 보관 상태는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④일본이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지부족재본을 대본으로 활인(活印)했다(1910년대초). 일본학자 이마니시(今西龍)가 조선학총서(朝鮮學叢書)의 하나로 활인할때도 전해지는 다른 판본이 없었는지, 역시 지부족재본을 대본으로 활인(1932년)했다.
⑤결국, 지금 전해지는 <고려도경>은 서긍이 부본으로 간직하고 있던 것을 조카가 간행한 보관상태가 열악한 판본이다.
⑥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가 미국 하버드대학 합불연경도서관(哈佛燕京圖書館) 소장본을 영인(1970년)했다. 미국의 영인본은 중화민국 정부가 건도3년 간행 송판본을 영인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황소자리’가 <고려도경>을 출판(조동원역, 2005년 3월25일)했다.

 

▲ 그림은 사라젔지만, 고려도경은 당시 우리 선조들이 미역 다시마 해조류를 즐긴 것을 전하고 있다.     © 경기도민뉴스

 

3) 문헌기록 적은 민족사 시대상 알려주기도
①고려도경이 비록 부실하지만, 그래도 이전까지의 기록이 많지 않은 우리 민족사에서는 보물중의 보물이다. 금석문 등(주로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과 달리 당대의 풍속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동식물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견왈가희 犬曰家禧 등을 통해 당시에는 개를 ‘가이’라고 불렀음을 추정)한 것도 꽤 있어 귀중하다. 바둑을 좋아하던 고려의 상인이 중국인 고수의 계략에 넘어가 내기바둑으로 부인을 빼앗긴 <예성강곡> 등 단편적인 고려시대 생활상과 달리 고려도경은 훨씬 풍부한 생활상을 전해준다.
③총 40권으로 제1권(건국)은 고려(고구려)의 건국과정을 소개한다. 고려도경은 고려의 선조가 주나라 무왕이 봉한 기자 서여(胥餘)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국 부분에는 고씨의 고려(고구려)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설명하고 있다.
④제2권(세차世次)은 당시까지의 고려 왕의 계보를 설명하며 제8권(인물)은 이자겸, 윤언식, 김부식, 김인규, 이지미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제16권(관부官府)는 물물교환을 통해 교역하지만, 약(藥)은 전보(錢寶)로 교역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⑤제23권(잡속2 한탁)은 고려인이 깨끗한 것을 좋아해 자주 씻고, 좋아하는 수산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수산물은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문합(文蛤), 붉은게(紫蟹), 굴(蠣房), 거북이다리(龜脚), 해조(海藻), 다시마(昆布) 등으로 미역 다시마 등의 해초를 즐겨먹은 것을 확인할수 있다.

기사입력: 2021/02/14 [20:00]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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