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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모순의 인생 한비자, 현대의 모순을 꿰뚫다
법 중심의 통치철학으로 난세를 구하려 했던 사상가
정작 자신의 삶은 모순 그대로였던 불우한 시대의 천재
 
경기도민뉴스   기사입력  2017/03/30 [07:01]

[김영수 잡학여행] =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대통령 탄핵파면의 원인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법(法)’이라 할 것이다. 이 ‘법’과 관련, 최근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자가 언급되곤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이미 상당한 해석과 풀이를 했으므로 생략하고 우리가 흔히들 사용하는 고사성어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 촌철살인의 비유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

■ 모순(矛盾)=앞 뒷 말이 서로 맞지 않음.
수주대토(守株待兎)=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어 토끼가 스스로 부딪혀 죽기를 바라는 농부의 어리석음.
각주구검(刻舟求劍)=강물을 건너다가 보검을 잃어버리자, 보검을 떨어트린 위치를 뱃전에 표시해 두고, 배가 선착장에 닿은 후에야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풍자.
조삼모사(朝三暮四)=아침에 도토리 3개, 저녁에 도토리 4개를 준다고 지침을 변경한 것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이를 달래려고 그렇다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겠다는 말장난에 속아 넘어간 원숭이들을 조롱.
사족(蛇足)=시간이 남아돌자 있지도 않은 뱀의 다리를 그렸다고 자랑질.

 



이 다섯 가지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모두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말이다.
한비자는 한비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전국시대 말기의 저작물을 일컫는다. 통상 한자라고 하지 않고 한비자라고 하는 것은 후대 시인인 한유(韓愈)와 구별하기 위해서라고 하나, 여기에는 유교적 관점에서 이단(異端)인 법가사상의 완성자인 한비에 대한 폄하도 작용했으리라. 이글에서는 구별을 위해 사람에 대해서는 한비, 저작물에 대해서는 한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 극심한 말 더듬이로 왕의 서자로 출생하다
한비(韓非)는 춘추전국시대 말엽 전국칠웅(戰國七雄)이 마지막 쟁패를 벌일 당시, 가장 약소국인 한(韓)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다.

약소국인 조국 한(韓)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법에 의한 강력한 통치밖에 없다고 생각한 한비는 상앙의 법(法)이론과 신불해의 술(術)이론을 하나로 합치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인 세(勢)를 덧붙여 제자백가의 하나인 법가사상을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즉, 한비의 법가사상은 선구자인 상앙, 신불해의 선험적인 실험과 이론을 집대성한 뒤 자신만의 세(勢)이론을 버무려 ‘법(法)ㆍ술(術)ㆍ세(勢)’를 변증법적으로 통일한 이론이다.

물론 이때의 법은 현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과는 그 개념이 다른 것으로, ‘군주의 입장에서 신하가 어떤 일을 제대로 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기준’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이다.

문제는 거의 벙어리에 가까울 정도로 말더듬이 심했던 한비로서는 자신의 사상을 조리있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한비자는 저술에 힘을 썼는데, 역으로 진시황에게까지 자신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소개되는 기회를 얻는다.

◇ 백가쟁명 시대, 진시황의 천하통일 기초를 놓다
수많은 주장과 학설이 난무하던 춘추시대의 제자백가는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효과가 검증되거나 민중에게서 지지를 받는 몇몇 사상만 살아남았는데, 법가사상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악설 쪽에 다분히 기울어 있던 한비로서는 당시를 주름잡던 유가의 ‘인’이나, 묵가의 ‘겸애’ 등은 모두 나라를 망치는 사상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길지 않은 한비의 생애는 법가사상 이외의 사상들과의 투쟁으로 점철되는 데, 그 자신 유려한 말솜씨가 없다보니 자신의 주장을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후대의 위작이 상당수 포함됐지만, 한비자 50여편 중 대체적으로 ‘세난’ ‘오두’ ‘이병’ ‘설림’ 등의 편은 한비의 사상을 상당히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 그렇다면, 한비가 자신의 저작물에서 모순ㆍ수주대토ㆍ각주구검ㆍ조삼모사같은 고사성어를 만들어가면서까지 주장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모두 유가 묵가 등 법가의 것이 아닌 주장은 이치에 닿지 않는 ‘모순’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그 공격의 주 대상은 바로 유가였다.
 
 
◇ 피를 토하듯 적확(的確)한 비유를 만들어 세상을 설득하려하다
한비는 ‘요’ ‘순’ ‘우’ 시대가 완벽한 이상사회였다고 주장하는 유가에 대해 ‘왕의 궁전이라고는 하지만 흙벽을 바른 것에 불과하고, 왕 스스로 농사를 지어야하는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경공, 대부 등만 되도 수레를 타고 다니면서 위엄이 넘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옛날 얘기’로 몰아간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한비는 “옛날에는 옛날의 법이 있었다면, 지금은 지금의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각주구검’의 고사를 만들어낸다. 배가 움직인 것은 세상은 변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뱃전에 칼이 떨어진 위치를 표시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칼을 찾으려 한다.

또, 인의가 통하지 않는 세상인데도 인의를 강조하는 것은 ‘수주대토’같은 농부의 어리석음이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모순’이라고 역설한다. 토끼가 나무의 그루터기에 머리를 받혀 죽는 것과 같은 불로소득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요행인데도, 유가는 그것이 마치 항상 발생하는 것처럼 칭송한다.

우리가 ‘의롭다’라고 칭송하는 습득물 반환이나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고 자신은 죽는 등의 행위는 지금도 흔치 않다. 이는 한비자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유가들은 ‘조삼모사’같은 되지도 않은 논리로 왕을 현혹한다는 것이 바로 한비의 ‘모순ㆍ수주대토ㆍ각주구검ㆍ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배경이다.
 
 
◇ 설득의 방법론 제시한 한비자, 결국 모함에 빠져 죽다
한비가 아무리 세상을 경영할 경륜을 지니고 있어도, 위정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결국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피를 토하듯 저술한 것이 바로 ‘세난(說難, 말씀 설이지만, 달래다라고 할 때는 세로 발음한다)’이다. 영화의 제목으로도 사용한 ‘역린(逆鱗)’이라는 표현도 이 세난편에서 등장하는데, 조화가 무궁무진한 용(龍)을 잘만 다루면 못할 것이 없지만, 부주의해서 용의 턱밑에 난 ‘거꾸로 선 비늘(역린)’을 건들면 죽는다는 한비자의 비유는 그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비자는 동문수학한 이사(진의 재상에까지 오르지만, 결국 환관 조고의 술수에 일가가 처형당한다)의 모함으로 자결한다. 마치 손빈이 동문수학한 방연의 모함에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은 것과 유사하다.

사마천은 설득의 방법을 논한 한비가 스스로를 변명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것은 모순이라고 안타까워한다.
 
 
◇ 사람은 이득으로 부리고, 형벌로 제어(콘트롤)한다
한비의 법가사상은 지금의 법치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사상이다. 한비의 법가사상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군주의 통치술의 하나로, 그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시황에게 넘어가 꽃을 피워, 조국인 한나라가 멸망하도록 돕는다.

훗날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대표되는 진시황의 폭정에 대해서도 후대인들은 한비자의 구절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한비는 학자란 쓸데없이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는 존재라며, 제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농서, 의서, 역서 등 실용서적이나 지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필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비는 현명한 군주라면 ‘법’에 의해 통치되도록 하며, 그 법이 제대로 시행되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형명참동(形名參同)’으로 검증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한비가 법에 의한 냉혹한 통치(지금의 법치주의와는 전혀 다르다고 수차례 강조했다)를 강조한 것에 대해 그의 성장배경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한비는 왕의 자식이라고는 하나, 서자출신으로 수많은 공자(公子) 중의 1명일 뿐이었다. 젊어, 순자(荀子)의 밑에서 나중에 자신을 죽음으로 모는 이사(李斯)와 동문수학했는데, 이 순자가 바로 유가의 이단아였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예악(禮樂)에 의한 교육으로 악한 본성을 억눌러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학풍은 아마도 한비에게도 전해졌으리라. 그러나 한비의 관심은 형이상학적인 인간의 본성보다는 현실적으로 컨트롤이 가능한 것에 집중됐다.

한비는 인간을 ‘능력보다 높은 보수를 받기를 원하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X이론’의 대상자로 생각했다. 이득으로 사람을 부리고, 형벌로 악행을 제어하면 이상사회가 된다는 그 주장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이념과도 맞닿아있다.
 
 
◇ 자신의 아바타인 ‘혹자(누군가)’를 내세워 주장을 완성하다
법술세를 원칙으로 하는 법가사상을 완성한 한비자의 현실에서의 최대 난적은 유가, 묵가 등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는 유파들이었다. 도무지 불확실하기 짝이 없고, 눈에 모이지도 않는 인간의 본성 따위를 믿고 이를 바탕으로 한 통치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한비자의 분노는 매우 크다.

한비자에 나타난 한비의 유가, 묵가 등에 대한 증오와 그 논리적 허점을 공격하는 주체는 ‘혹자(或者 누군가)’이다. 모순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에게 예리한 질문으로 말문을 닫게 하는 이도 혹자이며, 수주대토에서도 농부의 어리석음을 평가하는 주체로 혹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혹자’는 아마도 모순된 세상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지 못한 한비의 울분을 표출하는 ‘그 자신’이리라.

여기서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후세의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법(法)’이라는 글자를 ‘물(물 水)’ ‘가는 대로(갈 去)’ 라고 해석하며 순리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갑골문에 보이는 원래의 자형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법이라는 한자(漢字)의 갑골문 원형은 대체적으로 ‘물가에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당사자 두명을 묶어둔 채, 흑염소를 돌진시킨다. 그때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은 정의롭지 않으므로 하늘이 천벌을 내린다’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강력한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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