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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현실정치 갈등이 결국 붕당 초래
유한한 관직의 수에 비해 과거합격자 늘어나며 갈등도 커져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11/27 [06:11]
[김쌤’s 한국사] = 조선후기의 정치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붕당을 이해해야 하고, 이 붕당은 사림을 이해해야 한다. 조선시대의 사림은 유학중에서도 성리학을 익혔다. 주자는 성리학을 창안하며 자신의 학문만이 진정한 것이라며 ‘실학(實學)’이라고 주장했다.

성리학은 중국, 조선, 일본 등의 지배계층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수많은 논의와 연구결과가 있다. 이를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우주만물의 근본이 무엇이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학파가 갈라지고 성립했다고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안향이 중국 송에서 수입한 성리학은 고려말 정몽주ㆍ길재 등을 거쳐 조선 중기 이황(주리)ㆍ서경덕(주기)ㆍ이이(이원적일원론)를 기점으로 완성단계에 이른다.

고교과정 정도의 수준에서는 성리학의 두 갈래 중 주리론은 세상의 근본원리로 ‘이(理)’를 중시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주리론에서는 유리ㆍ거울ㆍLCD모니터화면 등은 모두 같은 것이다. 반면 주기론은 ‘기(氣)’를 중시한 것인데, 역시 거칠게 이해하자면 유리ㆍ거울ㆍLCD모니터화면은 실제 용도가 다르므로 다른 것이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주리파가 중심인 동인은 원칙을 중시하고, 주기파가 중심인 서인은 현실적인 상황을 중시한다(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의미). 이 학풍은 조선후기 서양문물에 대해 위정척사(주리)와 개화(주기)라는 두 갈래로 나타난다.
 
 
▲ 이준경 선생묘(경기도 기념물 제96호, 1987년 2월12일 지정, 경기 양평군 양서면). 동서분당을 예견하고 분당을 예방하기 위해 힘썼지만, 막지는 못했다.     © 경기도민뉴스

1) 이준경, 붕당의 조짐을 유서로 경고
①동서분당의 직접적 계기로는 이조전랑을 둘러싼 심의겸(서인)과 김효원(동인)의 충돌(1575년)이 정설. 이이 등은 김효원을 함경도 부령부사로, 심의겸을 경기도 개성유수로 인사조치하지만 김효원의 임지가 변방이므로 이이는 자연스럽게 서인으로 몰려.
②심의겸(서인)과 김효원(동인)의 충돌 이전에 이미 영의정 이준경(1499년~1572년)은 선조에게 차자(箚子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 1572년 7월7일)를 올려 붕당의 조짐 상소. 이준경이 유언으로 남긴 차자를 본 선조는 “누가 붕당을 만드는가”를 신하들에게 묻고 심의겸과 이이 등은 강력하게 부인. 심지어 이이는 이준경을 격렬하게 비난.
③심의겸(서인)과 김효원(동인)의 분당 이후, 황해도 재령에서 주인을 죽인 노비 재판(1575년 7월)을 두고 박순(서인)과 허엽(동인)이 갈등빚으며 동서분당 고착화. 심의겸은 분당 당시 좌의정 박순을, 김효원은 대사가 허엽을 각각 당수로 추대.
④여기에 동인 김성일이 서인 윤두수ㆍ윤근수 형제와 조카 윤헌의 뇌물 사건 폭로(1578, 선조11)해 삼윤이 뇌물수수 혐의로 파직당하자 정치적 음모로 생각한 동서갈등 격화.
⑤성호 이익은 ‘붕당론’에서 당쟁의 원인을 이익추구 때문이라고 파악하며 “붕당은 싸움에서 생기고, 싸움은 이해관계에서 생긴다. 이해관계가 절실할수록 붕당은 공고해진다”고 주장하며 “굶주린 열 사람이 한 그릇 밥을 함께 먹다가 다 먹기도 전에 싸움이 난다”는 비유를 들어 비판. 해결방안으로 과거(科擧)의 횟수와 합격자를 줄여 관직을 둘러싼 붕당간의 경쟁 가능성을 미리 제거하자고 제안.
 
 
2) 분당을 심화시킨 갖가지 사건들
 
01. 이준경의 차자(1572년 7월)
①차자는 특별한 격식이 없는 상소문으로 조선의 대신은 죽음에 임박하면 유언형식의 상소문을 올려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
②이준경은 첫째 제왕의 임무는 학문하는 것이 중요하며, 둘째 아랫사람을 대하는데 위의가 있어야 하고, 셋째 군자와 소인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고, 넷째 붕당의 사론을 없애야 한다고 건의.
 
02. 황해도 재령에서 주인을 죽인 노비 사건(1575년 7월 선조8)
①노비가 상전을 살해하는 것은 강상죄로 의금부 관할. 초동수사 미숙으로 사망원인 규명 불가능.
②의금부지사 홍담(1509~1576), 누명이므로 방면 주장 ⇔ 좌의정 박순, 강상사건이므로 경솔한 방면은 불가.
③선조, 두차례 검시에서 증거를 찾지 못했으므로 증거불충분 방면 지시.
④사헌부 재수사 요청에 대사간 유희춘은 반대, 정언 김응남은 찬성.
⑤이 사건에 홍문관이 무죄를 증명해야 방면할 수 있다며 재수사 찬성하고 사간원 관리 전원(김응남 제외) 체직(사퇴) 요청.
⑥선조, 사간원 관리 체직하고 대사간에 허엽 임명
⑦신임 대사간 허엽, 좌의정 박순이 사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맹공격하자 박순 사임
⑧정언 조원(조식의 제자)이 대신(박순)을 추고할 수 없다며 허엽을 공격. 그러자 사간원 전원과 사헌부 일부가 조원을 공격.
⑨대사헌 김계휘, 허엽이 죽은 사람과 친족이라서 편파판정을 내린다며 조원을 옹호.
⑩대사간이 하급자인 조원에게 탄핵당하고 대사헌이 사임을 원하자 사건처리를 옥당에 넘기고, 옥당 부제학 이이는 사건 관련자 모두 체직시키고 조원만 살려둬.
<간단 정리>
△재수사=박순, 김응남, 홍문관 VS. 증거불충분 무죄=홍담, 선조, 유희춘(사간원)
△허엽의 공격으로 박순이 사임하자
△박순 지지 조원, 김계휘(결과적으로 이이는 박순을 지지) VS. 박순 반대 허엽(사간원)과 사헌부 일부
 
03. 삼윤(三尹) 논핵 사건(1578, 선조11)
①진도군수 이수가 진도의 공물납부인 장세량(지역 공물을 지역민을 대행해서 정부에 납부하던 어용상인)을 통해 윤현, 윤두수, 윤근수 세 사람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김성일이 경연에서 폭로.
②이수는 삼윤의 친척이어서 의심은 가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 이수가 20여차례의 심문(사실상 고문)을 받자, 서인은 동인이 정치적 음모로 무리한 옥사를 벌인다고 반격.
③대사헌 김계휘(서인), 대간의 탄핵을 동인에 의한 서인 공격으로 받아들여, 도리어 대간을 비난하는 등 당쟁 격화.
 
04. 계미삼찬(1583 선조16)
①니탕개의 난(1583년 1월~8월)이 발생하자 병조판서였던 이이, 전마(戰馬)를 바치면 병역면제 조치 시행(선조의 사후 승인). 또 국경까지 양곡을 운반하고 바치면 서얼허통 허용 등 파격적 조치 강행.
②대사간 송응개, 직제학 허봉 등 동인이 삼사에 연계(聯啓)를 올려, 이이가 병권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기며 파당을 만들어 바른 사람을 배척하므로 왕안석(王安石)과 같은 간신이라고 탄핵.
③영의정 박순, 호군 성혼이 언근(言根)을 밝혀 주동자의 처벌을 주장하며, 송응개와 허봉을 외직으로 추방 움직임. 이 조치에 삼사에서는 언론으로 죄를 줄 수는 없다고 반발.
④승지 박근원, 송응개가 이익을 탐해 지방관을 위협하고 사류를 미워하며 해쳤다고 또 다시 이이를 공격. 그러자 태학생, 전라도ㆍ황해도 유생, “이이가 모함을 당했다”고 변호하는 등 파란.
⑤선조, 시비를 정하자는 정철(서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감을 가지고 정직을 가장하고 공론을 가탁, 대신을 몰아내고 편당을 지어 임금의 총명을 가렸다”는 죄목의 친필교문을 내려, 박근원(평안도 강계), 송응개(함경도 회령)와 허봉(함경도 갑산)으로 귀양 조치.
⑥이이, 서인을 등용하고 유배된 세 사람의 죄목을 풀어주지 않은 채, 다음 해 1월 급서(1584년)하며 동인-서인의 대립 격화.
<간단 정리>
△동인 박근원 송응개 허봉이 이이 공격
△서인 박순 성혼 태학생, 전라도ㆍ황해도 유생 등이 이이 옹호
 
05. 이조전랑과 대간(臺諫)
①조선의 대간(臺諫)에 속한 관리들은 백관에 대한 탄핵권 있고, 대간의 탄핵을 받으면 사실여부를 떠나 사임하는 것이 관례. 이는 대신의 처신은 어떤 시비에도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
②대간은 임금에게도 모든 정사 현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시비할 수 있는 간쟁권(諫爭權)을 가져, 직급은 높지 않아도 ‘청요직(淸要職)’이라 해서 선망의 직위.
③따라서 대간은 대체적으로 신임소장파로 임명하고, 대신들이 대간에 대한 인사에 간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간에 대한 인사권은 이조판서가 아니라 ‘이조전랑’(이조의 정5품 이조정랑과 정6품 이조좌랑)에게 부여.
④이조전랑은 인사독립을 위해 후임자를 추천하는 자천제를 실시. 이조전랑이 후임자를 천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론(士論), 즉 선비들의 의논.

기사입력: 2017/11/27 [06:11]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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