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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갑오농민전쟁①-동학 기반 반봉건 운동
집권층, 동학 진압위해 외세(청-일본) 끌어 들여 자충수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8/10/16 [08:14]
[김쌤’s 한국사] = 군사정권 시절의 영향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는 ‘동학의 난’이라고 불렀다. 이후 동학농민혁명,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등으로 일컫다가 2010년 들어 점차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용어가 정착 중이다.

대체적으로 동학이라는 종교조직의 지도층이었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이 농민층을 기반으로 시작한 반봉건 근대화운동으로 학계에서는 규정하고 있다.
 
 
1) 강화도조약, 대일 미곡수출 증가 → 조선 쌀 부족
①운요오호 사건을 계기로 조일수호조규 체결(1876년), 대일본 무제한 미곡수출 가능해지면서 대지주는 화폐소득 늘어나지만, 소작농은 식량부족 등 도시물가 폭등으로 어려움.
②임오군란(1882년 6월9일~7월13일 / 고종19), 갑신정변(1884년 12월4일~6일) 등 발생하며 집권층의 청에 대한 의존도 심화. 일본은 조선에서의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고리대금으로 하층농민을 상대로 경제적 수탈 가속화.
③안동김씨를 대신한 민씨척족의 매관매직으로 지방수령의 농민수탈로 농민의 삶 피폐화. 환곡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일본의 고리대금으로 농민붕괴 가속화.
④동학교단은 삼례집회(1892년 11월), 보은집회(1893년 3월)에서 교조신원운동 전개. 전봉준 등 남접세력은 동학조직을 활용, 교조신원운동에서 더 나아가 정치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금구집회(1893년 3월)를 소집해 ‘척왜척양(斥倭斥洋)’과 ‘수령의 불법침학 반대’를 기치로 내세워.
 
 
2) 조병갑의 탐학에 못 이겨 봉기(1894.1)
①고부군수 부임한 조병갑(1892년), 만석보(萬石洑) 개수하며 농민에게서 고율수세 징수 등 수탈. 전봉준의 부친(전창혁), 면세 요청 탄원하나 오히려 모진 형벌로 한달만에 사망. 전봉준 중심 최경선 정익서 김도삼 등 농민지도자들, 봉기를 계획하고 비밀리에 각 마을의 집강에게 사발통문 돌려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 △전주성을 함락하고 서울로 향한다 등 행동방침 결정.
②조병갑이 익산군수로 옮겨가자, 전봉준 등은 신임 고부군수 이은용에게 시정을 요구하나, 쫓겨난다(1893년 12월). 그러던 중 조병갑이 고부군수로 재부임(1894년 1월9일)하자, 사발통문 결의사항을 실천에 옮겨 봉기.
③전봉준 등, 고부관아 습격. → 조병갑의 탐학 수세미(水稅米) 되찾아 농민에게 돌려주고 해산(1894.2.10.). 전봉준은 대원군의 식객으로도 있었던 인물로 이후 대원군은 동학과 연결해 재집권하려는 욕심을 부리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④전봉준 등 농민군의 봉기에 조정, 조병갑 파면ㆍ안핵사 이용태 파견. 이용태, 사후처리 과정에서 동학교도 탄압 등 온갖 악행.
 
 
3) 이용태의 무자비한 탄압-1차 농민전쟁
①이용태가 동학교도를 탄압하자 전봉준ㆍ손화중ㆍ김개남, 탐관오리 숙청과 보국안민 천명 창의문 발표 10여일만에 1만명 동원, 이때부터 동학과 농민이 본격적으로 결합(1894년 4월)해 농민 VS. 관청의 전쟁 양상으로 발전.
②전봉준 동학농민군, 고부ㆍ흥덕ㆍ고창ㆍ부안ㆍ금구ㆍ태인 등에서 봉기. 부안관아 점거. 동학농민군, 전라감사 김문현의 정부군과 황토현에서 접전(1894.5.10.~11) 승리하자 정읍으로 진격 점거.
③조정, 홍계훈을 초토사로 임명(1894.5.6)하나 전주성 도착 당시 정부군 800 중 절반이 도주하는 등 진압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자, 홍계훈이 조정에 증원군 요청.
④동학농민군, 홍계훈의 정부군과 장성 남쪽인 황룡촌에서 접전(5.27) 벌여 승리하고 전주성 무혈입성(5.31). 진압책임자 홍계훈, 농민군에게 청과 일본이 출병한 것을 알리자 농민군측은 외세 개입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폐정개혁안을 제시하며 화약(和約) 요구.
⑤조선 조정-농민군, ‘전주화약’으로 일종의 연립정권 수립(6.11). 전주화약으로 청과 일본은 조선에서 철수해야하지만, 일본이 조선궁궐을 무력 점령(7.23)하면서 청일전쟁 발발.
⑥이후 폐정개혁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자, 농민군은 폐정개혁을 집행하기 위해 전라도 53군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 착수. 조선 조정, 행정체계 복구 위해 동학과 협조해 전라도 53개지역에 집강소(민정기관) 설치. 동학교도가 사실상 지방수령으로 집강소 장악하고 행정 담당.

기사입력: 2018/10/16 [08:14]  최종편집: ⓒ 경기도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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