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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 천연두, 인류 최초로 박멸한 질병
중국 인도 등, 인두법으로 천연두 면역요법 사용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21/04/12 [08:16]

[김영수 잡학여행] =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접종을 통해 질병을 예방한다. 한때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키우기)’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현재(2021년 1월 기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류를 괴롭힌 여러 질병중 인류가 최초로 정복을 시도한 것이 바로 천연두(마마)였고, WHO(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 박멸을 선언(1979년)했다. 천연두는 인류가 최초로 정복한 질병이기도 하다.

 

▲ 현미경의 발명으로, 미생물의 존재가 알려지자 이것이 또 다시 자연발생설의 근거라는 주장이 나오는 등 인류가 세균의 존재를 명확하게 규명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 경기도민뉴스

 


1) 환자의 상처딱지를 코 속에 넣어 면역 확보
①제너의 우두법(종두법)이전까지만 해도, 천연두로 얼굴이 얽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일단 앓으면 20~30%가량은 목숨을 잃었다. 전염력도 강하고, 피해도 커서, 살아남아도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시각 장애를 지니는 경우가 많았다. WHO는 1967년 한해동안 1500만명이 천연두에 감염됐고, 그 중 200만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②인류는 현미경의 발명 이전,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이도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최초의 시도는 천연두 환자의 상처딱지를 피부에 접촉시키는 방법이었다.
③인두법(variolation)이라는 이 방법은 인도와 중국에서 대략 10세기쯤부터 행해졌다.

 


2) 제너의 우두법, 공포의 천연두 퇴치
①전설에는 중국의 한 부호가 사랑하는 아들을 천연두로 잃자, 천금을 걸고 천연두의 치료법을 찾았고, 떠돌이도사(江湖郎中)가 천연두환자의 고름딱지를 접종을 원하는 사람의 코속에 집어넣는 방식을 알려줘,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한다.
②인두법으로 천연두의 치사율은 0.5~2%까지 낮아졌지만, 여전히 두려움을 주는 질병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인두법은 당시까지는 천연두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중의 하나였다.
③천연두는 고대 인도의 문헌(BC1500년경), 이집트의 람세스5세의 미라(BC1145년), 중국(BC1122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연두는 이집트 상인들이 인도에, 인도에서 다시 중국으로 전파한 것으로 보고 있다.
④유럽에는 십자군 원정으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아테네 역병(페리클레스도 이 역병으로 사망 BC429), 카르타고와 시라쿠사와의 공성전(BC396), 로마의 안토니우스 역병(AD165~AD180) 등이 천연두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⑤천연두는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법을 확립(1796)하면서 마침내 인류는 천연두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식민지 쟁탈전쟁을 벌이던 제국주의 시대, 열강은 원주민을 함락시키기 위해 천연두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 벌레등은 음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유럽에서 17세기까지 이어진다.     © 경기도민뉴스

 


3) 파스퇴르 목이 긴 플라스크 실험, 자연발생설 소멸
①우두법의 확립은 그 이전까지 발전한 자연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이 여전히 권위를 지니던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레디는 대조군을 통해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실험결과를 얻었지만(1665), 인정을 받지 못했다. 영국의 존 니담은 실험결과 파리같은 곤충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미생물은 자연에서 저절로 발생한다는 결과를 발표(1749)한다.
②존 니담 이전에 네덜란드의 레벤후크(1632~1723, 레이우엔훅이라고도 한다)는 자신이 직접 현미경을 만들고, 이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발견하지만, 역설적으로 미생물은 자연발생설의 강력한 근거로도 활용되곤 했다.
③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실험은 이탈리아의 라자니아 스팔란차니가 고기국물을 단순하게 가열하는 것만으로는 미생물의 발생을 억제할 수 없으며, 공기와 접촉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기(轉機)를 맞는다.
스팔란차니는 플라스크에 고기국물을 가열한 뒤 금속으로 용접밀폐하면 장기간 보존해도 미생물이 생겨나지 않지만, 플라스크 벽면에 균열을 만들면 미생물이 발생하는 것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미생물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④이 이론에 근거해 니콜라 아펠(Nicolas Appel)이 병조림을 개발(1809), 때마침 원정을 준비중인 나폴레옹의 현상응모에 선정, 최초의 제대로 된 전투식량을 납품한다.
⑤그런데도 자연발생론자들은 “이미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했지만 밀폐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육을 억제당해, 관찰할수 없었던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⑥이 의문을 완전히 잠재운 것이 바로 루이 파스퇴르(Pasteur)다.
공기는 통하지만, 미생물은 걸러지도록 한 목이 긴 플라스크의 내용물을 직접 섭취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드디어 ‘습기가 있는 더러운 곳에서는 미생물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자연발생설은 폐기되기에 이른다.
파스퇴르는 이것은 근거로 ‘자연발생설 비판(1861)’이라는 논문도 발표한다.

 

 


4) 우리나라 근대 우두법의 아버지 지석영
①우리나라는 지석영(1855 철종6~1935)이 일본해군이 부산에 설립한 제생의원에서 일본의사(마쓰마에, 도즈카)로부터 2개월간 종두법을 배워, 귀경 도중 충주의 처가에 들러 40여명에게 우두법을 시행했다.
②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에 의한 최초의 공식적 종두법이다. 임오군란(1882) 발발 당시, 일본에서 종두법을 배워왔다는 죄목으로 체포령이 내렸지만, 정국이 바뀌자 서울로 돌아와 종두장을 다시 열었다.
③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탄하자, 모든 관직을 버리고(일본의 간곡한 권유를 모두 물리치고) 초야에 묻혀 일생을 보냈다.
④1880년대 조선 후기 외국인 의사로 활동했던 알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100명중 60~70명이 인두법(치사율 1~2%)을 시술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홍역과 천연두에 대한 <마과회통1798>은 박제가와 함께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인두법이었다.​

 

면역요법 발전의 역사(1)

기사입력: 2021/04/12 [08:16]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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